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기자수첩]'왕릉뷰 아파트' 사태, 누가 책임질 것인가?

등록 2022.01.05 11:22:16수정 2022.01.05 12:43:43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김포 장릉 주변의 이른바 '왕릉뷰 아파트'를 둘러싼 갈등이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건설사 대광이엔씨와 제이에스글로벌이 아파트 공사를 재개하도록 한 법원 결정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대방건설도 다른 건설사와 마찬가지로 문화재위원회 심의 요청을 철회하면서 아파트 운명은 법정공방을 통해 판가름날 전망이다. 특히 공사 중지 명령에 대한 본안 소송이 제기돼 양 측간 법적 분쟁은 장기화될 조짐이다.

문화재청과 건설사들 모두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한 채 첨예한 대립만 이어가고 있다. 2017년 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 반경 500m 안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 높이 20m가 넘는 아파트를 지으려면 개별적으로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문화재청은 건설사들이 이같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건설사들은 2014년 아파트 용지를 매각한 인천도시공사가 김포시청에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했고, 인천 서구청의 경관 심의를 거쳐 공사를 시작한 만큼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건설사들과 인천 서구청은 토지에 대한 현상변경 허가를 받으면 건물 신축시 별도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문화재청은 토지와 건물의 현상변경 절차는 각각 거쳐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다들 반성은 없고 해명에만 급급하다. 따지고 보면 모두 안일하게 대응해 이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건설사들은 법리적 사항을 전반적으로 검토했어야 하는데, 눈앞의 이익만 보고 무책임하게 아파트 공사를 진행했다. 인천 서구청 역시 법률적 판단이 부족했으며 행정 처리가 미숙했다. 문화재청의 문화재에 대한 허술한 관리·감독도 묵과하기 어렵다. 이 아파트가 착공된지 2년이 넘어서야 이 사태를 파악했다.

이 사건은 관련 주체들의 업무 미숙이 빚어낸 인재(人災)다. 문화재청이 작년 7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건설사들을 경찰에 고발했는데, 경찰조사 결과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법원이 문화재청, 인천 서구청, 건설사들 중 누가 책임져야 할지를 철저히 가리겠지만, 입주예정자들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

공사 중지 명령과 관련한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들 아파트 단지의 입주 일정이 오는 6~9월이다.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

재산권 못지않게 문화재 보존도 중요한 가치다. 아파트의 완전 철거나 부분 철거 없이 이 사태가 마무리된다면 김포 장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40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세계유산위원회 논의에서 우선순위가 '등재'에서 '보존·관리'로 바뀌고 있다. 유네스코는 이런 변화를 담고자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을 개정했으며, 개발행위가 세계유산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평가하는 '유산영향평가(HIA)' 도입을 각국에 권고했다. 영국의 '리버풀, 해양산업도시',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도시 개발로 본래의 가치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세계유산 자격을 박탈당했다.

특정 국가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 보존해야 한다고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게 세계문화유산이다. 자국민이 신경 쓰지 않는 세계적 인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사안에서 문화재 보존과 건축 및 개발행위는 공존하기 어렵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된다. 앞서 문화재청이 건설사들에 건축물이 장릉 역사문화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개선책을 요구했던 것은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관련 주체들이 김포 장릉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입주 예정자들의 주거권·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법원 판단만 기다리는 건 너무 늦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