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시민들에게 열린 비무장지대…'평화의 길' 북녘을 접하다
軍 관측소에서 바라보는 금강산의 아름다운 절경
北 파괴 GP 흔적도 고스란히…군사 긴장 완화 체험
이북 출신 참가자들도 GP에…달라진 분위기 반영
"DMZ 경험 유익…민간에 돌려준다는 취지 좋아"
교통 불편·홍보 부족…시범 운용 문제점도 드러나
【서울=뉴시스】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DMZ 평화의길 고성 구간을 민간에 개방했다. 지난달 28일 금강산 전망대(717OP)에서 바라본 북녁 땅 전경. 2019.05.03. (사진=국방일보 제공) [email protected]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만난 양강도 출신 김예지(40·가명)씨는 'DMZ 평화의 길'에서 이북 땅을 바라본 소감을 짧게 전했다.
'평화의 길'의 대미를 장식하는 '금강산 전망대'에서는 금강산부터 동해선 철도와 도로가 지나가는 '구서통문'까지 훤히 내려다보였다.
금강산 전망대는 과거 GP(최전방 감시초소)였다. '평화의 길'이 열리기 전까지는 민간인이 출입하려면 신원조회와 유엔군사령부 승인에만 1개월이 걸렸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였다면 이북 출신인 분이 올라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분단의 상징인 '금강산 전망대'에서 김씨가 이북 땅을 바라보는 모습이 달라진 비무장지대(DMZ)의 풍경을 반영하는 듯했다.
◇민통선 안으로…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서울=뉴시스】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DMZ 평화의길 고성 구간을 민간에 개방했다. 사진은 지난 28일 금강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모습. 2019.05.03. (사진=국방일보 제공) [email protected]
'평화의 길'은 통일전망대에서 해안철책을 따라 금강통문까지 도보로 이동한 뒤 차량으로 금강산 전망대에 오르는 A코스와, 통일전망대에서 차량으로 금강산 전망대까지 이동하는 B코스로 나뉜다. 각 코스는 오전과 오후에 한 차례만 개방한다.
A코스는 약 2시간30분, B코스는 약 1시간 30분이 걸리며, A코스 정원은 20명, B코스는 80명이다.
이번 1차 방문기간인 지난달 27일부터 오는 7일까지 5870명이 신청했으며, 전체 경쟁률은 16대1을 나타냈다.
기자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두루누비' 홈페이지에서 지난달 27일 A코스와 30일 B코스를 신청했다. 코스마다 1개 일정만 신청이 가능했다.
경쟁률이 가장 높았던 개방 첫날 27일 A코스는 당첨되지 않았지만, 비교적 한산한 평일인 30일 B코스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서울=뉴시스】김성진 기자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에 있는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이곳에서 출입신고를 해야 '평화의 길' 시작점인 통일전망대에 갈 수 있다. 사진은 지난 30일 오전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의 모습. [email protected]
이어 출입신고소에서 통보시간에 맞춰 차량으로 이동한 뒤 제진검문소에서 검문을 받았다. 제진검문소는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검문소에서는 22사단 장병들이 신분증과 출입신청서 등을 확인해서 통일전망대로 들여보냈다.
'평화의 길' 신청자들은 미리 안내받은 통일전망대 내 집결지에서 출발 30분 전부터 수속을 밟았다.
안전수칙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하고, DMZ 생태 보호를 위해 '에어 컴프레셔'로 신발과 옷을 털었다.
소지품도 생수 정도로만 제한됐다. 카메라 역시 스마트폰외에는 소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나 태블릿 PC는 차에 두고 와야 했다.
【서울=뉴시스】김성진 기자 = 지난 30일 오전 평화의 길 B코스에서 방문객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는 육군 22사단 장병들의 모습. [email protected]
◇금강산과 동해 절경 펼쳐져…북측 파괴 GP 흔적도 고스란히
B코스는 45인승 대형버스 2대로 운영했다. 버스에는 안전을 위해 22사단 장병들도 동승했다.
방문객을 태운 버스는 산속으로 난 폭이 좁은 시멘트 도로를 천천히 올라갔다. 노면이 울퉁불퉁해 차 안에서 흔들림을 느꼈다.
차창 밖으로는 "이곳은 미확인 지뢰지대임"이라고 써진 간판이 곳곳에 보였다. 전차와 차량을 막기 위한 낙석 장애물도 눈에 띄었다.
