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사람 분기하라' 곡성 만세운동 이끈 정내성 지사
보통학교 학생으로서 태극기·격문 만들며 읍내만세운동 주도
'대통령 표창' 추서…아들 "건국 공로 이제라도 인정돼 기쁘다"
[곡성=뉴시스] 독립유공자 고(故) 정내성(1902~1950) 선생의 생전 모습. (사진 = 정항복씨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제77주년 광복절인 15일 고(故) 정내성 독립지사를 대신해 대통령 표창을 받는 막내아들 정항복(73)씨는 "곡성 청년들의 의로운 행동을 이끈 아버지의 공로가 이제서야 빛을 봤다. 자랑스럽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독립지사는 1919년 3월 29일 곡성공립보통학교 학생 신분으로 곡성 읍내 만세운동을 이끈 공적을 인정받아 이번 표창에 추서됐다.
1902년 태어난 정 지사는 보통학교 재학 당시인 만 17세의 어린 나이에 만세 운동을 주도·계획했다.
정 지사는 동급생들과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놀던 중, 독립운동가이자 은사인 신태윤 선생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신 선생은 '여유롭게 고기잡이나 즐길 때가 아니다. 이미 남원, 담양 학생들은 솔선해 조선 독립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곡성 청년들은 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라며 정 지사 일행에게 야단을 쳤다.
정신이 번쩍 든 정 지사는 이튿날부터 재학생들과 만세운동의 뜻을 모았다. 또 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격문 20여 장을 직접 써서 돌렸다.
격문에는 '우리 곡성의 제군이여! 가슴에 있는 의지를 잃지 말자. 우리도 대한 사람이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분기하라! 우리들도 제군과 함께 궐기할 것이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 지사는 뜻을 함께하는 학생들을 모아 만세운동 사흘 전인 26일 태극기를 만들고 구체적인 거사 계획을 세웠다.
읍내 장날이던 29일 오전 정 지사는 읍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박수창, 김경석, 김중호 등 재학생을 비롯해 주민 수백여 명이 동참했다.
[곡성=뉴시스] 1919년 5월 13일 광주지방법원이 판결한 독립운동가 고 정내성(1902~1950·붉은 색 네모) 선생의 보안법 위반 판결문. 판결문에는 정 선생이 태극기를 만들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혐의가 적혀있다. (사진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일제 경찰에 의해 붙잡힌 정 지사는 보안법 위반 혐의로 같은 해 5월 13일 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두 달간 옥고를 치른 뒤 보석으로 겨우 풀려났다.
이후에도 정 지사는 지역 발전과 민족 운동에 힘썼다. 보통학교 졸업생들과 함께 비밀리에 한글을 가르치고 독립 운동가들에게 여러 차례 자금을 지원했으며, 광복 직전에는 지역 청년들과 '한국청년단'을 꾸려 활동했다.
정 지사는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5일 곡성경찰, 한국청년단원들과 함께 읍내로 들어서는 북한군을 막아서는 과정에서 생을 마쳤다.
아들 정씨는 이제라도 아버지의 공적을 기릴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의병의 고장 곡성에서 펼친 아버지의 의로운 행동이 광복 77년 만에 인정받았다. 많은 이들이 조국 광복을 위해 이 땅에 펼쳐졌던 만세 운동을 기억하고 그 뜻을 이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광주시는 이날 광주 동구 광주극장에서 제77주년 광복절 기념행사를 열고 정 지사를 비롯한 지역 독립운동가 5명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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