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이상 덕질'…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 전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고교 시절 우연히 시인 이상의 소설 '날개'를 교과서에서 읽은 10대 청소년 조영남은 이상하게 '이상'에 푹 빠졌다.
시인 이상이 텍스트로 풀어내는 그 알 수 없음 시에 깊이 매료되었고, 그후 이른바 ‘이상 덕후’의 길로 들어섰다. 도저히 알아먹을 수 없는 맥락과 난해함의 끝판왕이었던 이상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한 탐구의 역사는 55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상의 덕후'답게 그는 평생에 걸쳐 이상의 전작은 물론 그에 관한 거의 모든 책을 섭렵했고, 이상을 중심으로 종과 횡으로 포진한 한국의 주요 시인들은 물론 세계의 주요 시인들의 작품까지 아우르기에 이른다.
2010년 이상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0년 이상의 시 해설집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를 펴낸 바 있다.
2020년 76세에 다시 '이상 덕후'로서 기질을 발휘해 펴낸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은 이상의 시 만큼이나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책이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문득 작곡가 말러의 교향곡 제3번을 우연히 들은 뒤 깊이 몰두하게 된 조영남은 느닷없이 말러에게서 시인 이상을 떠올린다. 말러의 교향곡을 듣고 이상을 떠올리고, 이상과 함께 피카소, 니체, 아인슈타인을 소환해 만든 보컬그룹은 책에서 튀어나와 그림으로 탄생했다.
그림의 제목은 '현상수배범'. 이들에게 그가 부과한 죄목은 타고난 천재성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명예를 독차지했다는 것, 이른바 명예강탈죄다. 여기까지만 해도 기발함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서울 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이상과 5명의 아해들' 전시를 펼치고 있다.
조영남이 시인 이상을 숭배하는 ‘덕질의 끝판’을 보여주는 그림들은 '시인 이상 띄우기 본격 프로젝트'라고 내세웠지만 조영남 자신의 천재성도 슬쩍 끼어넣은 것 같은 전시다.
이상의 흑백 얼굴 사진을 중심으로 혀를 내민 아인슈타인,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피카소, 심각한 표정의 니체, 말러이 함께한 그림은 조영남의 자유분방하고 엉뚱한 매력이 돋보인다.
시인 이상이 보컬리더로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이 기타를 치고,말러가 피아노를 치는 그룹사운드 배경은 흑싸리 껍데기 화투가 흥을 돋우고 있다.
사진과 콜라주한 작품들도 눈길을 끌지만 이상의 시 오감도를 비롯한 다양한 시귀를 조영남이 직접 쓴 글씨작품은 '화투 그림'보다 손맛이 느껴져 정감이 간다. 30여점이 전시됐다. 추석 연휴기간에도 관객을 맞이한다. 24일까지. 2020.10.0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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