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백남준 파괴자 TV 선각자 導火線
다큐 영화 '백남준:달은 가장 오래된 TV'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다큐멘터리 영화 '백남준: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라는 말로 단순화 된 백남준을 구체화한다. 백남준이 비디오 아트라는 걸 처음 시도했다는 것과 이를 통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가 추구한 게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그는 '유명한 걸로 유명'하다. 어맨다 킴 감독의 '백남준: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백남준이 시도한 작업의 정체를 짚어가며 그가 왜 위대한 예술가로 불리는지 증명한다. 백남준의 삶 전반을 다룬 사실상 첫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인 이 작품을 보고 나면 그를 비디오 아트라는 말로 국한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대신 백남준은 백남준이라는 말 외에 어떤 말로도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백남준에게 바치는 헌사다. '백남준: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1950년대 작곡을 배우기 위해 독일 뮌헨으로 건너 갔다가 아방가르드 예술에 심취하고, 1960년대 미국 뉴욕에 가서 당시 최첨단 매체였던 TV를 활용해 새로운 장르를 창조해낸 뒤, 우여곡절 끝에 성공해서 국민 영웅이자 당대 최고 예술가로 평가 받다가 2006년 1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백남준의 삶을 총괄한다. 전기 다큐멘터리로서 정공법에 가까운 방식을 쓰는 이 영화는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백남준 관련 사진·영상·글 등을 긁어모아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를 만들고, 박서보·앨런 긴즈버그·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등 생전 그와 교류한 예술가를 인터뷰 해 백남준이 누구였는지 탐구한다. 어맨다 킴 감독이 5년을 바쳐 내놓은 결과물은 어쩌면 백남준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그에 관한 백과사전이다.
'백남준: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백남준을 예술가에서 선각자로 격상한다. 물론 백남준을 맹목적으로 추어올리진 않는다. 그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 그런 생각이 바탕이 돼 나온 창작물들, 그리고 그가 궁극적으로 꿈꾸던 세상이 무엇인지 탐색해 들어가며 근거를 갖고 백남준이 비디오 아티스트 이상의 존재라는 걸 확인해 간다. 백남준은 자유를 원했다. 그는 모두가 모두와 소통하는 세상을 꿈꿨다. 그래서 그는 TV라는 권력을 부수려 했다. 비디오와 비디오를, TV와 TV를 연결해서 사람들을 연결하려 했다. 그는 최첨단 기술을 알려고 했으나 최첨단 기술을 불신하기도 했다. 그래서 백남준은 "미래를 생각하는 건 예술가의 일"이라고 했고, "예술가는 파괴자이자 우리 사회의 도화선"이라고 했으며, "내게는 매일이 소통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의 동료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남준은 너무 앞서갔어요."
소통·미래·파괴·새로움이라는 키워드에 삶을 바친 백남준이 수십 년 뒤 미래를 예측했다는 건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그는 앞으로 개인이 방송 채널을 가질 수 있게 되고 그 채널은 수도 없이 많아질 거라서 편성표가 전화번호 책처럼 두꺼워질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는 유튜브 세상을 얼추 예견했다. 백남준은 '정보 초고속도로'라는 말을 최초로 썼다. 인터넷 시대를 내다본 것이다. 미국 언론은 실제로 인터넷에 관해 설명하며 이 말을 썼다. 더 놀라운 건 정보 초고속도로라는 말을 생각해낸 뒤 백남준이 그 말을 뒤집었다는 점이다. 그의 한 동료는 새벽에 백남준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정보 초고속도로가 아니라고 했어요. 우린 바다 위에 있고 해안이 어디인지 모른다고 했죠. 전 25년이 지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인터넷 하는 걸 우린 웹서핑이라고 부른다.
이 영화에선 예술에 삶 전부를 갖다 바친 광인(狂人) 백남준을 볼 수도 있다. 1974년에 내놓은 'TV부처'가 전 세계 예술계를 뒤흔들며 더는 생활고를 겪지 않게 됐으나 백남준은 'TV부처' 이전이나 이후나 똑같이 잠 잘 때 말고는 거의 대부분 시간을 창작을 하는 데 썼다. 애초에 'TV부처'는 그가 가진 1만 달러 전부를 털어 산 불상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큰 성공을 거둔 후 전시회장에서 그는 말한다. "이거 끝나고 빨리 일하러 가야 해요." 1990년대 중반 뇌종중으로 휠체어를 타야 했고 신체 일부가 마비 됐는데도 그는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백남준은 말했다. "전 예술을 만들지 않아요. 예술이 절 만들죠." 그의 예술 세계가 처음부터 인정 받은 건 아니었다. 백남준은 오랜 혹평에 시달렸다. 그래도 그는 말했다. "이유 있는 실수가 이유 없는 성공보다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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