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흰개미 사육 강석호 & 불탄 집창촌 청소 김도희
【서울=뉴시스】강석호 개인전
이런 측면에서 이 두 명의 작가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너무 거창하게 소개하는 것 아니냐'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근래에 보기 드문 작업이고, 또는 상업화랑에서는 좀처럼 시도할 수 없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서울 통의동 진화랑 신민 큐레이터는 스스로 "뿌듯하고 통쾌한 전시"라고 했다. 단색화와 팝아트 일색인 미술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전시이기도 하다.
진화랑에서 '한계와 조건'을 타이틀로 한 지붕 2인전을 열고 있는 강석호(35), 김도희(37) 작가다. 독특함과 신선함으로 무장했다.
'실험과 체험'이 둘의 차이다. 강석호는 흰개미를 사육해 작품을 만들었고, 김도희는 온몸이 부서져라 움직여 작업했다. 둘다 서양화과 출신으로 그 '한계와 조건'을 밀어붙였다.
사진과 영상 설치물로 나온 작품은 '인내와 끈기'가 힘이 됐다. 삶의 '흔적'을 쫓아가며 "없이 살아왔지만 작가로서 행복하다"는 둘을 만났다. "도대체 왜 저렇게 사는 거야"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지만 두 작가는 "예술가는 감춰져 있거나 무관심하지만 의미있는 것들을 노출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흰개미 1500만마리를 사육한 남자, 강석호
【서울=뉴시스】강석호, 흰개미가 패션잡지를 파먹은 작품
'사각사각…', 어두운 밤이면 흰개미들 소리가 들렸다. 책을 갉아먹는 소리, '상대적 절대자'가 된 작가는 뿌듯했다. '살아있구나.' 철저하게 통제하고 관리했다. 위기도 있었다. "작업초기였죠. 책이 나무로 만든거니까 흰개미들이 살 수 있을 것이란 판단으로 처음부터 컬러 도판으로 된 책들을 먹였어요. 그랬더니 일주일만에 완전히, 깨끗하게 한 마리도 없이 전멸했어요."
적응이 진화였다. 흰개미들은 적응이 빨랐다. "세대주기가 짧으니까 적응이 진화로 바로 이어지는게 보였어요. 그런데 진화가 생존확률은 높일지는 몰라도 생명체의 안전성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더라고요." 과학자가 말하는 '임계전이'처럼 생태계가 재편되고 생존했던게 멸종하는 것을 눈으로 몇번씩이나 확인했다. "임계점을 지나면 제가 아무리 상황을 바꿔주려고 해도 두 달이면 언제 흰개미가 살았냐는 듯이 모든 흔적이 지워져 버렸죠."
그걸 보며 작가는 인간사회 시스템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것도 변할 수 있다. 견고한게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 도시가 점점 증식하는 그런 과정 자체가 임계점에 점점 다가가는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했다. "우두머리가 중심인 인간 사회와 달리 흰개미 사회는 공생, 공존할 수 있는 절대다수가 중심이 되는 사회지만 임계점에 도달해서 한 번 무너지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거든요."
지난한 작업이었다. 흰개미들은 책속에서 생사와 번식을 반복하며 1500만마리로 늘었다. 5년 간이나 이어진 '흰개미 프로젝트'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두려워지고, '어떻게 감상될까' '이 부분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로 뒤숭숭해지곤 했다.
하지만 '흰개미들의 삶'은 작가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지난해 런던 사치갤러리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호평을 받았고, 올초 일본 도쿄아트페어에서는 작품이 팔려나가기도 했다.
【서울=뉴시스】김도희, 불탄 집 바닥을 닦은 걸레들
이번 전시는 흰개미와 예술가가 합체된 궁극의 컬래버레이션이다. 흰개미가 이룩한 작은 문명을 통해 인간의 삶과 인체의 유한성을 새삼 느껴볼 수 있다. 누렇게 변한 책에 자연스럽게 내어진 '우둘투둘한 길'들이 추상화가 되었다.
흰개미가 살기 위해, 또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전진한 '삶의 흔적'이 강렬한 사진 작업 19점과 흰개미들의 일상을 영상으로 담은 작품등을 선보인다.
◇검게 불탄 집창촌을 청소한 여자, 김도희
"새 수건드릴테니 걸레 좀 주시겠어요?"
큰 화재로 10년 이상 방치된 미아리 집창촌 건물에 우연히 들어간 후 "꼭 그렇게 해야만 했다." 집창촌을 돌며 이모와 삼촌들에게 수건을 걸레로 바꿔 불탄 집을 청소했다.
【서울=뉴시스】김도희, 모질고 질긴 목숨, 뿌리 퍼포먼스 기록물
전시장엔 그렇게 '검은 집'을 청소한 걸레를 널어놨다. 아무리 빨아도 회색으로밖에 돌아오지 않는 걸레들은 구멍이 나고, 너덜너덜해진 채 전시됐다. 특히 전시장에는 '신음 소리'가 울린다. 영상에는 작가가 검은 집 바닥을 걸레질을 하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노동의 고통 소리'가 묘하게 울려퍼진다.
극한 체험에 나선 작가는 낯설고 은폐된 공간에서 이미지로 전해지는 처연한 슬픔과 함께 삶의 강력한 의지를 만났다. 창문에 떨어진 씨앗 하나가 10년 사이에 나무가 되었지만 깊이 박히지 못한 뿌리는 시멘트 바닥에 혈관처럼 이어져 건물을 잠식하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이 나무사진도 걸렸다. "청소를 하고 있으면 해질녘 또각또각하는 하이힐 발자국 소리와 함께 이모~하고 부르는 앳된 목소리가 들려요. 처음엔 뭐가 저리 좋을까 했지만, 그녀도 나도 하나의 벽에 가린 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회화(홍익대 서양화과)를 전공하면서 늘 시각성에 답답함을 느꼈다"는 작가는 "색깔을 고민하게 되고 위치를 고민하게 되는 그 과정이 너무 싫었다"면서 "몸으로 움직이는 작업을 하는 건 '실감'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가치를 말하기 위해선 고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제 작업이나 선택하는 매개물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직설적이고 야만적으로 읽히기도 할거예요. 하지만 저는 추상적 개념의 공간적 나열이나 가상의 스펙터클을 도피처로 제공하지 않고 세계에 대한 실제감을 회복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온몸으로 부딪혀 작품세계를 구축해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잡은 설치작가 김수자, 이불에 이은 '발칙한 여성작가'의 출현은 아닐까.
격렬한 몸의 행위를 통해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 그녀는 '생동하는 예술가'다. 검고 깊은 눈동자를 가진 작가는 "어떤게 예술이고 어떤 태도가 예술가로서의 태도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하며 그걸 잊지 않고 작업하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유일한 역할"이라고 했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고요? 일단 내년에도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게 솔직한 바람이에요. 하하." 전시는 13일까지. 02-738-7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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