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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투혼 불사른 그대들 '죄송하다' 말은 마세요

등록 2022.03.18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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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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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희준 기자 = 2022 베이징동계패럴림픽 기간, 믹스트존에서 만난 한국 선수들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나같이 "메달 따는 걸 보여드렸어야 하는데"라며 자책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짙은 아쉬움과 미안함이 서려있었다.

한국은 이번 베이징동계패럴림픽에 원정 대회 최대 규모인 총 79명(선수 31명·임원 48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그러나 포디움에 오른 선수는 없었다. '동메달 2개'라는 목표도 이루지 못했다.

안방에서 열린 2018년 평창 대회에서 금 1개, 동 2개로 종합 16위에 올라 역대 최고 성적을 냈지만, 4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4년 전 크로스컨트리스키 7.5㎞에서 한국 동계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15㎞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평창 영웅'으로 떠오른 신의현(42·창성건설)은 이번 대회 6개 종목에 출전했지만 노메달로 대회를 마쳤다.

크로스컨트리스키 18㎞와 바이애슬론 개인 12.5㎞에서 거둔 8위가 신의현의 이번 대회 최고 성적이었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최연소 국가대표인 알파인스키 시각장애 부문 최사라(19·서울시장애인스키협회)에게도 내심 메달을 기대했지만, 대회전 11위, 회전 10위에 만족해야 했다.

선수들 성을 딴 '팀 장윤정고백'(의정부 롤링스톤)이 출전한 휠체어컬링도 메달 기대 종목이었으나 최종 6위에 자리했다.

이번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은 선수들이 4년 동안 흘린 땀과 눈물에 비하면 무척이나 적었다. 대회 기간 중 열린 대통령선거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폭증, 동해안 지역의 대형 산불이 겹치면서 패럴림픽을 향한 관심은 현저히 떨어졌다.

이번 대회에서 생중계된 종목은 거의 없었다. 2018년 평창 대회에서 기적의 동메달을 일궈 국민에게 큰 감동을 안긴 한국 파라아이스하키 대표팀은 동메달 결정전에 진출해 홈팀 중국을 상대로 2회 연속 메달에 도전했지만, 이마저도 생중계되지 않았다.

적은 관심 속에서도 한국 선수단은 투혼을 발휘했다.

이번 대회 크로스컨트리스키, 바이애슬론 전 종목에 출전한 신의현은 두 팔만으로 쉼없이 설원을 누볐다. 6개 종목을 치르며 그가 달린 거리만 57.5㎞다.

신의현은 "전 종목에서 완주한 것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여섯 경기를 뛰는 게 쉽진 않다. 스포츠라는 게 결국 저 자신을 이겨야 이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으로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을 국민께 보여주자고 다짐하며 달렸다"고 했다.

알파인스키 시각장애 부문에서 선수들은 가이드 러너의 신호와 목소리에 의지해 슬로프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 가파른 슬로프를 질주하는 것은 비장애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최사라도 레이스를 할 때마다 적잖게 무섭다고 했다.

그러나 만 19세에 불과한 최사라는 첫 패럴림픽 출전이라는 긴장감과 레이스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이겨내고 4차례 레이스를 모두 완주했다.

팀 장윤정고백도 비록 메달을 따지 못했으나 세계랭킹 2위 노르웨이, 세계랭킹 4위이자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동메달리스트인 캐나다를 꺾는 등 선전했다.

한국 파라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중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홈 관중의 '자여우(加油·힘내라)' 응원과 중국 선수들의 거친 반칙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빙판 위의 메시' 정승환은 상대 선수 픽에 목을 찔리고도 다시 빙판 위에 나섰다.

이들의 투혼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이제 메달 수, 색깔 등 성적보다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다. 녹록치 않은 훈련 환경 속에서도 4년의 시간 동안 묵묵히 피땀을 흘리며 준비해 온 패럴림픽 선수들은 이미 출전 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패럴림픽 때마다 저변 확대를 통한 장애인체육 경쟁력 강화, 세대교체 등이 과제로 지적된다. 십 수 년 전부터 큰 변화가 없다. 평창동계패럴림픽 이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제자리 걸음이다.

한민수 한국 파라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은 "사실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야 강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평창 대회 이후 우리나라 파라아이스하키에 많은 변화가 없었다는 게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안방 대회 이후라도 꾸준한 관심이 있었다면 고질적인 문제가 조금이나마 해결되고, 베이징에서 한국 선수단이 보인 모습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은 선수들이 아니라 평창동계패럴림픽 이후에도 장애인체육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지지 않은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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