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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뜻돌 "음악, 저에 대한 본격적 탐구죠"

등록 2021.01.29 12: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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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정규 1집 '꿈에서 걸려온 전화' 호평

[서울=뉴시스] 김뜻돌. 2021.01.29. (사진 = 본인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뜻돌. 2021.01.29. (사진 = 본인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예전엔 제 바깥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고민을 했었어요. 그러다 음악을 진지하게 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일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죠. 저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된 거예요."

내면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노래에 정작 마음을 내어준 적은 별로 없다. 크게 목 놓아 부르는 마음은 오히려 세상과 적절하게 타협하겠다는 의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싱어송라이터 김뜻돌(25)의 노래는 천연스러움으로, 듣는 이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그녀가 지난해 9월 발매한 첫 번째 정규 앨범 '꿈에서 걸려온 전화'의 자유분방하면서 몽환적인 매력에 빠져 보면 안다. '꿈'과 '전화'가 맞물린 콘셉트 속에 듣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영법(泳法)으로 유영하게 만든다.

수록곡 '삐뽀삐뽀'는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을 통해 중독성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멜로디 밑에 깔린, 주제 의식도 묵직했다. "고공 크레인에 내가 깔려죽어도 / 이 밤 저 밤 헤매다 내가 사라지면 / 그제서야 찾으러 전화하지는 말아요 (…) 시끄러운 뉴스만 진짜는 아니야"라는 노랫말은 사회문제 속 타자화된 개인을 톺아본다. 

김뜻돌의 본명은 김지민. 한자는 뜻 지(志)에 옥돌 민(珉)을 쓴다. 이 풀이를 가져와 '돌 하나에도 뜻이 있다'는 '뜻돌'을 예명으로 지었다. 돌멩이 하나에서도, 따듯함과 의미를 찾게 만드는 것이 그녀의 힘이다.

최근 몇 년간 데뷔한 신인 중 이처럼 날 것의 매력을 뿜어내는 동시에 노련미까지 갖춘 뮤지션은 흔하지 않다. 최근 합정역 인근에서 만난 김뜻돌이 그랬다.

-아버님 덕에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버지가 LP(바이닐)로 음악을 많이 들으셨어요. 산울림, 프린스 등이요. 친구분들 불러서 작은 파티도 자주 여셨는데 그 때마다 제가 노래를 했죠. (밥 딜런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라디오헤드의 '하이 앤 드라이'처럼 아버지 친구들과 '떼창'할 수 있는 곡들을 불렀죠.(웃음) 가야금 같은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피드백을 받다가 곡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대학에선 음악 전공이 아닌 사회과학을 공부했습니다.

"싱어송라이터에 대해 동경은 했지만, 그걸 직업이라고 생각은 못했던 거 같아요. 첫 싱글('꿈속의 카메라') 발매도 재미있는 취미 활동이라 생각했죠. 다만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었어요. 노래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제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사회과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다 진지하게 음악을 하고 싶어서 학교를 그만뒀죠."

-회사 없이 모든 걸 혼자서 다해낸 앨범 '꿈에서 걸려온 전화'는 호평을 들었습니다.
 
[서울=뉴시스] 김뜻돌. 2021.01.29. (사진 = 본인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뜻돌. 2021.01.29. (사진 = 본인 제공) [email protected]

"과거의 저를 정리한 앨범이에요. 싱글만 내다가 종지부를 찍고 싶었죠. 이렇게 모아보니,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가지런하게 만든 느낌이에요."

-앨범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을 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죠.

"기대를 별로 안 했는데, 목표 금액의 200% 이상을 달성했어요. 크라우드 펀딩 회사(텀블벅)에서도 도움을 주셨죠. 그런데 앨범 완성도에 집중하느라 그 당시에는 그런 기쁨을 누리지 못했어요."

-최고 후원자분들을 위한 공연을 약속했는데, 거제도까지 갔다고요?

"거제도에서 사시는 분이 후원을 하셨는데, 처음엔 '괜한 일을 벌인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멀고 예산도 빠듯했죠. 그런데 아버지께서 약속한 건 지켜야 하고, 팬분들을 위한 공연이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제 대장정을 브이로그(비디오의 형식으로 인터넷에 기록되는 블로그)로 찍었죠. 곗돈을 모아 후원을 하셨고, 대구에서도 제 공연을 보러 오셨더라고요. 너무 감동을 받았고, (갈까 말까에 대해) 고민한 것이 부끄러웠죠. 초심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됐어요."
 
-2017년 '꿈속의 카메라'로 데뷔했고, 몽환적인 곡 '사라져'로 호평을 듣기도 했어요. 스스로 생각할 때 분기점은 언제인가요?

"얼떨결에 데뷔를 하게 됐어요. 처음엔 '전문적인 지식이 좀 더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스터링과 믹싱 같은 기술적인 부분이 아쉬웠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신선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은 '기술이 채워줄 수 있는 건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그리고 과거의 모습도 저의 일부분이라는 '자기 긍정'을 하게 됐어요. 정규 앨범을 준비하면서 저 자신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매번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나다운 음악'이라는 걸 알게 됐죠."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박문치를 비롯 주변에 좋은 동료 뮤지션 분들이 많습니다.

"조상의 은덕이에요.(웃음) 좋은 친구들이 좋은 친구들을 알더라고요. 저는 음대를 나오지 않아서 음악계에 아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친구들이 친구들을 소개시켜주면서 큰 도움을 받았죠. 얼떨떨해요."

[서울=뉴시스] 김뜻돌. 2021.01.29. (사진 = 본인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뜻돌. 2021.01.29. (사진 = 본인 제공) [email protected]

-앞서 한 인터뷰를 찾아보니까 앞으로 '얼터너티브 록'을 하고 싶어한다고요. 지금까진 포크 기반의 곡들이 많았는데요.

"예쁘게 만들어놓은 걸 부셔버리고 싶은 욕망이 제 안에 있더라고요. 조용한 도서관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과 같은 거죠. 가장 고귀하게 느껴질 때, 추락하고 싶은 생각이 동시에 들기도 하잖아요. 고민하기보다 강하게 밀어붙이며 소리를 지르는 곡을 만들고 싶어요."

-어떤 음악들을 많이 들었나요?

"너바나, 에이미 와인하우스 노래요. 제게 자유로움을 가져다줬어요. 저는 아직 덜 자유스러운 면이 있거든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견을 깨부수고 싶은 욕망이 큽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부터 깨져야죠."

-코로나19로 힘든 한해를 보냈죠?

"단독 콘서트가 무산된 것이 가장 아쉬웠어요. 밴드 멤버들에게 미안했죠. 공연이 생업이잖아요. 고민을 할 수 있는 이 시기에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고민이 많아지면 노래가 안 나와요. 심심하면, 뭐가 하고 싶어지죠."

-코로나19 때문에 확정해서 알려주시기는 힘들겠지만, 올해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어떤 걸 하고 싶어요?

-여름에 EP를 낼 계획입니다. 더울 때 안 해본 음악을 선보이고 싶어요. 그리고 코로나19가 진정된다면 미국에서 록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싶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나요?

"록스타요.(웃음) 그리고 듣는 분이 내면을 탐구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제 음악을 들었을 때 자신을 돌아보고 아껴줄 수 있거나 자극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좋은 음악을 들으면, 저를 돌아보게 되거든요. 추억으로 여행을 하게 되죠. 예술은 표현하기 힘든 모순을 표현할 수 있고, 거기서부터 치유를 끌어올려 힘을 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의 다양한 표현이 판단 없이, 좋고 나쁨 없이, 아름답게 받아들여졌으면 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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