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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문화人-④] 연극배우 겸 시인 장수진 "등단 5년만에 첫 시집내요"

등록 2016.09.25 10:00:00수정 2016.12.28 17: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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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연극배우 겸 시인 장수진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9.25.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연극배우 겸 시인 장수진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9.2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인 연극배우 장수진(35)은 고등학교 때 잡지 모델로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다. 쎄씨, 유행통신 등 당신 인기를 끌던 잡지들이었다. 또래에는 꽤나 유명 인사였다.

 이후 당시 유행하던 VJ를 맡아 TV에도 나왔다. 연예인의 꿈이 없던 그는 PD에게 당차게 물었다. “뭘 믿고 저를 뽑았나요?” PD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했다. “너 정도의 외모면 TV에 나와도 된다.”

 하지만 이후 장수진의 모습은 TV에서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대신 연극 무대에 부지런히 오르고 있다. 가을 햇살이 반짝이던 어느 날 검은 헬멧을 쓴 채 크림색 자전거를 타고 성북동 카페 앞에 나타난 그녀가 말했다. “연예인이 아닌,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고지식한 애늙은이

 도도하고 새침해 보이는 장수진은 어렸을 때부터 애늙은이로 통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조용히 책만 읽던, 작가가 꿈이던 문학소녀였다.

 서태지, 듀스 등 댄스 음악의 황금기에 그녀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 음악을 비롯한 올드 팝, 양희은과 김민기의 포크 음악을 들었다.

 고지식하기도 했다. ‘연기를 하려면 연극과를 가야지’ 그러면 그 때 최고의 연극과로 통한 ‘서울예대 연극과’. 그렇게 해서 장수진은 03학번 이 과에 입학했다.

 이후 연극을 하려면 당연히 극단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었다. 박근형 연출이 이끈 극단 골목길에서 5년 간 몸담은 이유다. 당시 박 연출은 서울예대 교수였다.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연극배우 겸 시인 장수진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9.25.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연극배우 겸 시인 장수진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9.25.  [email protected]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연습을 하다가 로비에서 친구들과 잠이 들었어요. 근데 새벽에 누가 우리를 깨우더라고요. 박 교수님이 요구르트를 잔뜩 사서 나눠 주시며 ‘마시라’고 하는데, 아 이 선생님하고 같이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무엇인가 낭만적이었죠. 호호.”

 2010년 또 다른 운명이 찾아왔다. 연극 ‘오이디푸스’를 무대에 올리던 중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고통보다 ‘계시’가 먼저 그녀를 지배했다. ‘서른살의 나이,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극단도 그녀도 병원에서 치료받을 돈이 넉넉지 않았던 상황.  

 “연극을 하고 산다는 것에 고민이 쌓여 있던 시기였어요. 저는 연극이 너무 재미있고 정말 귀한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사는 이 사회에서는 천대받고 있다는 생각이 너무 든 거예요.”

 그러 생각이 연극에 대한 애정을 식힌 건 아니다. “이런 상황을 뚫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연극을 향해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

 무대에 잠시 설 수 없던 그 시점에서 어린 시절, 글쓰기를 향해 품었던 애정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던 중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드는 거예요.”

 글쓰기 수업도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장수진은 ‘제12회 문학과사회’ 시 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연극을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상주의자이자 몽상가였던 거죠. 시를 통해서는 현실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번쯤 현실적인 사람이 돼 보자’라는 생각을 한 거죠.”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연극배우 겸 시인 장수진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9.25.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연극배우 겸 시인 장수진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9.25.  [email protected]

 ◇시인으로서 자부심, 첫 시집이 빛을 볼 시간  

 장수진은 등단 5년 만에 첫 시집을 낼 계획이다. 등단을 하면서 시를 썼기 때문에 그간 쌓인 원고가 없어 늦어졌다. 이달 말 원고를 넘기면, 시집은 내년쯤 빛을 보게 된다. 출판사는 등단한 곳인 문학과 지성사로 예정됐다.

 “마침표를 어디에다 찍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시를 썼어요. 그래서 저를 더 엄격하게 대했죠. 성북동에 작업실을 얻고, 회사원들의 출퇴근 시간처럼 계속 시를 썼어요.”  

 자신에게 맞는 시인지 아닌지를 곱씹으면서 4년간 쌓아둔 시는 약 80편. 시집 제목은 ‘사랑에 빠진 자는 개 이름을 바꾼다’(가제)로 정했다.

