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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있던 임원들, 지금은?[삼성 프랑크푸르트 선언 30주년④]

등록 2023.06.05 08:03:00수정 2023.06.12 09: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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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사진. (사진=삼성전자 제공). 2020.10.25.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사진. (사진=삼성전자 제공). 2020.10.2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현주 기자 =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시켰다고 평가받는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30주년을 맞는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한 이 선언 이후 삼성은 30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1993년 6월7일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삼성 사장단과 주요 임원, 해외 주재원 등 200여명을 모아놓고 '신경영'을 선언했다. 기존 '양' 위주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수빈 제10대 비서실장, 현명관 제11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삼성전자, 생명, SDS, 에버랜드, 제일모직 등 전 계열사 사장단과 주요 임원들은 부랴부랴 항공권을 구해 비행기에 몸을 싣고 독일로 향했다는 후문이다.

이수빈 전 비서실장은 일명 '티스푼 설화' 주인공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 이 실장은 이건희 회장에게 "양을 포기할 순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이에 화가 난 이 회장이 손에 들고 있던 티스푼(후에 현명관 실장은 포크로 회고)을 큰 소리가 날 정도로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4개월 뒤 이 실장은 현명관 실장에 비서실장 자리를 내줬다.

이 전 실장은 이후 삼성생명 대표이사 회장, 삼성글로벌리서치 회장을 거쳐 현재 삼성글로벌리서치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 당시 회장직에서 잠시 물러났던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회장 직무대행을 맡기도 했다. 

현명관 전 실장은 호텔신라, 삼성시계, 삼성건설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제11대 비서실장에 올랐다. 3년 뒤 후임 이학수 실장에 자리를 내준 이후에는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및 상임고문, 삼성그룹 일본담당 회장, 삼성 라이온즈 구단주 등을 거쳤다. 현 전 실장은 2010년 삼성을 완전히 떠난다.

이후 2020년 7월 자서전 '위대한 거래'를 통해 이병철 창업회장과 이건희 선대회장과의 숨겨진 일화들을 전하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국제금융팀장이었던 황영기는 지난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10대 회장으로 취임해 사회공헌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1975년 삼성그룹 입사 이후 삼성물산과 삼성그룹 비서실, 삼성전자 자금팀장, 삼성생명 전략기획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재용 회장이 삼성전자 전무 시절 금융 사업에 대한 조언을 구할 때 가장 먼저 찾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삼성그룹 내 금융전문가로 손꼽힌다. 삼성을 떠난 뒤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과 KB금융지주 초대 회장, 금융투자협회 회장 등을 맡기도 했다.

박근희 CJ대한통운 부회장도 당시 프랑크푸르트 현장에 있었던 인물이다. 1978년 삼성에 입사한 박 부회장은 비서실, 삼성캐피탈 대표이사 사장, 삼성그룹 중국본사 사장 겸 삼성전자 중국총괄 사장,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과 부회장을 거쳤으며 2018년 CJ대한통운 부회장으로 영입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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