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학대 신고하려고요"…응급실 의사의 '무거운' 고민
24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작 '무거운 통화'
"신고 의사의 책임감과 윤리적 고뇌 담아"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입양한 16개월 여아 정인이를 학대 끝에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모의 대법원 선고를 앞둔 지난 2022년 4월 28일 서울 대법원 앞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2022.04.28. jhope@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2/04/28/NISI20220428_0018744562_web.jpg?rnd=20220428120112)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입양한 16개월 여아 정인이를 학대 끝에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모의 대법원 선고를 앞둔 지난 2022년 4월 28일 서울 대법원 앞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2022.04.28.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송연주 기자 = 지난 2021년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16개월 '정인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시작점에는 소아과 의사의 아동학대 신고와 응급의학과 교수의 생생한 현장 증언이 있었다. 무능한 사회 시스템과 악한 어른이 얽히고설켜, 그 실타래는 덩어리째 세상에 나왔다.
15일 한미약품에 따르면 최근 24회 '한미수필문학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무거운 통화'(분당차병원 소아응급센터 박수현 교수)는 "아동학대 좀 신고하려고요"라고 전화 거는 의사의 무거운 책임감과 고뇌를 담아냈다.
작품에서 저자 박수현 교수는 영아 시기, 아이들의 외상에 대해 의료진은 양육자로 인한 학대의 가능성을 항상 의심한다고 언급한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한 집의 셋째 아이는 어느 겨울밤,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에 실려왔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봐 왔던 어느 소아신경과 교수의 아동학대 신고로 인해, 추후 경찰조사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씌우고 질식을 유도했다는 게 밝혀진다.
부모는 구속됐고, 뇌손상이 크게 남아 수술을 반복한 그 아이를 포함해 삼남매는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이후 할머니는 "아이들 부모 없이 혼자 세 아이를 돌볼 수 없다"고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교수의 멱살을 잡았다.
과연 신고한 의사는 아이들에게 의인이었을까, 악인이었을까. 이 사례는 저자에게 이러한 고민을 안겼다. "아이를 구했으니 아이에게는 의인이었을까 하다가도, 아이의 형제에게는 악역이었을 수도"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또다른 사연에선 아동학대 아이가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만나게 된다. 연이은 뇌출혈과 뇌수술, 각막이식수술을 받은 한 학대 아이는 결국 친모와 분리조치돼 시설로 옮겨졌고 이후 양부모를 만났다. 현재 그 아이는 평범하고 행복한 열 살의 그 맘 때 아이처럼 자라났다고 저자는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저자는 "아이가 숨겨진 천사를 만날 수만 있다면, 의사는 의인이 되든지, 악인이 되든지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무거운 통화' 외에도 이번 한미수필문학상에는 의료현장에서의 잊을 수 없는 사연과 이를 지켜본 의사의 고뇌가 담긴 작품이 많다.
▲불과 4개월의 시간차를 두고 모두 직장암을 진단받은 부부의 이야기(어느 부부와의 약속) ▲자신의 어머니처럼 마흔두살에 '유전성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은 젊은 환자를 보며 의사는 때로 치료자가 아닌, 기억의 동반자가 돼야 한다고 느낀 사연(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평생 엄격한 철칙으로 대장암 수술을 하며 환자를 살리던 외과의사가 결국 자신도 대장암으로 생을 마치며 교수로서의 죽음을 맞이한 이야기(의사는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 ▲엄마로 사느라 몰랐던 정욕을, 76세에 남자친구가 생긴 후에야 생전 처음 느꼈다는 할머니 환자를 보며 느낀 산부인과 의사의 만감(한 할머니의 잠 못 이루는 밤) ▲거스를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깊은 무력감과 죄책감을 느꼈던 전공의 시절의 경험(그녀의 마지막 편지) ▲하루 동안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그리면서 소아과 의사 부족 현상과 전공의 사직 사태, 생명을 책임진 사람의 중압감을 풀어낸 이야기(혼자 하는 인계) ▲22살인데도 어릴 때부터 진료받던 소아청소년과를 다니는 '최고령 환자'와 배우자에 이어 그 최고령 환자(딸)와도 작별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풀어낸 글(최고령 환자) 등이 있다.
한편, 한미수필문학상은 2001년 제정된 뒤 24년 동안 의사들이 의료 현장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기록한 수필을 시상한다. 한미약품이 후원한다. 올해는 총 129편의 작품이 접수돼, 심사를 거쳐 14편의 수상작이 선정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songyj@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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