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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슬램덩크 보면 친일?" 노재팬, 과연 온당한가

등록 2023.02.08 14:00:00수정 2023.02.08 15: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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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미선 기자 = "'노(No)재팬'을 잊은 건가요?"

지난 한해 유통가를 달궜던 주요 이슈 키워드들을 돌이켜 보면 유독 일본 관련 콘텐츠가 많았는데, 화제가 될 때마다 보이는 댓글이다.

오픈런(문이 열리자마자 뛰어가 구매하는 행위)을 일으키는 '포켓몬 빵'부터 무비자 자유여행이 허용된 뒤 폭발적으로 늘어난 일본 여행, 25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까지 새해 들어서도 국내에 'J(일본)콘텐츠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2019년 7월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를 계기로 불거진 노재팬(일본 제품 불매운동) 바람이 시간이 지나 차츰 사그라지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를 외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노재팬은 한때 국내 유통 업계 최대 난제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편의점과 대형마트엔 일본산 주류·음식이 자취를 감췄고, 대표적인 일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UNIQLO) 매장은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전범 기업'이 아님에도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이유만으로 외면 당하기 일쑤였다.

3년 사이 길고 어두운 코로나19 터널을 지났고 정권이 바뀌면서 한일 관계 기조가 변화하긴 했지만 포켓몬 빵과 슬램덩크 굿즈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고, 하늘 길이 열리자 가장 먼저 일본 여행을 예약하는 풍경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노재팬 열기가 한창 확산하던 2019년 당시엔 서로 눈치를 보게 되는 분위기까지 있었다. 유니클로 오프라인 매장 안은 텅 비기 시작했고, 문을 닫는 곳이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외부의 시선이 없는' 유니클로 온라인몰에선 여러 상품이 품귀 현상을 빚으며 인기를 얻는 대조적인 모습도 보였다. 비교적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온라인 상에선 개인 소비 취향에 따라 의사 결정을 한 셈이다.

요즘도 국내에서 포켓몬과 슬램덩크 등 일본 'J컬처'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기사에는 어김없이 "노재팬을 잊은 것이냐"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노재팬 불매 운동에 동참할 지 여부는 각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인데, 참여를 하지 않는다고 배신자로 낙인을 찍는 행태까지 일부에서 엿보인다.

역사·정치 인식과 별개로 자유 무역 시대에 특정 국가의 상품·서비스를 무조건 배척하려는 태도가 과연 온당한 지 의문이다. "현재 우리가 처한 외교·안보 상황이나 경제적 상황으로 볼 때 한일 관계는 과거에 너무 집착하기 보단 미래를 향해서 가야 한다"는 한덕수 국무총리의 최근 발언은 일리가 있다.

명동에는 한류 K컬처를 직접 보러 온 일본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국내 화장품·패션 업체 중 일본 진출을 갈망하고, 현지에서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곳들이 많다.

소비자의 필요에 따른 제품 선택과 민간 차원의 경제·문화 교류까지 억지로 막으려 해선 안된다. 혹여 노재팬이 개인의 신념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불매 운동 참여를 강요하는 것은 시대 정신에 맞지 않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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