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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아트클럽] 유홍준 "백번 말하지만 민중미술전 아니다"

등록 2016.01.27 16:50:52수정 2017.11.14 11: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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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종구, 1991, 이씨의 여름, 부대종이에 아크릴릭, 150x210cm

【서울=뉴시스】 이종구, 1991, 이씨의 여름, 부대종이에 아크릴릭,  150x210cm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패션만 돌고 도는게 아니다. 그림도 유행을 탄다. 30년전 흥했던 미술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미술시장에 불고 있는 '민중미술'이다.

  세계미술계에서 주목한 '단색화'이후 '한국현대미술'의 새 브랜드 런칭 과정속에 민중미술이 제시되는 상황이다.

 60년만에 80대의 화백들이 봄날을 맞았듯, 30년후인 2016년 '민중미술'이 다시 호황을 누릴수 있을까.

 시동은 가나아트센터가 걸었다. 일단 '민중미술'이라는 말은 뺐다. 대신 '리얼리즘의 복권'이라는 타이틀로 28일 서울 인사동 가나 인사아트센터에서 '민중미술' 작품을 선보인다.

 신학철(72)·임옥상(66) ·황재형(64) ·민정기(67) ·고영훈(64) ·권순철(72)· 이종구(62) ·오치균(60) 8명의 작품이 걸린다.

 고개를 갸우뚱하게하는 작가도 있다. 민중미술 작가이거나 아니거나, 아니라고 해도 보기엔 민중미술 작가로 인식되는 작가들이 반반 섞였다.

  전시자문을 맡은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67)를 만났다. 그는 "재향군인회에 온 것같다"면서 흥분감을 감추지 않았다.

왜 지금, '민중미술'이냐고 물었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80년대 함께 했던 민중미술 작가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80년대 함께 했던 민중미술 작가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30년 되니까 이게 좋은 줄 아는거다. 띄워야 한다. 내 영혼이 바쳐져 있는 건데…"

 유 교수는 80년대 민중미술의 태동이 된 '현실과 발언'과 민족미술협의회에서 작가들과 함께 활동했었다.

 민중미술과 단색화의 차이는 평론가가 작가와 함께 컸다는 점이다. 유 교수는 "10여년간 민중미술 작가들과 함께 민중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등 잔인한 비판을 했었다"고 말했다.

 작가와 평론가가 뭉친 건 정치적인 상황때문이었다. 폭압정치 속에서 말로 못하는 소리를 그림이 냈다. 유 교수는 "평론이라고 하는 것이 18세기에는 뛰어난 안목을 가진 사람의 재단비평이었지만, 현대미술로 오면 무브먼트속에서 이론을 제시하는 같은 창조자"라고 했다.

 "현재 단색화가 각광받는건 미니멀리즘이 한국적으로 토착됐다는 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서구의 현대미술이 80년대에 예술적 배반을 하고 딴데로 튀어버렸다. 모노크롬을 하던 작가들이 쫓아갈수가 없어졌다. 포기할수 없으니까 그동안 해왔던 것에 자기를 집어넣어서(수행같은 작업) 한 것이 한국적으로 된 것"이라고 요약했다. 

 유 교수는 "80년대 한국미술을 이야기하기전에 서구의 미술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서구사회에서도 포스트 모더니즘이 일면서 슈나벨, 펜크 딕스, 키퍼등이 '리얼리즘의 복권'을 보여줬다. 이런 미술이 일어났을때 미국 뉴욕뮤지엄(모마)에서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3층 구석진 끝방에 '아메리카 컨템포러리 페인팅 룸'이 생겼고, 전시 제목은 '고뇌의 시대'였다.

 우리나라도 서구미술의 변화와 연관된다. 당시 미술계는 단색조 작가, 상업화랑 인기작가가 있었고, 국전 작가, 대학교수 작가가 있었다. 이런 제도권을 뚫고 조형적 반항으로 등장한 게 '리얼리즘 작가'다.

【서울=뉴시스】민정기, 벽계구곡도, 1992,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x336cm

【서울=뉴시스】민정기, 벽계구곡도, 1992,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x336cm

리얼리즘은 '현실을 어떻게 그림으로 담을수 있을까. 작품으로 구현될수 있을까'가 시작이었다.  문학에서 신경림의 농무, 황석영의 객지가 나오면서 이론이 피어났고 미술에서 신학철과 오윤이 나타났다. 유 교수는 "오윤은 대학때부터 리얼리즘전을 추진했다가 정부의 반대로 전시를 열지 못하기도 했다. "86년 오윤이 사망하면서 민중목판화의 풍성함은 더 살아나지 않았는가" 유 교수는 "민중미술은 민주화 과정 속에서 일어났던 미술인들의 자생적인 예술적 분출양식"이라고 했다.

 "'리얼리즘'상당수는 민중미술작가"라고 했다. "그림의 현실을 어떻게 담아내야할지 오랫동안 고민해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민중미술'은 매스컴이 만들어준 개념이다" 유 교수는 "근대 서양미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우리미술의 주체성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단색화'가 영문으로 'Dansaekhwa'로 고유명사화 됐 듯, 민중미술도 'Minjung Art'로 영문이름을 가지고 있다. 1984년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의 환갑때 열린 한국의 현대미술 세미나에서 탄생했다. 유교수는 "당시 민중미술을 발표하면서 성완경 평론가가 '피플스아트'라고 했지만 그 자리에서 '민중아트'로 정해졌다"면서 "한국말과는 달리 영어로 쓰니 멋있는 용어가 됐다"고 말했다.

 80년대 후반, 386세대의 등장으로 민중미술은 이념적으로 진화했다. 시위현장의 걸개그림으로, 노동의 현장으로 들어간 민중미술은 아이러니해졌다. 정작 현실속으로 들어갔지만 일반적으로 괴리감은 커졌다. 또한 정부의 탄압도 거셌다. 

