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평생 동반자' 이희호 여사, 97세 일기로 영면에 들다(종합)
'김대중 없이 이희호 없고, 이희호 없이 김대중 없어'
김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민주화 투쟁에선 동지
유신독재와 신군부 탄압에 맞서며 김대중 적극 구명
【광주=뉴시스】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손을 흔들고 있다. 2017.09.14. (사진= 뉴시스DB)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이날 뉴시스와 통화에서 "이 여사가 오늘 오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셨다"고 전했다.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6·25전쟁 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서 여성운동가로서 여성인권운동을 이끌었다.
이 여사의 삶은 1962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이 여사는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인생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반자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행동하는 양심'으로 현대사의 거친 길을 걸어왔다.
'이희호가 없는 김대중을 생각할 수 없고, 김대중 없는 이희호를 생각할 수 없다'고 이야기할 만큼 두 사람의 사이는 각별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 일선에 나설 때 정신적 지주로서 그를 지지했다. 본인 역시 민주화 투쟁 동지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들의 힘든 여정은 1971년 김 전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과 붙은 대선에서 46% 득표로 선전했지만 낙선하면서 시작됐다.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1987년 6월 9일,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SY44)에 뒷머리 피격 당한 후 27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사망한 고 이한열 씨의 분향소 모습을 기록한 사진가 윤석봉 씨가 6.10 민주 항쟁 30주년 맞아 뉴시스에 사진을 제공했다.사진은 1987년 7월 5일 당시 김대중 통일민주당 상임고문이 이희호 여사와 분향하고 있다. 2017.06.08. (사진=윤석봉 제공)(* 위 사진은 재배포, 재판매, DB 및 활용을 금지합니다.)
1973년에는 '김대중 도쿄납치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이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 큰 시련이 왔지만, 이를 이겨내게 한 것도 역시 이 여사의 도움이었다.
그러나 이후 김 전 대통령이 정치 활동을 금지 당하고 가택연금, 옥고를 치르면서 이 여사도 함께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1979년 박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잠시 정치 활동이 재개됐지만,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1980년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감되고 사형을 선고받으면서 다시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이 여사는 이 고난의 기간 유신 독재와 신군부의 탄압에 맞서 싸웠으며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이 여사는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정권과 타협하지 말라며, 김 전 대통령이 신념을 지키도록 힘을 줬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옥고를 치르고 죽음 앞에 설 때마다 전 세계 유력 인사들에게 호소력 짙은 편지를 보내 구명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서울=뉴시스】이희호 여사의 모습, 뒤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액자가 보인다.. 2016.09.07. (사진=뉴시스DB)
이 여사는 지난 2009년부터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으로 지내며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아 남북관계와 평화 증진, 빈곤 퇴치 등을 위해 힘썼다.
그러나 이 여사는 지난 3월부터 병세가 악화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과 동교동계 등은 이 여사의 병세가 악화될 것을 염려해 지난 4월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의 별세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이 여사의 장례 방식이나 절차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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