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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아트클럽] "1250도 가마에서 녹아내리기 일쑤였죠" 오주현의 '한복 도자인형'

등록 2016.02.14 17:26:32수정 2017.11.14 11: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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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불의 미학으로 탄생한 도자인형은 천연염료를 사용해 색감이 곱다.

【서울=뉴시스】불의 미학으로 탄생한 도자인형은 천연염료를 사용해 색감이 곱다.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013년 12월 18일 한겨울, 서울옥션 경매는 뜨거웠다. 검찰에 압류된 전두환 전 대통령 컬렉션이 쏟아져 세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야드로' 인형이 주가를 높였다. 스페인 수제 도자기 인형 야드로(LLADRÓ)의 도자기 35점이 모두 팔려나갔다. 추정가 700만~900만원짜리 인형은 2000만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인형 하나에 수천만원에 팔리자 '야드로' 인형은 일반인들에게도 눈도장을 찍었다. '천사' '신부', '여인'등 다양한 모습을 한 '도자 인형' 야드로는 에디션 개념으로 한정 생산해 희소가치도 높다. 덕분에 스페인의 국력이 된 도자기다.

  "왜 우리나라는 세계에 내놓을 만한 도자기 인형이 없을까?" 

 '야드로'로 떠들썩할 당시, 서울 명동 한 공방에선 도예가 오주현(48)이 꿈을 키우고 있었다.

 "내가 세계적인 한국 전통 도자인형을 만들겠다"는 사명감은 더 힘을 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만든 도자기 나라인데 못할 것 없지 않은가'. '야드로또한 조선 도자 기법이 바탕이 아닌가"

 2008년부터 흙과 불의 담금질은 기본, 한국 전통복식 연구에 들어갔다. 흙과 안료의 배합, 굽는 방식, 한복의 색감등 인내와 수련시간은 모질게 이어졌다. 한복만의 미감, 여인들의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담아내기 위해 궁중 대례복부터 기녀의 화려한 복식까지 섭렵했다. 또 조선시대 풍속에 나타난 동작, 생활양식까지 연구해 도자인형의 생생한 율동까지 재현했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를 모조리 찾아내어 율동의 자태를 연구했어요.우리 한복은 색감이 화려해야 맛이 나더라고요. 파스텔톤으로는 미감이 발현되지가 않았어요". 

【서울=뉴시스】오주현의 한국전통 도자인형

【서울=뉴시스】오주현의 한국전통 도자인형

끝없는 실험과 실패로 얻어낸 결과였다. 일반적인 도자기 색소로는 우리 전통 옷의 색을 찾기가 싶지 않았다. 전통한복은 천연염료를 사용한 오방색이 딱 들어맞았다. “조선시대의 복식은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것이 특징이에요. 신분에 따른 복식규범도 엄격했어요."

 하지만 이를 전부 도자에 녹여내는 것이 과제였다. 흙은 고온에도 잘 견디는 백자 흙을 사용했다.

 작업은 눈을 뗄수 없을 정도로 노동집약적으로 이뤄진다. 자연스러운 발색을 위해 흙에 안료를 발라 굽는다. 구운 도자위에 색을 칠해내는 게 아니라 원하는 색을 얻기위해 안료를 바르고 굽는 과정을 반복한다.

 “제 작품은 높은 온도에서 구워지는 도자인형이에요. 전통도자기인 고려청자나 이조백자를 굽는 소성온도와 같아요. 초벌, 재벌, 삼벌 작업은 보통이지요”

 흙과 불의 싸움이다. 갈라지거나 파손되는 것은 기본, 가마 속 고온에서 얇게 빚어진 인형들이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다.

【서울=뉴시스】박현주기자= 도자인형을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오주현작가.

【서울=뉴시스】박현주기자= 도자인형을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오주현작가.

기본적으로 1250도의 고온에서 구워지는 작업은 계산한다고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다.  "흙과 불로 옷을 짓는다고 생각해요. 10개를 가마에 넣으면 2~3개를 겨우 건지지만 그렇게라도 완성된 작품이 나오면 그 희열감이란 이루 말할수 없지요"

 연습, 또 연습의 연속은 불꽃의 미학과 융성했졌다. 불속에서 나온 인형은 조선시대 여인들을 환생시켰다.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아 갈듯 치마폭이 찰랑거리고, 색동옷 저고리는 색색깔로 반짝반짝 빛난다.

