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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연 20조 투자 메모리, 센트에 팔려…무거운 책임감"(종합)

등록 2023.03.29 15:43:27수정 2023.03.29 20: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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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주총서…메모리 사이클 관련 소회 밝혀

D램 과점에도 '죄수 딜레마' 빠져…가격 하락 지속

"美 보조금 신청 고민 중…올해 경영환경에 유연 대응"

中 공장 리스크에 "용인 팹 가동까지 시간 벌겠다"

[서울=뉴시스]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이 제75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제공) 2023.03.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이 제75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제공) 2023.03.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인준 기자 =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29일 "메모리 업계의 비시어스(Vicious·지독한) 사이클을 막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 대해 경영진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이날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제75기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해 "1년에 20조원 넘는 투자를 하고, 6개월 동안 600개가 넘는 공정이 투입돼 나온 제품이 센트(cent)에 팔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주총에서 한 주주가 '메모리 업계가 기술 개발을 위해 매년 20조원이 넘는 설비 투자를 하는데도, 다운턴만 되면 영업이익 적자를 우려해야 하는 것은 사업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 아니냐'고 질의한 것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밝힌 것이다.

또 "회사가 A100에 공급한 HBM(고대역 메모리)은 200달러 미만"이라며 "그런데 엔비디아가 팔고 있는 건 1만 달러"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메모리 제조사가 가격 결정권을 잡기 쉽지 않은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D램 업계가 처한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고 말했다. 이는 협동을 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배반을 선택하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박 부회장은 "D램 3사가 (설비투자 확대를) 따라가지 말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소용이 없다"면서 "D램 3사가 엄청난 공급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게임을 하면 고객 입장에서는 가격의 속도가 빨리 내려가는 과정을 겪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업턴(상승 전환 시기)에서는 저희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괴로울 수 있다"면서 "저도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설비투자 삭감에도 기술 경쟁은 지속할 것"

박 부회장은 올해 설비투자 50% 삭감과 관련해 "기술 경쟁을 멈추겠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 양산까지 가는 일정을 어떻게 조절해야 되는지를 고민하겠다는 얘기"라는 입장도 내놓았다.

그는 특히 "모바일용 칩은 작으면 작을수록 더 비싸게 팔 수 있었지만, 최근 가장 떠오르는 시장인 서버용 칩은 그 정도의 미세화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면서 "그런 부분에서 신규 기술 투자를 훨씬 더 적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주총에서 ▲한애라·김정원·정덕균 사외이사 선임 ▲한애라·김정원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박성하 기타비상무이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의 안건을 모두 원안대로 가결했다.

박 부회장은 주총 이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에 150억달러를 들여 짓는 어드밴스드 패키지 공장과 관련 "HBM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미국에 있다보니 미국을 (부지로) 선정하게 됐다"면서 "(부지선정과 관련된) 리뷰가 거의 주별로 끝이 나서 진행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의 깐깐한 보조금 심사와 관련 "엑셀을 요구하고 신청이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신청을) 많이 고민해보겠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는 패키징(후공정)이니까 전체 수율 데이터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생산) 공장을 지어야 하는 입장보다는 약간 덜 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경영 상황에 유연 대응…지정학 리스크, 해법 모색 중"

박 부회장은 이날 올해 경영 환경과 앞으로 계획을 밝히는 자리를 따로 마련해 주목 받았다.

그는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 환경에 맞춰 유연한 대응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면서 "시장의 상황에 맞춰서 양산 등에 대한 속도 조절을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또 "설비투자(CAPEX) 지출은 전년도 19조원 정도에서 올해는 50% 이상 절감하고, 올해 처음으로 운영비용(OPEX)도 감소하는 환경을 만들어낼 것"이라며 "유연한 생산 운영과 비용의 최적화 과정에서 쌓여진 노하우를 활용해 원가 경쟁력을 더욱더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중 갈등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해 "개별 기업이 상황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다만 각국의 정부와 고객의 요구에 반하지 반하지 않으면서 최적의 해법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을 매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미국에 중국 수출 통제 유예를) 1년 뒤 또 신청할 것"이라며 "용인 클러스터 생길 때까지 시간을 벌면서 경영계획을 변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말 인텔에서 인수한 솔리다임은 "올해 통합 시너지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판단한다"며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의 역량을 활용해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사업 확대 기반을 확대하고, 솔리다임은 후공정 제조 역량을 활용해 원가 경쟁력을 제공하는데 사용 중이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 신규 수요가 확대되면서 올해 DDR5가 명실상부한 주력 제품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라며, 모바일용 차세대 제품 LPDDR터보, 엔터프라이즈 SSD 프리미엄 제품군 등과 함께 DDR5를 앞세워 시장 입지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은 이와 관련 "서버용 DDR5와 같은 제품들은 수요가 굉장히 타이트한 부분이 있다"면서 저수익 제품을 감산함과 동시에 일부 첨단 제품은 가동률을 높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박 부회장도 "DDR5로 전환하는 데 우리가 제일 앞서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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