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어찌 감히 영화평 따위를 쓰겠는가, 이순신 '명량'
역사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12척의 배로 330척의 적선을 무찔렀다. 조류가 빠른 곳으로 적선을 유도해 섬멸했다. 이순신이 막지 못했으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말도 있다. 명량대첩은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해도 믿기 힘든 드라마를 가지고 있는 역사다. 게다가 관객은 12척의 배를 가졌던 나라의 후손이다. 330척의 적선은 일본인의 조상이다.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영화의 핵심은 간단히 두 가지다. 이순신과 명량대첩, 다시 말해 성웅으로 칭송받는 인간의 어떤 면모를 보여줄 것이냐, 해상전투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느냐다. 가장 좋은 그림은 인간과 전투가 한 데 어우러지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량'의 '이순신'은 조금 식상하고 '해전'은 대체로 새롭다.
1597년 왜란 막바지,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돌아와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한 조선 수군을 추스른다. 그에게 남아 있는 배는 구선(거북선) 1척을 포함해 13척, 왜군은 330척의 배로 한양을 넘본다. 내부 분열로 최후의 보루 구선을 잃은 이순신은 배수의 진을 친다. 왜선은 진격하고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명량에서 맞선다.
이순신이 탄 대장선을 향해 몰려오는 다수의 왜선이라는 첫 번째 위기를 이순신은 현란한 화포 공격을 통해 극복한다. 왜선에 둘러싸여 백병전을 벌이는 두 번째 위기는 자살에 가까운 화포 공격으로 이겨내고, 폭파물을 가득 실은 왜선의 공격에서는 극중 한 인물과 민초의 기지를 통해 벗어난다. 왜선이 모두 들이닥치는 마지막 위기에서는 이순신과 그의 장수, 수군, 민초가 모두 모여 왜군을 물리치는 식이다.
61분의 반이 이순신의 잘 짜여진 전략을 보여준다면, 나머지 반은 백성과 군인이 모두 한마음이 돼 왜군에 '버티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명량'의 해상 전투 장면이 얼마나 알차게 구성돼 있는지 증명하는 부분이다.
대규모 액션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가 흔히 저지르는 패착은 관객이 현재 영화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힘든 편집을 한다는 점이다. 이는 액션의 다이내믹함을 보여주기 위해 과도한 클로즈업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명량'의 해전이 좋은 점은 지금 어떤 전투가 어디서 벌어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아쉬운 점은 명량대첩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의 고뇌와 고민과 고독과 번뇌번민을 그리는 전반부다. 마치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의 이순신을 보는 듯한 '느낌'의 이 드라마는 안타깝게도 '칼의 노래'처럼 유려하지도, 깊지도 않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감동받는 것을 작정한 관객이라면 이순신의 심리적 고통에 마음이 동할 지 모르나, 만약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 관객이 영화를 본다면 이순신이 왜 저렇게 처절한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더 감동적일 수 있었던 전투 장면이 생각보다 마음을 흔들어놓지 못하는 이유다. 단순히 명량에서 전쟁을 치르는 조선 수군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감정을 짜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대체로 인물의 대사로 처리하고, 일부 캐릭터가 극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 기능적으로 쓰이고 있는 점이 드라마를 약화한다.
'명량'에서 최민식의 모습이 그의 최고 연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가 여전히 새로운 연기에 도전하고 있고, 그것을 최상의 수준으로 해낸다는 점에서 우리는 최민식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음을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연기를 보는 것 자체가 영화를 보는 행복이다.
주·조연 연기자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명량'은 분명히 단점이 있는 영화다. 하지만 장점으로 단점을 상쇄하고 종국에는 감동을 준다.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12척의 배를 가졌던 나라의 후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감동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장단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명량'의 목적은 관객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것일 테고, 그런 점에서 '명량'은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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