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 침공에 맞서 영국구한 공중전의 최후 생존자 105세로 타계
1940년 영·독 공중전 참여 2941명의 공군장교 모두 사라져
한 세대의 마지막 연결 고리 끊겨
처칠 당시 英총리 "세계가 이들의 헌신에 감사해 할 것"
![[더블린(아일랜드)=AP/뉴시스]2024년 7월17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영국 대사관에서 영국 전투(Battle of Britain)의 마지막 생존자인 존 '패디' 헤밍웨이가 105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그가 17일(현지시각) 105세로 사망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 초반이던 1940년 영국이 항복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 속에 나치 공군에 맞서 싸웠던 영국 전투 참여 조종사들과의 마지막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2025.03.18.](https://img1.newsis.com/2025/03/18/NISI20250318_0000190987_web.jpg?rnd=20250318200345)
[더블린(아일랜드)=AP/뉴시스]2024년 7월17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영국 대사관에서 영국 전투(Battle of Britain)의 마지막 생존자인 존 '패디' 헤밍웨이가 105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그가 17일(현지시각) 105세로 사망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 초반이던 1940년 영국이 항복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 속에 나치 공군에 맞서 싸웠던 영국 전투 참여 조종사들과의 마지막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2025.03.18.
[런던=AP/뉴시스] 유세진 기자 =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이던 1940년 영국이 항복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 속에 나치 공군에 맞서 싸웠던 영국 전투(Battle of Britain)에 참여했던 수천명의 조종사들 가운데 마지막 생존 조종사가 17일(현지시각) 사망, 마지막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영국 공군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 영국 공군에 입대했던 아일랜드 국적의 존 '패디' 헤밍웨이가 17일 더블린의 자택에서 105살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헤밍웨이는 1940년 여름과 가을 영국을 굴복시키려는 나치 항공기의 파도에 맞서 싸우기 위해 왕립 공군의 동지들과 함께 치열한 공중전을 벌여 영국을 위기로부터 구한 영국 전투의 최후의 생존자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20살이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당시 "우리 섬, 우리 제국, 그리고 실제로 죄인들의 거주지를 제외한 전 세계의 모든 가정이 역경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과 치명적 위험에 지치지 않고 끝없는 헌신으로 세계대전의 흐름을 바꾼 영국 공군에 감사해 한다"며 "인간의 갈등사에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적은 사람들에게 빚진 적은 없었다"고 말했었다.
영국은 그후로도 계속 위험의 순간 동안 나라를 구한 "소수"를 존경해 왔다. 영국해협 연안의 영국 전투 기념관에는 당시 전투에 참가한 연합군 공군 장교 2941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영국 공군에 따르면 헤밍웨이는 1940년 8월 독일 항공기와의 공중전 도중 적기에 피격돼 두 차례나 허리케인 전투기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해야 했는데, 바다에 착륙한 후 전투 재개를 위해 편대로 복귀했었다. 그는 1941년 용맹에 대한 공로로 영국 공군수훈 십자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자신은 조종사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용기와 영웅주의에 대한 제안을 일축했다. 그는 2020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세계는 전쟁 중이었다. 누구도 전쟁을 치르지 않고 평화롭게 살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19년 7월17일 더블린에서 태어난 헤밍웨이는 1938년 영국 공군에 입대했고, 나치의 공격에 밀려 후퇴하는 프랑스군을 공중 엄호하는 임무로 처음 전투에 참여했다.
영국 전투 이후 그는 통제관으로 일하면서 독일의 공격에 대한 영국 공군의 대응을 지휘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스핏파이어를 조종하는 제43 비행대의 사령관이 됐고, 영국 공군에서 31년 간 복무한 후 1969년 퇴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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