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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소 잃고 또 외양간 고치는 체육계, 이번만은 달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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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7-20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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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권혁진 기자 = 지난달 26일 유망한 트라이애슬론 선수인 최숙현 선수가 세상을 등졌다.

고인은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하늘나라로 향했다. 놀란 엄마의 전화는 끝내 딸에게 닿지 않았다.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故 최숙현 선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돼 간다.

그동안 체육계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던 이라면 그동안 유사한 사건들이 빈번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역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후배를 때려 전치 6주의 상해를 가한 것도, 쇼트트랙 코치의 미성년자 선수 성폭행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것도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체육계는 늘 큰 사건·사고로 경종이 울리면 늦장 대응하는 식이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폭력·성폭력 근절을 외치며 다양한 대책들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故 최숙현 선수는 지난 2월 경주시청을 시작으로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대한철인3종협회 등의 문을 여러 차례 두드렸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단 한 곳이라고 피해자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였다면 비극적인 선택까지는 도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19일 스포츠 폭력 사건을 추방하기 위한 특별 조치를 발표했다. 가해자의 즉각 격리와 관련 직위(직무) 정지 및 가해 사실 판명시 원 스트라이크 아웃, 인권전문가와 학부모가 참여하는 ‘스포츠인권 관리관’, 합숙훈련지역 내 시민으로 구성한 ‘시민감사관(암행어사)’ 운영, 합숙훈련 허가제 등의 내용이 담겼다.

과거에도 그랬듯 대책은 그럴싸하다. 중요한 것은 실제 시행 여부다. 현실감 없는 탁상행정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를 엄격히 적용하고, 철저히 감시-감독해 추가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는 침체기를 걷고 있는 아마추어 종목의 부활과도 맥을 같이 한다. 아마추어 종목의 선수층이 얇아지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사고가 터지는 곳에 자식을 밀어 넣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풍족한 지원은 어렵더라고 적어도 선수들에게 맘 놓고 운동할 수 있는 토대 정도는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한계에 부딪힌 만 22세의 어린 선수는 죽음으로 부당함을 알렸다. 감독과 선배의 보복이 두려웠던 동료들도 침묵을 깨고 전면에 나서는 중이다.

故 최숙현 선수의 아버지인 최영희씨는 "어디 하나 호소할 곳도 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으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체육계는 폭력을 몰아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자세로 사태에 접근해야 한다.

소중한 이의 희생과 남은 자들의 용기가 마련해 준 무대를 또 다시 외면한다면 미래는 없을 것이다. 故 최숙현 선수의 희생과 최영희씨의 목소리가 공허한 메아리로 남지 않길 바란다.


◎공감언론 뉴시스 hjkw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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