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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가 간청하고 있는 '비행금지 구역', 걸프전 때 시작

등록 2022.03.06 20:58:40수정 2022.03.06 21: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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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AP/뉴시스]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소방관들이 러시아의 공습으로 발생한 물류센터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2022.03.04.

[키이우=AP/뉴시스]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소방관들이 러시아의 공습으로 발생한 물류센터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2022.03.04.

[서울=뉴시스] 김재영 기자 = 전투 의지는 몰라도 전력에서 러시아에 크게 열세인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거절에도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끈기있게 호소하고 있다.

러시아 전투기의 공습과 폭격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나토가 우크라이나 상공 일정 구역에 '비행하면 격추한다'는 경고의 노플라이 존을 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토 국가들은 비행금지 구역 설정은 러시아와 직접 충돌하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거절의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특정 지역의 상공에 비행기가 지나거나 와서는 안 된다는 비행금지 구역의 지상 타깃은 안전을 위해 정부 건물이나 공공 장소가 대부분이지만 종교적인 신성구역도 포함되기도 한다.

본격적인 비행금지 구역 설정은 걸프전에서 비롯됐다고 뉴욕 타임스는 말한다. 1991년 쿠웨이트를 불시 침략했으나 미국과 연합군에 의해 격퇴당한 사담 후세인은 얼마 후 국내서 반란이 봉기하자 무장 헬리콥터를 다수 동원해 수천 명을 죽였다.

이에 미국은 후세인을 타도하기 위해 다시 전면전을 벌이기는 어렵다고 보고 영국, 프랑스와 함께 이라크 상공 중 남부와 북부에 헬기 등 항공기가 나타나면 격추하겠다는 뜻의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했다. 이 이라크 노플라이존은 2001년 뉴욕테러를 당한 미국이 아프간에 이어 2년 뒤 대량살상무기 은닉 혐의로 사담 후세인을 타도하기 위한 전면 이라크전을 개시할 때까지 상존했다  

1991년~2003년 설정의 이라크 비행금지구역과 관련해  합법적인 인가 없이 이뤄졌으며 미국이 노플라이존 집행을 위해 이라크 방공망을 공격하면서 상당수의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1991년 유고 연방 해체 때 세르비아계의 보스니아 무슬림에 대한 잔인한 공격이 이어지자 나토는 1993년부터 유엔의 승인 아래 1995년까지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했다. 나토는 이를 어길 때 강력한 조치를 취해 보스니아 전쟁이 10만 명 희생으로 그칠 수 있었다.

나토는 아랍의 봄 민중봉기가 터져나온 2011년 봄 리비아의 40년 독재자 무아마르 가다피가 자기 국민들을 무차별 공격하자 비행금지 구역을 선포했다. 가다피는 11월 도망가다 민중들에게 살해되었는데 러시아는 나토의 이 리비아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자의적인 조치라고 비난해왔다.

비행금지 구역은 대규모 지상 전력 투입 없이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항공기와 관련 인프라에 의존해 무력분쟁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그러나 이 비행 제한을 실제 집행하려면 항공기 격추 및 방공망 파괴를 어느 때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거듭 거절했지만 러시아의 푸틴은 4일 우크라이나 상공에 노플라이존을 설정하려고 나서는 국가가 있다면 즉시 "무력 충돌에 참여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의 보복과 응징을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해보라는 말이다.

같은 날 나토의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동맹국들이 "유럽 전면전 발생"을 우려해 비행금지 구역 안을 거부했다고 거듭 분명하게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에게 전쟁을 계속해도 좋다는 신호를 줬다며 나토의 거부를 비난했지만 영국의 도미니크 랍 부총리가 6일 방송에서 다시 반복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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