지난해 남북은 지상·해상·공중에서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한반도가 분단국가임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서울=뉴시스】지난 28일 금강산 전망대(717OP)의 전경. 2019.05.03. (사진=국방일보 제공) [email protected]
버스는 천천히 남방한계선을 넘었고, 오른편 차창으로 남방한계선임을 확인해주는 간판이 지나쳤다. DMZ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12분 남짓 이동 끝에 목적지인 '금강산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군사분계선(MDL)까지는 1.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94m 고지에 자리잡은 금강산 전망대는 717 OP(최전방관측소)로도 불린다. 현재도 군사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금강산 전망대는 원래 DMZ 안에 있는 GP(최전방 감시초소)였다.
그래서 전망대 내부는 과거 GP였음을 보여주듯 천장이 낮았다. 방호를 목적으로 벽을 두텁게 만들다보니 천장이 자연스레 낮아진 것이다.
【서울=뉴시스】지난달 28일 금강산 전망대(717OP)에서 바라본 구선봉과 감호(호수)의 모습. 2019.05.03. (사진=국방일보 제공) [email protected]
이로 인해 남북은 30년 넘게 불과 580m 거리를 두고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 했다.
지난해 남북은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이 지역에서 상호 GP를 철수하면서 긴장감을 한층 완화시켰다.
우리 군은 '369GP'라 불리는 동해안 GP에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한 채 보존하기로 했고, 북측은 GP를 아예 폭파시켰다.
전망대에서는 텅 빈 369GP를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 2㎞ 정도 떨어진 능선에 있는 북측GP 파괴 흔적도 선명하게 보였다.
북측 GP가 있던 자리는 마치 산꼭대기에 있는 공터처럼 보였다.
【서울=뉴시스】지난 28일 금강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구서통문(가운데 ㄷ형태). 동해선 도로와 철도가 지나고 있다. 왼쪽으로 벽돌산, 오른쪽으로 적벽산이 보인다. 2019.05.03. (사진=국방일보 제공) [email protected]
오른편으로 지난 2014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북측 덕무현 전망대 건물도 뚜렷하게 보였다.
전망대의 하이라이트는 금강산 절경이었다. 방문한 날은 가시거리가 좋진 않았지만 내금강 채하봉과 옥녀봉 능선을 볼 수 있었다.
내금강에서 시작한 자락은 동해안까지 흘러내려왔다. 동해안에 닿자 아홉 신선이 바둑을 뒀다는 구선봉과 잔잔하고 푸른 감호(鑑湖)가 시선을 빼앗았다. 감호의 잔잔하고 맑은 물은 예로부터 구선봉과 어우러져 절경으로 손꼽혔다.
구선봉 뒤로는 구한말 최후 전투지로 의병들의 피가 붉게 물들었다는 적벽산이 높이 솟아 있었다.
서울에서 온 김신욱(50)씨는 "북쪽 땅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수겸(42)씨는 "DMZ에 처음 왔는데 민간인에게 돌려준다는 취지가 좋은 거 같다"며 "평화의 길이라는 이름에 갈맞게 남북 간에 좋은 이슈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불편한 교통, 홍보 부족…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도
시범 단계에서 드러난 아쉬움도 있다. 불편한 교통이 손에 꼽힌다.
평화의 길 시작점인 통일전망대로 가는 대중교통은 없다. 개인 차량이나 택시로 갈 수 있는데, 택시의 경우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짧은 거리임에도 5만원~6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수원에서 온 박영일(80)씨는 "차가 없는 사람은 문제가 될 거 같다"며 "셔틀버스도 한 대 없다"고 지적했다.
홍보 부족에서 오는 혼란도 엿보였다. 통일전망대 출입사무소는 오전 8시30분이 돼야 업무를 시작한다. 그러나 업무시간이 사전에 공지되지 않아 방문객들이 아침 일찍 나왔다가 30분 이상 기다리기도 했다.
【서울=뉴시스】지난 28일 강원도 고성 DMZ 평화의 길 통문의 모습. 2019.05.03. (사진=국방일보 제공) [email protected]
이런 가운데 일부 관광객들은 사전 신청없이 '평화의 길'을 이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가 되돌아가기도 했다. 기자가 탄 오후 B코스 버스는 9명만 탑승했지만 현장에서 바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었다.
문체부 관계자는 "시범 운용 기간에 파악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개선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사전신청 없이 '평화의 길'을 이용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사와 군 당국의 승인이 바로 이뤄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군사지역이다 보니 즉석에서 신청을 받아서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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