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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우크라전 美中갈등…세계화 공동번영 끝났다"

등록 2023.06.19 15:09:40수정 2023.06.19 16: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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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NYT "더 이상 자유무역이 번영 보장하는 시대 아냐"

공산권 붕괴 후 30년… 시장·효율성·교역 유지 강조

자유시장·WTO 중심축인 미국이 자유무역에서 이탈

[난닝(중국)=신화/뉴시스]미국 뉴욕타임스는 18일(현지 시간)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관계 악화 등으로 세계화 이념이 깨지면서 번영과 공동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9일 중국 남부 광시 좡족 자치구에 있는 친저우 항구의 컨테이너 터미널 모습. 2023.6.19.

[난닝(중국)=신화/뉴시스]미국 뉴욕타임스는 18일(현지 시간)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관계 악화 등으로 세계화 이념이 깨지면서 번영과 공동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9일 중국 남부 광시 좡족 자치구에 있는 친저우 항구의 컨테이너 터미널 모습. 2023.6.19.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화를 통한 전세계 경제의 공동 번영이라는 이념이 국제 경제 발전의 기본 이념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관계 악화 등으로 세계화 이념이 깨지면서 번영과 공동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18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다음은 기사 요약.

2018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모인 경제, 정치 지도자들은 의기양양했다. 주요국들의 경제가 성장세를 보이는 시점이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당시 국제금융기구(IMF) 총재는 세계경제가 “최상의 시기에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5년 뒤인 현재 전망이 완전히 뒤집혔다.

세계은행(WB)은 최근 보고서에서 “30년 동안 진보와 번영을 추동해온 거의 대부분의 주요국들이 쇠락하고 있다”며 “일부 국가들만이 아닌 전세계적에 잃어버린 10년이 올 수 있다”고 썼다.

5년 새 팬데믹, 전쟁, 미중 갈등, 인플레이션 등이 벌어졌다. 위기가 진정되기 시작하면서 한때 당연시하던 국제 경제 개념이 잘못된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30년 세계화의 퇴색…잃어버린 10년 온다"

30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시장 개방, 무역 자유화, 효율 극대화 등 경제 전문가들과 당국자들이 절대적으로 중시했던 것이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팬데믹 동안 세계 경제 통합을 통해 가격 인하를 추구한 때문에 의료인들조차 마스크를 구하지 못했고 자동차회사들은 반도체가, 제재소는 목재가 부족했고 신발가게에선 나이키를 볼 수 없었다.

무역 자유화를 통한 상호 이익 추구로 군사적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철저히 깨졌다.

극단적 이상 기후로 농작물 생산이 줄고 이민이 늘고 발전이 멈추는 등의 일들도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지구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냈다.

앞으로 세계 경제가 어떻게 변할 것인 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면서 세계화가 퇴색한다는 주장이 대두한다. 통합 경제로부터의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대응책 논쟁이 치열하다. 당분간 주도적 경제 컨센서스에 대한 도전이 증가할 것이다.

英 EU탈퇴, 미중 무역전쟁, 팬데믹, 우크라전…세계화 이탈 흐름 가속화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이던 벳시 스티븐슨은 “팬데믹이 시작하기 전 부자 나라들이 세계 무역 자유화로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옳든 그르든 일자리와 삶의 질을 해친다는 주장이 있다”고 말했다.

2008년 경제 위기로 국제 금융 시스템이 거의 붕괴했다. 영국은 2016년 유럽연합(EU)를 탈퇴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였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연속적 위기가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부각됐다.

경제 컨설팅 회사 EY가 올해 경제 정세 전망에서 밝힌 대로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화 이탈 흐름을 가속화했다.

역사의 종언…"시장 개방, 작은 정부, 효율성 추구가 대세"

1991년 12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자 학자들이 공산주의의 붕괴를 역사의 종언이라고 선언했다. 자유민주주의의 적수가 없으며 “인류의 이념 진화가 끝났다”고까지 했다.

자유시장경제 자본주의가 전세계를 지배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대세가 됐다. 시장 개방, 작은 정부, 끊임없는 효율성 추구가 번영의 지름길로 제시됐다.

상품, 자본, 정보의 자유로운 통행으로 세계가 냉전 시대의 갈등과 비민주적 체제로부터 이탈할 것으로 여겨졌다.

1990년대 낮은 인플레, 저실업, 고임금, 높은 생산성 등이 이같은 낙관론을 한층 부추겼다. 세계 교역량이 2배로 늘어나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가 급증했고 주식시장이 커졌다.

세계무역기구(WTO)가 1995년 이 같은 흐름을 굳혔다. 6년 뒤 중국의 가입이 혁신으로 비쳐졌다. 중국의 거대한 시장을 142개국 시장과 통합함으로써 민주화가 진전될 것으로 모두가 믿었다.

한국, 말레이시아와 함께 중국의 농민들이 생산성 높은 도시 근로자로 전환됐다. 가구, 장난감, 전자제품 등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팔렸다.

수억 명이 가난에서 벗어났고 기술 발전이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다.

기후변화 악화와 불평등 심화…환경 피해 무시한 저비용 생산

다만 세계화에 따른 기후변화와 불평등이 악화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많은 일자리가 저임금 국가로 이전되면서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됐다.

시장이 노동과 기술, 자본을 배분하면 효율과 성장이 저절로 뒤따른다는 것으로 여겨졌다. 사후적으로만 정치가 개입해 소득을 재분배하고 소외 계층을 구제하는 일이 진행됐다.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값싼 노동력을 구했고 일자리 보호, 환경 영향, 민주적 가치를 무시했다. 멕시코, 베트남, 중국 등에 투자가 집중됐다.