 유교수는 "'불온'하다는 개념이 덧칠해진 민중미술은 퇴보를 보였다. 작가들도 서로 우리가 진짜 민중이다, 아니다로 오지게 싸우기도 했었다"면서 "세월이 지나고 보면 80년대 민중미술은 한국의 산업화 민주화 성공 과정속에서의 예술적 정신이었고, 표현이었다"고 회고 했다.

 '민중미술'은 이제 '한국적 리얼리즘'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당시 함께했던 평론가의 힘으로, 유교수는 이들을 '리얼리즘의 복권'으로 복귀시켰다. "그동안 멸시받은 것만해도 억울해 죽겠다. 작품을 보고 이야기하자"

 유 교수는 "그동안 못 그린 것만 가지고 이야기하니까 부담스러웠는데, 이번 작품들에 맞짱뜰 수 있으면 나와봐라"면서 청년이 된 듯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서울=뉴시스】신학철,한국현대사 망령,합판에 종이 콜라주 110×60cm,2011

【서울=뉴시스】신학철,한국현대사 망령,합판에 종이 콜라주 110×60cm,2011

  이번 전시에서는 이종구화백이 김대중과 정주영을 그린 4m 짜리 대작 및 8명의 주요 작품 100점을 선보인다.

   '민중미술'로 인식된 작품들이 있지만 유 교수는 "이 전시는 100번 이야기하지만 민중미술전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유 교수가 "가나아트와 토론을 하고 작가를 넣었다 뺐다"하며 선정된 작가들은 '유홍준 취향'이라고 했다.

'유홍준 취향'은 " 잘 그려야 한다. 이미지가 확실해야 한다". "깨지든 겹치든 비약을 하든 예뻐야 하고, 메시지는 약해도 상관없다"는 것.

 유 교수는 이들 8명의 공통점을 7가지로 정리했다. '1. 전업작가, 2 대작에의 도전, 3.사회성이 없다(임옥상 빼고), 4.우직, 정직 고지식(임옥상 빼고), 5, 테크닉 달인들, 6 정통 따블로 작가들, 7 서구사조등 남 눈치 안본다'는 점을 들었다.

 굳이 민중미술과 리얼리즘 작가를 분류하자면 이렇다. 주관의 개입이 강한 민중미술작가는 신학철 임옥상 민정기 황재형이다. "민정기하고 황재형은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넣어야 한다" 는  유 교수는 "이번 전시에 나오는 고영훈은 (민중미술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오치균도 상관없다"고 선을 그었다.

 유 교수는 "리얼리즘속에 민중미술이 들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리얼리즘에는 군부독재에 항거한 민중미술이 있고, 묵묵히 리얼리즘을 고수한 화가들이 있는 것이다".

 【서울=뉴시스】임옥상,웅덩이, 아크릴화,194 ×129 cm, 1980

【서울=뉴시스】임옥상,웅덩이, 아크릴화,194 ×129 cm, 1980

신학철은 역사의 맥박과 혼이 있고, 임옥상은 대상의 현실적 해석이 탁월하다. 황재형은 막장의 풍경과 인생을 그려 현장감이 넘치고, 민정기는 실경 산수를 통해 현실과 소외를 드러낸다. 권순철은 근원을 찾아가는 해체감이, 오치균은 거친 대상의 이미지의 승화로 어떻게 그려도 멋진 그림이 나온다. 이종구는 농촌과 농민 고향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 전통 리얼리즘을, 고영훈은 고서위에 돌 혹은 시계와 삽등의 오브제를 융합시킨 극사실 하이퍼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엽기가 판을 치고 이미지가 범람하는 21세기, '민중미술'은 더 이상 무섭지 않다. 정치인들이 해골 아래 뭉쳐진 신학철의 그림과 당시엔 전시에서 철거됐다는 붉게 웅덩이가 파진 논바닥 그림은 더이상 자극적이지도,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술은 시대가 낳는다. 30년전 '불온을 품어 멸시받았다'는 작품은 '한국 미술'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 진출'을 꿈꾼다.

  전시를 주최한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키를 쥐었다. "80년대 이런 현실적인 그림은 아시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일본도 없고, 중국도 1995년 이후에야 나온다. 족보상에서 우리가 15년이상 앞서있는거다. 우리는 이것을 보여주고 싶은 거다. 민중미술이 무엇인가. 한국의 '리얼리즘 예술'이라는 말로 정리할수 있다. 이번에 리얼리즘 복권 전을 준비하면서 국내보다 외국에 어떻게 보여줄까를 고심했다"

  이호재 회장은 "세계미술시장에서 단색화가 뜬데 이어 한국 리얼리즘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다"면서 "그래서 이번 전시도록은 영어판과 중국어판을 제작한다"고 밝혔다.

  가나아트가 '민중미술'이라는 군불을 피우고, '리얼리즘'을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불안정한 사회적 인식에 갈등의 구조는 언제나 잠재되어 있다. 민중미술의 작품을 또 다시 드러낸다는 것은 '현물로써의 민중미술'을 선보이는 것 외에도 '시대를 대변하는 정신성과 그 파장을 다시 깨우는 역할'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민중미술은 정치적이면서 선동적인 성향이 강하다. 편향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이 세대를 넘어 다시한번 충돌을 일으키는 효과도 있다.

 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민중미술' 개념을 받아들이는 인식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민중미술이라는 용어보다, 리얼리즘 개념을 더욱 강조한 이번 전시는 세계 미술시장을 겨눈 가나아트의 새로운 돌파구 찾기로 보여진다. 모든 것은 만들어진다. 혁신도 마케팅 싸움이다. 전시는 2월 28일까지. 02-720-1020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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