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정체성 '의금상경'...우찬규 회장·이진명 평론가 '단색화' 교감
단색화,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미의식으로 풀어
새해 첫 기획전 개막...최명영~박인혁까지 15명 회화 55점
18일 학고재 새해 첫 전시 '의금상경' 기획전을 선보인 이진명 미술평론가(왼쪽)과 학고재 우찬규 회장이 중국작가 왕쉬예 작품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화려한 형식을 될수록 감추고 내면의 빛을 살며시 드러내는 것, 우리 작가들에게 그대로 유전되고 있다."
한학을 공부한 학고재 우찬규 회장은 새해 행복감을 느꼈다. 말이 통한다는 것. 그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 동양학을 전공한 미술평론가 이진명과 차 한잔을 놓고 시경(詩經)을 논하며 시작한 이야기는 새해 첫 전시로 이어졌다. 교감 속 둘이 공감한 '의금상경(衣錦尙絅)' 이야기가 동아시아 미의식으로 나아갔다.
‘초발부용(初發芙蓉)’의 천연의 아름다움과, 부귀한 권문세족이 추구했던 ‘착채누금(錯采鏤金)’의 인위적 아름다움까지 주고받다, 여전히 동아시아의 원초적 미의식이 동아시아 현대 회화에 흐르고 있다는 것에 무릎을 쳤다.
의금상경(衣錦尙絅). '비단옷 위에 삼(麻)옷을 걸치셨네'라는 뜻을 지닌 2600년 전의 고대어다
"키가 크고 늘씬하며 가녀리고 새하얗고 아름다운 귀족 여성이 국혼(國婚) 행사에서 능라금단(綾羅錦緞)의 비단옷 위에 삼옷을 걸친 것은, 예(禮)를 다하면서도 백성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국가적 행사인 결혼이기 때문에 비단옷이라는 예를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위화감을 주어서는 안 되었다. 이때 고안한 아이디어가 백성이 입는 삼옷을 비단옷 위에 걸쳐 입는 것이다. 이러한 지도층의 태도는 백성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후대 예술가들도 같은 태도를 보이게 된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학고재는 18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 전관에서 한국 단색화 기획전 '의금상경(衣錦尙絅)'을 개막했다. 사진 왼쪽부터 작가 박인혁의 연작 '회색 풍경', 중국작가 왕쉬예의 작품 '시공나체·즉(151)', 작가 박현주의 연작 '빛그림'. 2023.01.18. [email protected]
우찬규 회장은 "'의금상경'이라는 말에는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않고 온장(蘊藏, 숨기는)하는 미의식"이라며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문장은 될수록 함축된 말을 썼고, 그림에서는 전신(傳神)이나 신사(神似), 즉 ‘정신의 닮음’이라는 미덕을 정확한 재현의 법칙보다 숭상했다"고 설명했다.
이진명 미술평론가는 "숨긴다(隱)는 것은 말이 간이하면서도 뜻이 풍부한 동시에 운율의 맛을 풍부하게 포함한다는 의미를 지닌다"면서 이를 다시 왕희지의 서론(書論)에 비기자면 왕희지가 정확히 '뾰족한 붓을 사용하지만 낙필을 하면 혼융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며 필호(筆毫)에 부박(浮薄)하거나 겁약(怯弱)함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 새 붓을 들고 시원하면서 생기가 있는 듯해야 하니, 곧 점획의 결함에서 구하지 않는다'라는 뜻과 상통한다"고 했다.
결국 '의금상경'은 숨기면서 드러내지 않는 미의식(藏而不露), 안에 쌓으면서 시간이 지남에 창성해지는 멋(內蘊而日章)을 가리킨다는 뜻이다.
우찬규 회장과 이진명 평론가는 숨김과 드러남의 역동적 긴장 관계를 한국 단색화의 본질로 봤다. 지난해 프리즈 아트페어 열풍으로 K아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감 속, 진정 우리 그림이 무엇인지를 톺아보고자 단색화 그 이후의 양상을 15명의 작가의 작품을 통해 살펴본다.