TV, T셔츠, 타코 등의 가격이 내려간 반면, 의료비와 교육비가 급등했다.

일자리 감소로 국내 임금이 눌렸고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약해졌으며 반이민 정서를 부추기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프랑스의 야당 지도자 마린 르펜과 극우 포퓰리스트에 대한 지지가 커졌다.

선진국 정치 지도자들은 소득 재분배에 소극적이 됐고 환경 피해 방지에도 무력했다. 전 세계 교역량 증가로 배출 가스가 급증했고 소비가 증가하면서 자연이 훼손되고 동남아시아의 불법 어로와 아마존 삼림 파괴가 심해졌다. 후진국의 저비용 생산은 환경 피해를 무시한 채 진행됐다.

'시장의 실패'인가?…세계화의 최대 수혜국 중국의 민주주의 퇴보

시장이 그 자체로는 소득을 공정하게 재분배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미국 경제 정책의 최대 실패가 “시장이 자본을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분배한다”는 잘못된 가정이라고 일갈했다.

경제 교류의 증가로 민주주의가 촉진될 것이라는 가정도 무너졌다.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이 세계화의 최대 수혜국이지만 민주주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국은 천연 자원과 토지, 자본, 에너지, 금융과 노동력, 이동의 자유와 언론 자유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금융 세계화 피해는 개발도상국에 집중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품과 연료 가격이 치솟으면서 외채 위기가 크게 악화했고 금리가 올라 (경제 상황이) 한층 나빠졌다. 식품과 연료처럼 외채는 대부분 달러로 거래되는데 미국의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가 급증했다.

가난한 나라들은 해외 자본 입출 규제를 모두 포기해야 했다. 달러도 상품과 마찬가지로 국가들 사이의 이동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에 따른 것이다. 미 앰허스트대 경제학자 자야티 고쉬는 “금융 세계화가 개도국의 빠른 성장과 재정 안정을 촉진할 것으로 간주됐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고 했다.

기채로 얻은 이익이 부채 상환을 감당하지 못했고 일부는 설 익고 부패한 파생 상품에 투입됐다. 금리 상승으로 부채 상환은 요원해졌다.

몇 년 동안 무차별적 기채, 자산 거품, 통화 가치 급변, 금융정책 오류 등으로 아시아, 러시아, 남미 등지에서 활황과 침체가 되풀이됐다. 스리랑카의 경우 무분별한 외자 도입에 의존한 항구 개발 사업 등으로 지난해 주민들이 굶주리자 중앙은행이 홍차로 이란의 석유 대금을 치르기도 했다.

원금을 찾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민간 금융기관들이 갑자기 대환을 중단해 여러 나라가 파산했다. 긴급 구제에 수반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엄격한 규제에 따라 정부 지출이 급격히 감축되면서 공공 부조와 연금, 교육, 의료가 축소됐다.

2016년 IMF 당국자가 시인했듯이 이들 규제 정책이 성장을 촉진하기는커녕 “연금 지급을 어렵게 만들어 불평등을 초래”했다.

서방의 금융 축소로 중국이 아르헨티나, 몽골리아, 이집트, 수리남 등에 공격적으로 신용을 제공할 수 있었다.

"국제 정치가 고도의 세계화를 망치는 국면"

소련 붕괴가 자유 시장을 확산했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를 뒤집어 놨다.

존스 홉킨스 선진국제대학원 헨리 패럴 교수는 오늘날의 국제 경제가 “국제 정치가 고도의 세계화를 망치는 국면”이라고 말했다.

조셉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및 안보 담당 집행위원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0개월 뒤 “안보의 바탕과 번영의 바탕 사이의 연관이 끊어졌다”고 했다. 유럽이 러시아로부터 값싼 에너지를 수입하고 중국에서 값싼 상품을 수입하던 세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지도자들은 빠르게 자립 경제와 성장 및 효율의 가치를 역전시켰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 3월 비용이 더 들고 효율성 떨어지더라도 “믿을 수 있는 나라들”과 교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 천연가스 시장의 40%를 공급하던 러시아가 이를 무기화 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무력화하려 시도했다.

미국 등 서방은 국제 금융 시장 지배력을 무기로 러시아 은행을 국제 결제 시스템에서 축출했다.

중국은 교역 상대국이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복했다.

주요 공급자와 정보 기술 네트워크의 극단적 집중으로 병목 현상이 악화했다.

중국은 전세계 태양 패널의 80%를 생산하며 대만이 첨단 반도체의 92%를 공급한다. 전세계 무역과 금융거래 대부분이 미 달러로 이뤄진다.

"단순히 시장의 효율성 고수하는 것은 실수"

이 같은 새로운 현실이 미 정부 정책에 반영됐다. 자유 시장 경제 질서와 WTO 체제의 중심축인 미국이 갈수록 자유무역에서 이탈하고 WTO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있다.

안보 우려로 미국에 대한 중국의 투자가 제한되고 개인정보 및 신기술에 대한 접근이 억제되고 있다.

미국은 또 중국식 산업 정책을 받아들여 전기자동차, 배터리, 풍력발전기, 태양발전 등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공급망 안정과 재생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설리번 안보보좌관은 “자유화 수십 년 동안 경제 의존을 경시함으로써 정말 위험해졌다”고 했다. 그는 “과도하게 단순화된 시장의 효율성”을 고수하는 것은 실수라고 결론내렸다.

새롭게 등장할 국제 경제 질서가 어떤 것인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다만 자유 무역이 번영을 보장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지지를 받기 어렵게 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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