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만도 못한 취급, 원생들 앞에서 그 짓까지" [덕성원을 아십니까②]
구타 후유증에 금전사기 피해까지
"덕성원, 영화 '도가니' 이야기 그대로"
[부산=뉴시스] 김민지 기자 = 덕성원에서 작성된 안종환(50)씨의 아동기록카드. 성명과 생년월일, 본적, 입소 일자, 신체 조건 등이 기재돼 있다. 안씨는 실제로 1975년생 출생이지만, 1977년이라고 잘못 기재돼 있다. 또, 입소 일자와 입소 경로, 덕성원 이전에 머물던 형제복지원에 입소된 날짜도 안씨가 밝힌 날짜와는 다르게 적혀 있다. (사진=안종환씨 제공) 2024.02.27. [email protected]
[부산=뉴시스]김민지 기자 = 덕성원을 거쳐 간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덕성원에 대해 똑같이 표현했다. '지옥'과 같은 장소라고, 또 어린 나이에 겪은 일들이라 '그러한 일들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고. 어린 시절 덕성원에서의 참혹한 일들은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 깊이 씻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곪아가고만 있다.
◇벌레만도 못한 취급, 우린 그들에게 '장난감'이었다
1978년 세 살배기였던 한 남자아이는 어머니 등에 업힌 채 알지 못하는 장소로 가게 됐다. 그 장소는 형제복지원이었다. 이후 1982년에 홀로 덕성원으로 옮겨진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덕성원 피해자협의회 대표 안종환(50)씨는 형제복지원에서 엄마를 잃었고, 덕성원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자신이 덕성원에서 당한 바퀴벌레보다 못한 대우는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며 울먹거렸다.
안씨는 초등학생 무렵부터 덕성원 운영진들에게 심한 폭력을 당했다. 자신에게 폭행을 가한 관리자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였다.
안씨는 "관리자가 여자였는데, 그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여자의 단발머리도. 그 관리자는 구타를 일삼았고, 우리는 인간이 아닌 그저 '장난감'일 뿐이었다"고 강조했다.
[부산=뉴시스] 김민지 기자 = 21일 부산 수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덕성원피해자협의회 대표 안종환(50)씨. 그는 덕성원 운영진 서씨와 금전 거래가 오간 것을 증명하는 금전소비대차계약공정증서 사본 일부를 내보이며 그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2024.02.21. [email protected]
그는 덕성원에서는 폭력이 '일상생활'이었다고 했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바지에 소변까지 본 기억이 난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그의 얼굴에는 아직 구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음식을 씹을 때마다 그의 턱에서 나는 '딱' 하는 소리는 잊고 싶은 덕성원의 기억을 환기시킬 뿐이었다.
안씨는 자신도 꿈이 많은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고 회고했다. 공부 욕심도, 호기심도 많고 똑똑했지만 덕성원은 안씨에게 그 꿈을 펼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매일 일하고, 일을 안 하면 맞는데 어떻게 맘 편히 공부를 할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덕성원의 생활을 십수 년 참고 버틴 그는 덕성원에서 나온 뒤로 힘든 일을 가리지 않고 해왔다.
사회에서 혼자 힘으로 먹고살아야 했기에 공장 제조업, 건설업, 생선 도매업 등 갖은 노동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부산=뉴시스] 김민지 기자 = 덕성원피해자협의회 대표 안종환(50)씨와 덕성원 운영진 서씨의 금전거래 내역을 증명하는 금전소비대차계약공정증서 사본 일부. 채권자 이름에는 안종환, 채무자 이름에는 서씨의 이름이 기재돼 있으며, 금액에는 1800만원이 적혀 있다. 안씨는 서씨에게 총 3억원 가량의 금전 사기를 당했다고 밝혔다. 2024.02.27. [email protected]
하지만, 덕성원과 안씨의 모진 인연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안씨는 피땀 흘려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덕성원 일가에 고스란히 사기당하고 말았다.
'덕성원이 폐쇄 위기에 놓였다'며 '아이들이 그냥 길바닥에 나앉게 할 수는 없지 않겠냐'는 덕성원 운영진의 말에 동정심이 든 안씨는 운영진에게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수백만 원에서 시작한 금액은 수천만 원, 수억 원으로 불어났다. 안씨는 덕성원 일가에 총 3억 원을 빌려줬으나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 사건 이후 안씨는 잘하지도 못하는 술과 담배 입에 단 채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다.
◇쌍둥이 언니와 함께 잡혀간 덕성원, 성폭행 피해도
김모(50대)씨는 5살 무렵 쌍둥이 언니와 함께 덕성원에 입소하게 됐다. 정확한 입소 계기는 너무 어린 나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부모님이 계셨다는 이야기를 크고 나서 얼핏 듣긴 했지만, 지금 부모님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다.
쌍둥이 자매에게 덕성원의 생활은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와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예배를 드리고, 그 이후에는 밭일을 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어린 김씨는 그러한 일들이 '당연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매일 같이 나오는 고추장, 된장, 장아찌 등의 반찬과 푸석푸석한 꽁보리밥 또한 그에게는 투정 부릴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덕성원에서 벗어나기 위해 쌍둥이 언니와 함께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족족 실패했고, 흠씬 두들겨 맞기만 했다.
김씨는 덕성원 운영진 일가로부터 성폭행까지 당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그것도 원생들 앞에서 그 짓을 하더라"며 "쌍둥이 언니도 함께 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기억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들이 과연 인간이긴 할까'하는 생각마저 든다"며 "영화 '도가니' 이야기 그대로"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덕성원에서 겪은 고통 탓에 수십 년째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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