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시신이라도…" 4·3 행방불명 묘역서 눈시울 붉힌 딸
제74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행방불명인 묘역에 유족 발길
어린 나이에 가족 떠나 보낸 유족들 "마음 속으로 그리는 수밖에"
"살아 생전에 시신이라도 수습했으면" "더 늦지 않게 호적 정리"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 날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 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역에 있는 故 부태진씨 표석 앞에 사위인 이봉화씨가 참배 후 회한에 잠겨 있다. 2022.04.03. [email protected]
제74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7시 제주4·3평화공원 내 4·3 행방불명인 묘역.
이곳엔 제주에 참혹한 피바람이 불었을 당시 산과 들에서, 육지 형무소에서, 또 깊은 바다에서 희생됐지만 시신조차 수습되지 못한 행방불명 희생자 4000여 명의 개인별 표석이 세워져 있다.
추념식을 3시간 앞둔 이른 아침이었지만, 지난해와 달리 파란 하늘 아래 화장한 날씨를 보인 묘역에는 그리운 가족을 만나기 위해 많은 유족의 발길이 이어졌다.
묘역에 들어서자 행방불명 희생자 개인별 이름이 새겨진 각 표석 앞에는 국화가 놓여 있었다. 유족들은 손수 챙겨온 음식과 술을 국화 옆에 올리고 표석을 닦은 뒤 희생된 가족을 마음속으로 떠올렸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서 온 부춘자(여·78)씨는 하얀 수건으로 묘비를 닦고 빵과 생선, 과일, 소주를 정성스럽게 올렸다. 그는 "아버지가 끌려갔을 당시 4살밖에 안 됐으니 기억이 없다. 요즘처럼 사진이 있던 시절도 아니어서 그저 마음속으로 그린다"고 말했다.
부씨는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형무소에 끌려가 옥살이를 한 故 부태진씨의 딸이다. 부씨의 아버지는 최근 재심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은 군법회의 수형인 희생자 중 한 명이다.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 날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 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지석에 참배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022.04.03. [email protected]
부씨는 "아버지가 육지로 끌려간 뒤 부산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아버지는 여태껏 죄인이었고, 저는 죄인의 자식이었다"며 "지금이라도 억울한 누명을 벗게 돼 너무 다행이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부 씨의 남은 바람은 자신이 살아있을 때 아버지 시신이라도 수습하는 것이다.
그는 "재판을 진행하면서 변호인에게 시신 수습은 어떻게 되느냐 물었더니, '그건 정부에서 해줘야 한다'고 하더라"며 "이제 내 나이도 여든이 다 됐다. 새 정부에서 꼭 시신을 수습해줘서 마지막 자식 도리를 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큰아버지 표석 앞에 술을 올리던 김창호(제주시 화북동·68)씨는 4·3의 광풍이 불었을 당시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었다. 집안에 첫째였던 큰아버지가 자식 없이 희생되면서 김씨는 큰아버지의 양자(養子)로 자랐다.
김씨는 큰아버지가 화북 포구에서 배를 타고 끌려간 뒤 돌아오지 않자 수십 년 동안 제사를 지내고 집안에 장손 역할을 해왔지만 4·3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 날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 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지석에 유족들이 찾아와 참배하고 있다. 2022.04.03. [email protected]
김씨는 "6월1일이 아버지 제사다. 동네 어른이 그날 배에 끌려가는 모습을 봤다고 할어버지한테 얘기해 줘서 그날을 제삿날로 해 수십 년 동안 모셨다"며 "족보에는 올라갔지만, 호적부에는 입적되지 않아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이 때문에 최근 4·3특별법 개정으로 결정된 4·3 희생자 배·보상도 받지 못한다. 그는 "평생을 4·3 희생자의 자식으로 살아왔는데, 법적으론 내가 아들이 아닌 것이다"며 "행정에서 호적 정리에 하루빨리 나서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날 추념식은 '4·3의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를 주제로 오전 10시부터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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