 “아버지, 나 이 미친 세상의 남자가 될래요 // 오오 이런 대단한 녀석, 무기를 챙기렴 // 은주는 아버지를 옷걸이에 걸어 옷장에 넣는다 // 쉬세요 // 그래 딸아, 창가의 선인장을 부탁한다 // 죽은 선인장들 사이로 탐스러운 미농지 꽃들// 가짜였/ 이런 낭만적인 양반을 봤나 // 이 따위 종이꽃으로 저 지리멸렬한 개죽음들을 / 가릴 수 있다고 믿은 거예요 // 그는 옷을 갈아입는다 // 바지, 조끼, 모자, 총, 장화, 수염 / 거실을 꽉 채운 검은 말과 서부 음악 // 명사수가 될 것인가 / 명배우가 될 것인가 // 밖은 전쟁이라죠, 아버지 난 너무 무서워요”(‘은주의 외출’ 부분)

 장수진이 e-메일로 미리 보내준 소중한 시 3편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속에 팍팍한 현실과 그의 애잔함이 적당히 녹아들어가 흡입력이 상당했다.

 “사랑에 관한 내용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 그녀의 마음이 수긍됐다. “연극을 한 이유 중에 하나가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그 중 연기를 택한 건 장수진으로 태어나서 나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지겨워서였죠. 호기심과 모험심이 강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무척 궁금했거든요.”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연극배우 겸 시인 장수진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9.25.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연극배우 겸 시인 장수진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9.25.  [email protected]

 그런 평소 생각이 시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됐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그 만큼 퇴장해요. 처음 시를 쓸 때는 이미지에 매혹됐는데 지금은 여러 인물들의 삶을 상상하면서 쓰고 있죠.”

 ◇연극배우로서의 고민은 여전히  

 시인으로 삶을 하나 더 추가했지만 연극배우로서 고민 역시 치열하다. 지난 4년간 이경성 연출이 이끄는 창작연극 집단 크리에이티브 바키와 함께 하며 이상주의자였던 장수진은 땅에 발을 딛게 됐다.

 이 팀은 남산의 지형학적인 환경과 역사적인 맥락을 살핀 ‘남산 도큐멘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비포 애프터’ ‘그녀를 말해요’ 등 연극에 다큐멘터리 기법을 더한 어법으로 주목 받는 팀이다.

 “2012년 낙엽이 무수하게 떨어지던 날 이경성 연출을 만나 토론 하듯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잘 통했어요. 무엇보다 ‘맨 땅에 헤딩’하는 자세가 좋았죠. 특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중시하고 공부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고요. 저 역시 구두방 아저씨, 간판집 할아버지 등 바로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 관심이 많아졌죠. 삶의 갖고 있는 처연함,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이 더 커졌어요.”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작업은 느릿느릿하다. “저 역시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오래 깊게 생각하기거든요. 고집도 세고. 호호. 그럼 면에서 빨리 성과를 내는 소비 방식이 아닌, 더디더라도 신중하게 조끔씩 나아가는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행운이죠.”  

 ◇연극은 가난하지만…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연극배우 겸 시인 장수진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9.25.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연극배우 겸 시인 장수진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9.25.  [email protected]

 장수진은 ‘연극을 하면 가난하게 살 텐데’라는 생각은 이미 갖고 있었다. “근데 실제 연극을 하니까 정말 가난하더라”고 웃었다.  

 “20대 때는 그런 가난이 불편했죠. 어릴 때부터 좋아한 무용 등 더 레슨을 받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스스로 투자를 더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여유는커녕 생활조차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가난을 뚫고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게 사는 것에 대해 깨달은 거죠. 물론 돈이 많고 풍족하면 몸은 편하기는 할 거예요. 하지만 제가 말랐잖아요? 생각보다 몸을 많이 움직여요. 오늘도 자전거 타고 왔고, 층을 오르내릴 때는 주로 계단을 사용해요. 그런 불편함이 일상에서 의식하지 못했던 걸 일깨워줘요. 예민하게 만드는 동시에 나태하지 않게 해주죠. 잘 먹고, 잘 놀고, 푹 퍼지면 느슨해질 수 있죠. 물론 삶에도 몇 번은 그런 것이 필요하지만요.”  

 무엇보다 지금 이 청춘을 ‘잘 먹고 잘 사는, 안락한 삶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살았는지 느끼게끔 치열하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산문집과 포토 에세이를 나중에 발매하고 싶다는 장수진은 다양한 언어로 세상과 만나는 방식에 대해 고민 중이다. 지금은 무의식적인 꿈의 언어에 사로잡혀 있다. 그로테스크한 정서가 물씬 풍기는 시 역시 그런 영향을 받았다.

 “뉴스에선 떠들었다 / 폭염, 다들 화나 있습니다 //한 선배는 천국 김밥을 입에 욱여넣으며 / 쉰 목소리로 대꾸했다 / 이 정도면 편하게 돈 버는 거지, 시히금치 쉬었네”(‘폭염 속에서’ 부분)  

 하지만 현실에 밀착한 꿈의 언어다. 극단적인 것이 공존하는 장수진의 성향답다. 고지식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똬리를 틀고 있어, 언제나 삶은 공식을 벗어났다. 사진 촬영 할 때 몽환적인 모델 포스를 한껏 풍기다, 헤어지는 자리에서 노동자의 처연한 다리처럼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은 그녀가 말했다.  “연극이든 시든, 제가 무엇을 하든 그런 양가적인 면을 아우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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