단색화 대표주자 2인(최명영·이동엽)과 그 이후 단색화 12인, 중국 작가 1인(왕쉬예 王舒野)을 초대했다. 1940년대 출생 작가부터 1970년대 출생 작가까지 아우른다. 전후 1960년대 서구로부터 유입된 추상회화 양식에 한국적 정신성을 녹여낸 작가들이 있고, 그 이후 더욱 새로운 기법과 방법론을 찾은 작가들이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학고재 우정우 실장과 이진영 미술비평가가 18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 전관 개막한 한국 단색화 기획전 '의금상경(衣錦尙絅)'에 참여한 작가 이동엽의 '사이-여백 908'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전시는 오는 2월 25일까지. 2023.01.18. [email protected]
"최명영, 이동엽(1946-2013)은 한국 단색화의 정초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데, 될수록 색을 최소화하고 힘을 응축하며 정신을 화면에 불어넣는다는 지향성이 옛사람들의 미의식과 정확히 같다. 후기 단색화의 대표적 유형으로 손꼽히는 장승택, 김현식, 박종규 역시 회화 창작에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을지언정 근저의 정신성에서만큼은 힘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축적하는 의금상경의 사유를 옛사람과 똑같이 그대로 지킨다. 박현주, 윤상렬, 박인혁의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우환 화백이 추천한 중국작가 왕쉬예는 사물에 대한 무차별적 바라보기를 통해 새로운 회화론을 제시한다."(우찬규 회장)
이진명 평론가는 "시경은 옛 사람과 우리를 시간적으로 만나게 한다. 그동안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 사고로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재단해왔다"며 "이번 '의금상경' 전시는 우리 얼굴에 맞는 거울 같은 전시로 선보인다"고 전했다.
학고재 계묘년 새해 첫 전시는 모처럼 '학고재스럽다.' ‘옛것을 배워 새것을 창조한다(學古創新)’는 이념에서 따와 학고재로 이름지은 학고재 갤러리는 동시대 현대미술 범람 속 '옛것'으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통찰하려는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단색화에서 후기 단색화의 흐름을 '의금상경'으로 풀어낸 전시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을 세계 미술 문화에 알리는 학고재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전시는 2월25일까지.
학고재 전경. 학고재라는 이름은 논어(論語)의 ‘옛것을 배워 새것을 창조한다(學古創新)’는 이념에서 따왔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학고재는 18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 전관에서 한국 단색화 기획전 '의금상경(衣錦尙絅)'을 개막했다. 한국 단색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샅샅이 찾아보면서 단색화 이후 작가들의 작품성과 정신성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사진은 작가 박기원의 작품 '넓이' 연작. 2023.01.0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학고재는 18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 전관에서 한국 단색화 기획전 '의금상경(衣錦尙絅)'을 개막했다. 한국 단색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샅샅이 찾아보면서 단색화 이후 작가들의 작품성과 정신성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사진은 작가 김길후의 작품 '내일의 너'(오른쪽)와 '목성'. 2023.01.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학고재는 18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 전관에서 한국 단색화 기획전 '의금상경(衣錦尙絅)'을 개막했다. 한국 단색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샅샅이 찾아보면서 단색화 이후 작가들의 작품성과 정신성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사진은 작가 최명영의 연작 '평면조건'과 중국 작가 왕쉬예의 작품 '원강 석굴 제20굴의 시공나체·즉(82). 2023.01.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학고재는 18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 전관에서 한국 단색화 기획전 '의금상경(衣錦尙絅)'을 개막했다. 한국 단색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샅샅이 찾아보면서 단색화 이후 작가들의 작품성과 정신성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사진은 작가 김현식의 작품 'Beyond The Color' 연작. 2023.01.18.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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