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장영규 "음악으로 작품확장, 이 믿음 없으면 안한다"
프로젝트 팀 '이날치' 결성
장영규 ⓒ우상희
무엇보다 전통이 뒤섞인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 프로젝트 '비빙' '씽씽' 등을 통해 독창성과 실험성을 인정받았다.
불교음악이 기반인 비빙은 해외에서 특히 주목 받았다. 여러 음악 페스티벌에 초청되면서 3~4년 간 여러 나라를 다녔다. 국내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지원금을 받아서 한번 공연을 하고 나면, 그게 끝이다.
"진지하게 접근을 하는 음악이 재공연할 수 있는 가능성이 0%였어요. 정말 힘들게 공연했는데 많은 분들이 찾지 못하니까 이 음악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죠. 물론 그런 음악도 당연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좀 더 열려 있는 시장에 들어가보려고 했죠. 월드뮤직으로 규정짓는 음악이 공유될 수 있는 영역은 한정적이거든요."
그래서 만들어진 팀이 민요 록밴드 '씽씽'이다. 장영규가 프로듀서를 맡고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 등이 보컬로 나선 씽씽은 파격적인 무대 매너와 끓어오르는 에너지로 북아메리카 시장까지 강타했다. "팝, 록의 시장 자체는 규모가 달라요. 그런 시장에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고민으로 탄생한 것이 씽씽이에요. 생각보다 빨리 시장에 안착을 할 수 있었죠."
이런 장영규가 또 새로운 실험에 나선다. 씽씽이 해체된 지금 새로운 프로젝트 팀 '이날치'를 결성했다. 팀에서 베이스를 맡는 장영규를 중심으로 드림팀이 모였다. 씽씽 출신 드럼 이철희,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 베이스 정중엽과 소리꾼 권송희·박수범·신유진·안이호·이나래가 가세했다.
지난해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양정웅 연출의 의뢰로 '수궁가'를 작업한 것을 계기로 결성된 팀이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음악가들끼리 교감이 생겼고, 즐겁게 작업을 했다.
올해 초부터 홍대 소규모 클럽에서 몇 차례 쇼케이스 형태의 라이브 공연을 하며 입소문이 났다. 5월18일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첫 번째 단독공연 '들썩들썩 수궁가'를 연다.
이날치 ⓒ우상희
'이날치'라는 팀명은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 이날치(1820~1892)에서 따왔다. 후기 팔명창에 속하는 인물이다. 본명은 이경숙으로, 날치는 예명이다. 줄타기를 하던 젊은 시절, 날치 같이 날쌔게 줄을 잘 탄다고 해서 얻었다.
장영규는 "이날치가 날치처럼 줄을 잘 탔는데, 노래도 잘 하고 고수도 잘 했다는 거예요. 이름의 어감과 뉘앙스가 마음에 들어 따왔죠"라고 한다.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국립극단 신작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도 장영규의 음악적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17세기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겸 수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고뇌와 의지를 톺아보는 작품이다.
국립극단과 꾸준히 작업을 한 장영규가 김선과 함께 음악을 맡았다. 극을 이어 주는 브리지 장면에서 앙상블의 노래를 비롯한 코러스를 적재적소에 활용한 음악 연출 등이 부드럽다. 특히 갈릴레이의 삶을 축약 또는 은유할 수 있는 별의 청량함과 희망을 담은 모차르트의 '반짝반짝 작은별'을 변형해 적확하게 삽입했다.
장영규가 연극 작업에서 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다. '갈릴레이의 생애'의 이성열 연출은 작품이 1800년대를 이야기지만 시간을 알 수 없는 시공간으로 설정을 하고 싶다고 바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이가 살았던 시대의 음악이 묻어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장영규는 르네상스 후기인 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발전한 세속 성악곡인 '마드리갈'을 발견하게 된다. 갈릴레이의 아버지는 가난한 음악가였으니, 안성맞춤이다. 극에서 코러스는 엄밀히 말하면, 마드리갈 형식이다.
장영규는 “베네치아 쪽에서 인기를 끌었던 대중적인 형식으로 보통 3~5명이 부르는 다성부의 성악곡이에요. 연출님 말마따나, 그 시절을 직접적이지 표현하고 싶지 않아 반주는 일부러 전자음향으로 바꿨죠"라고 귀띔했다.
장영규 ⓒ우상희
"어떤 식으로 소리가 관객에게 다가갈지를 고민해요. 어느 소리는 대사보다 앞에 있어야 하고, 어느 소리는 대사보다 뒤에 위치해야 하죠. 반주와 대사의 관계, 스피커의 위치도 중요합니다."
'복수는 나의 것'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전우치' '황해' 등을 거치면서 내로라하는 영화 음악감독이 된 장영규는 초등학교 때 사이키델릭 록밴드 '산울림'을 좋아했다. 중학교 때 취미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밴드 활동을 이어가며 음악과 늘 함께 보냈다.
1992년 MBC '창작무용제'에서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우수상을 받은 뒤 한 특별공연이 이력의 출발이다.
이후 다양하게 음악과 인연이 맺어졌다. 보컬 겸 미술작가 백현진과 함께 결성한 어어부프로젝트로 인디 신과 대학로에서 유명하던 1990년대 중반,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공연을 하는데 극단 연우무대 배우들이 무대 위로 난입한 것을 계기로 이 극단과 음악 작업을 했다.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이성열 연출, 박근형 연출, 민복기 연출, 이상우 연출 등 당시 대학로에서 부상하던 대다수의 연출가들이 어어부프로젝트를 찾았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와 작업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국립무용단과 작업한 '완월'을 연출도 했다. 강강술래를 모티브로 삼은 이 작품은 전통적이면서도 모던했다. 장영규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국악적인 요소가 섞인 음악은 전통의 원형 찾기 놀이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장영규는 특정 장르라고 해서 함부로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음악이 할 수 있는 것들로 작품이 확장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을 때" 비로소 임한다. 사람과 인연 때문에 작업을 해서, 새로운 연출과 하는 경우도 드물다. "살아갈수록 중요한 것들이 많이 생겨요." 장영규가 만들어내는 음악이 단순히 음들의 조합이 아닌, 사람의 화음인 이유다.
소리꾼 다섯 명을 내세운 이날치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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