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김소희 원맨쇼, 연극 '혜경궁 홍씨'

국립극단의 '2013 가을마당 창작희곡 레퍼토리'의 하나인 연극 '혜경궁 홍씨'는 역사 소재물이지만, 전면에 드러나는 것은 인간이다. 영조(1694~1776)의 며느리이자 그에게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1735~1762)의 부인,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1752~1800)의 생모이기도 한 혜경궁 홍씨(1735~1815)의 감춰진 삶을 드러내보인다.
혜경궁 홍씨는 10세에 세자빈으로 간택돼 궁으로 들어온 뒤 81세에 생을 마감했다. 연출을 맡은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61) 예술감독은 혜경궁 홍씨가 끔찍한 세월을 감내하면서도 궁에서 천수를 다한 근원과 힘의 원천은 그녀의 비밀스러운 글쓰기인 '한중록' 집필이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연극은 혜경궁 홍씨의 입장에 따라 '한중록'을 바탕으로 한 극본에 기반한다.
혜경궁 홍씨에게 가문과 세자빈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번번이 과거에 낙방했으나 딸이 세자빈에 간택되면서 영의정에 오른 그녀의 아버지 홍봉한과 영조, 사도세자 사이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갈 수 없었다. 남편이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뒤주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하릴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지어미이자 어머니, 딸, 그리고 결정적으로 연약한 여인일뿐이었다. 당시 역사의 가장 큰 희생양이기도 했다.
10대 시절에 동갑인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가 피부병을 앓고 있는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며 친구 같은 부부로 발전하는 장면은 이들의 암울한 미래를 미리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큰 안타까움이다.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이기도 한 연극배우 김소희(43)가 혜경궁 홍씨의 이런 인간적인 면모를 제대로 살려낸다. 10대와 60대를 어색함 없이 오가는 그녀의 연기는 발군이다. 영조 앞에서는 수줍고 힘없는 며느리, 아버지를 잘 따르려는 효녀 딸, 남편을 누구보다 이해하는 아내, 외가를 소홀히 대하는 아들이 못마땅하면서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엄마…. 이 모든 여성의 모습이 김소희에게서 나온다.
2시간 가량의 러닝타임 중 시작 장면인 혜경궁 홍씨와 정조의 대화만 무려 20분이다. 김소희와 정조를 맡은 정태준의 합은 일품이다. 대화만으로 극을 진행하고 전반의 내용을 압축하는 내공이 상당하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열리는 진찬례에 사도세자의 귀신이 찾아오면서 그녀는 다홍치마를 입고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이 연출의 인장과도 같은 씻김굿이 등장한다. 사도제자를 비롯해 눈이 먼 영조 등 그간 그녀에게 아픔을 준 뒤 사망한 인물들의 귀신들이 모여 한바탕 춤을 추고 굿을 한다.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쓰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극은 삶의 풍파를 연약한 온몸으로 견뎌온 여성에게 그렇게 예를 표한다. 개인을 통해 역사의 아픔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묘를 발휘한다.
영조는 전성환, 사도세자는 최우성이 연기한다. 29일까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볼 수 있다. 1만~3만원. 국립극단 1688-5966
역사극 아닌 휴먼드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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