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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히잡 시위'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 한달…"43년만 최대 도전"

등록 2022.10.17 12: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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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탄압 상징 '테헤란 교도소'서 무력충돌

언론인보호위(CPJ), 언론인 40명 체포 분석도

반정부 시위서 이슬람 통치 종식 요구로 확대

이슬람 지도부 43년, 가장 심각한 시험대 직면

"시위, 지도자 필요"…"당국, 물러서지 않을 듯"

[테헤란=AP/뉴시스] 16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에빈 교도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다. 이란 당국은 정치범과 반정부 인사들이 수용된 교도소 화재로 4명이 숨지고 6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2022.10.17.

[테헤란=AP/뉴시스] 16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에빈 교도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다. 이란 당국은 정치범과 반정부 인사들이 수용된 교도소 화재로 4명이 숨지고 6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2022.10.17.


 [서울=뉴시스] 이승주 기자 = '여대생 히잡 사망' 사건에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16일(현지시간)로 한달째가 됐다. 이른바 'Z세대'라고 불리는 1020세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시작했던 히잡 착용 의무화에 항의하던 시위는 석유 노동자들과 교도소 수감자들까지 동참하면서 반정부 시위 수준을 뛰어 넘어 이란 정권 전복을 위한 폭동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15일 반정부 인사들이 주로 수감된 테헤란의 에빈 교도소에서 수감자와 교도관 사이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재소자들이 죄수복으로 가득 찬 창고 건물에 불을 지르면서 화염이 치솟았고, 이로 인해 수감자 4명이 사망했다. 경찰은 교도소와 통하는 도로를 모두 차단했고, 소방 당국은 진화 작업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소동은 에빈 교도소 내 금융 범죄와 다른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수감자들이 주로 수용된 건물에서 시작됐지만, 정치범과 반체제 인사들이 수용된 건물로 빠르게 확산됐다"며 "반체제 인사들은 불이 확산되기 전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고 보도했다.

이란을 한 달 간 뒤흔든 이 시위는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22)의 사망에서 촉발됐다. 아미니는 히잡 등 이슬람 율법이 요구하는 복장을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 경찰에 구금되던 중 의문사했다. 경찰은 아미니가 지병인 심장마비로 자연사했다고 주장했지만 가족들은 고문을 당하고 죽었다며 반박했다.

이 사건은 반정부 시위에 불을 붙였다. 당국의 인터넷 차단과 폭력적인 억압에도 저항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는 2019년에 발생한 유가 인상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이자 최장 기간 지속된 시위다.
[테헤란=AP/뉴시스] 19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시내에서 복장 규정 위반으로 구금됐던 여성이 숨진 것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경찰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지난 13일 테헤란에서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20대 여성이 16일 경찰 조사 중 숨지자 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항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이란 경찰은 해당 여성이 심장마비 증상을 보였다고 밝혔으나 유족은 고인이 심장 관련 질환을 앓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2022.09.20.

[테헤란=AP/뉴시스] 19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시내에서 복장 규정 위반으로 구금됐던 여성이 숨진 것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경찰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지난 13일 테헤란에서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20대 여성이 16일 경찰 조사 중 숨지자 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항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이란 경찰은 해당 여성이 심장마비 증상을 보였다고 밝혔으나 유족은 고인이 심장 관련 질환을 앓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2022.09.20.




그동안 이란의 많은 배우나 감독, 예술가, 시인, 스포츠 스타 등은 이번 시위를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점차 10대 학생들과 정유·가스 노동자 등 연령과 직업을 초월한 것은 물론 국경까지 넘어 확산됐다. 이 같은 움직임이 계속되자 최근 이란 당국은 활동가와 언론인에 대한 단속도 강화하고 있다. 16일 가디언이 언론인보호위원회(CPJ) 자료를 인용한 것에 따르면 이란에서 최소 40명의 언론인이 체포됐다.

이번 에빈 교도소 사건을 보면, 단순 반정부 시위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에빈 교도소가 반체제 인사들과 외국인을 가두기 위해 50년 전 세워진 정치 교도소란 점에서다. 1979년부터 시작된 이슬람 통치의 종식을 요구하는 시위로 변모하는 것이란 분석이다.

이란 당국은 "이번 사건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았다. 이는 최근 이어진 반정부 시위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43년의 이슬람 지도부 체제에서 가장 심각한 시험대에 직면한 상황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영국에 기반을 둔 NGO(비정부기구) '이란을 위한 정의(Justice for Iran)'의 책임자 샤디 사드르는 "시위대는 진정한 변화를 요구하며 지배적인 담론을 바꿨다"며 "이들은 이란 정치 체제를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함 알반디 런던경제대 부교수는 "이슬람 공화국을 넘어 생각할 때"라며 "(이슬람 체제의) 개혁은 죽었다"고 말했다.
[테헤란=AP/뉴시스] 17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종교행사 '아르바인'에 참석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3)가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은 이란 최고지도자실이 제공했다. 2022.09.17

[테헤란=AP/뉴시스] 17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종교행사 '아르바인'에 참석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3)가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은 이란 최고지도자실이 제공했다. 2022.09.17


과연 시위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 AFP통신은 "이란의 지도부가 이슬람 혁명 이후 가장 큰 도전에 직면했지만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는 확실치 않다"고 전망했다.

현재 시위대의 규모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지만, 이란 정부도 무력 탄압과 인터넷 차단 등의 억압을 계속할 것으로 봤다.

AFP통신은 "아랍의 봄 이후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을 물리치는 데 성공한 반정부 시위는 거의 없었다"며 지도자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벨기에 브뤼셀의 비영리단체 카네기 유럽의 코넬리우스 아데바르는 AFP통신에 "이번 시위가 이슬람 공화국 종말의 시작을 의미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이 시위는 지속돼야 한다. 어떤 지도자가 있는 구조를 찾아야 한다"며 "거리에서 지속적으로 시위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요구 이상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무자비한 독재자를 쓰러뜨리려 했던 사례들이 이번 시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진 않는다"며 "시위 행진들이 외치는 반체제 구호 때문에 이란 당국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기로 결심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joo4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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