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커지는 전공의, 버티는 정부…의·정 갈등 '안개' 언제 걷히나
전공의들, 박민수 복지차관 공수처에 고소
"박민수 차관 경질 전까지 복귀 안해" 강수
복지부 "의대증원은 필수의료 개혁에 필요"
'과학적 근거' '통일안' 요구…기존입장 반복
16일도 브리핑 취소…사태 출구 전략 고심
"의사와 정부 싸움에서 국민은 배제" 비판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서울시내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04.04.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 박영주 기자 = 총선 이후 의·정 사태가 일단락될 거라는 기대와 달리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오히려 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의료개혁을 위해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반면 전공의들은 복귀 조건으로 복지부 차관 경질까지 요구하며 나섰다.
의사들의 집단 사직 효력 발생 시기도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등 의·정 갈등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모습이다.
"복지차관 경질" "의대 증원 백지화"…목소리 커진 전공의들
전공의들은 전날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수련병원장들에게 직권 남용을 해 전공의들의 사직서 수리를 금지했고, 필수 의료 유지 명령과 업무 개시 명령을 내려 젊은 의사들이 본인의 의지에 반하는 근무를 하도록 강제했다"면서 "박 차관이 경질되기 전까지 절대 병원에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차관이 건재한 이상 의료계와 정부 사이의 정상적인 소통은 불가능하다"면서 "함께 파트너십을 갖고 국민의 건강을 위해 협력해야 할 정부와 의료계의 관계가 파탄이 났다. 이 사태의 책임자인 박 차관을 즉시 경질하고 책임을 물어달라"고 정부를 몰아세웠다.
앞서 전공의들은 지난 2월20일 정부에 7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한 이후 극도로 말을 아껴왔다. ▲의대 증원 및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전면 백지화 ▲의사 수급 과학적 추계 기구 설치 ▲전문의 인력 증원 ▲의사 사법 리스크 대책 마련 ▲업무개시명령 폐지 ▲전공의 교육 환경 개선 ▲부당한 명령 철회 및 사과 등이다.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의 회동 이후에도 의·정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의 물꼬가 트일 거라는 기대와 달리 전공의들은 다시 입을 닫았다. 하지만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후 정부를 향한 전공의들의 공세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여기에 의사들도 전공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동안 불거진 내부 갈등을 빠르게 봉합하고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단일대오'를 강조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원장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의협과 당선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개원가 등 모든 직역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겠다"고 말했다. 의협은 "의대 증원 원점 재논의"라는 게 정부가 요구한 의료계의 단일 안이라는 입장도 내놨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전공의들이 1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정책피해 전공의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 집단고소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24.04.15. [email protected]
정부 '의대 증원' 고수…의료 공백 장기화에 셈법 복잡
전공의들 복귀를 위한 수단으로 박 차관의 경질은 없을 거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의료 개혁을 위한 의사 증원은 박 차관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닌 정부의 결정이라고 못 박았다.
실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1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2025년도 대입 일정을 고려할 때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인 만큼 의료계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통일된 대안을 조속히 제시해 달라"면서도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 개혁 4대 과제는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선결 조건"이라고 밝혔다.
다음 달 말 '2025학년도' 대입전형 모집 요강'에 의대 증원 규모가 최종 반영되면 의대 증원은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의·정 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는데 정부는 오히려 의료계 쪽으로 공을 돌리며 기존 입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의·정 갈등 출구를 찾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브리핑을 열지 않고 의·정 갈등의 출구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역시 정부는 브리핑을 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정부와 의료계가 강대강 대치와 맞물려 의사들의 사직 효력 발생일인 25일도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의·정 갈등이 걷잡을 수 없게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의대 교수들은 4월25일부터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다. 민법에 따르면 고용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근로자의 경우 사직 의사를 밝힌 뒤 한 달이 지나면 사직 효력이 생긴다.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대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강의실이 비대면 수업으로 텅 비어있다. 2024.04.15. [email protected]
치킨게임에 속 타는 환자들…"어느 한쪽 양보해야 끝날 듯“
이어 "의료인들의 응급실과 중환자실 이탈방지법 제정해 의료 종사자들이 의료현장을 이탈하여 환자의 생명과 치료권을 집단행동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의·정 갈등으로 환자들의 피해는 가중되고 있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한 치의 양보 없이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기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이 세련되지 않고 환자들의 불편을 가중한 건 잘못이지만, 지역 간 의료격차 및 필수 의료 공백 해결을 위한 의대 증원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환자들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의사 집단의 반대를 못 이겨내는 상황"이라며 "의사와 정부의 싸움에서 불편을 느끼는 국민은 막상 배제됐다"고 꼬집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치킨게임으로 끝까지 가는 상황"이라며 "결국 (의대 증원) 1년 유예와 의대 증원 강행을 놓고 한쪽이 양보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리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고 대통령 담화 등으로도 절충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며 "전공의가 돌아올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굽히지 않고 끝까지 의료개혁을 추진하려면 앞으로 1년을 어떻게 버틸지, 내년에도 전공의가 안 돌아올 때 어떻게 대응할지 등 누적된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2024.04.0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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