 보통 화산 용암의 온도는 1000~1200도이고, 철은 1539도, 구리나 금은 1080도 내외에서 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도자기는 1200~1300도 이상의 온도를 견뎌내고 탄생된다.  운석이나 우주선이 대기권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온도로, 도자기야말로 최첨단 과학의 결실이나 마찬가지다.

  천 옷처럼 진 주름은 정말 도자기인가 싶을 정도로 생생하다. 틀로 찍어내서는 이런 느낌을 낼수 없다.  달걀형의 머리에 쪽진 머리, 단아한 모습의 한복인형들은 시대의 여인상을 담아냈다.

 “조선시대 복식인형을 만들다 보면 감정이입이 돼 나도 모르게 어느 시점에선가 조선 사람이 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왕비가 대례복을 입었을 때와 벗었을 때의 섬세한 심리, 혼례를 앞둔 신부의 복잡 미묘한 감정까지, 여자로서의 느낌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아울러 춤과 노래 등 예능을 겸했던 기생과 무희의 삶과 애환마저도 표현하려고 했지요.”

【서울=뉴시스】한국 전통 궁중의상을 재현한 오주현의 도자인형.

【서울=뉴시스】한국 전통 궁중의상을 재현한 오주현의 도자인형.

작가는 도자기 인형제작에 골몰 할 때면 스스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천성적으로 인형 놀이가 제일 좋다"는 작가는 어린시절 흙이나, 천으로 인형들을 만들며 놀았다고 한다. 지점토로 처음 만든 인형이 한복을 입은 빨래터의 아낙이었는데 하얀 한복에서 강한 느낌을 받았던게 평생의 일로 이어진 계기가 됐다.

  8년의 내공이 쌓인 도자기 인형을 공개한다. 오는 16일부터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오주현작가의 '흙으로 조선의 옷을 짓다'개인전을 펼친다.

 승무를 추는 인형부터 궁중대례복을 입은 인형들까지 전시장에는 80여점을 선보인다. 상업적 공예상품이 아니라, 그간에 만나볼 수 없었던 작가주의적 순수미술품으로써의 도자기 인형 전시라는 점이 큰 의미를 갖는다. 독일의 마이센이나 스페인의 야도르 도자기인형부터 중국의 당나라 채색도자 인형들처럼 국제적인 인지도를 지닌 도자인형이 그동안 우리나라엔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하다.

 오주현의 '도자기 인형'은 기존의 관광상품 진열대에 놓인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일 정도의 작품성이 돋보인다. 한복 특유의 화려한 색감의 조화나 복식문화, 신분을 고려한 몸짓의 차이가 느껴진다. 반면 모든 작품들의 얼굴이 하나의 표정으로 통일된 점이나 다소 소극적인 율동미의 동세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서울=뉴시스】한복입은 도자인형들의 다양한 율동과 치마폭의 주름이 눈길을 끈다.

【서울=뉴시스】한복입은 도자인형들의 다양한 율동과 치마폭의 주름이 눈길을 끈다.

디테일이 강해야 명작이다. 마치 같은 시대에 양반탈과 각시탈, 하회탈 등 얼굴 표정 하나만으로도 신분의 특징을 포착한 것처럼, 도자기 인형작품 역시 인물의 특징에 따라 좀 더 구체적이고 차별화된 표정이나 동세를 가미한다면 더욱 매력적인 작품으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고온을 조절해서 곱고 부드러운 색감의 한복 도자기 인형의 탄생이 놀랍다. 옛날 전통적인 미학의 재현에만 머무르지 말고, 한국인의 폭넓은 감성과 표정을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담아낸 도자기의 작품세계로 확장된다면 'K-아트', 'K-doll', 한류문화의 새로운 성장동력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어린시절 '야드로 인형'에 매료됐던 작가는 이제 '야드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조선시대의 복식을 겸비한 유일한 도자기 인형작가로 날개를 단 작가는 "세계 최고의 도자기 인형 작품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면서 2016년 새해 희망찬 욕심을 내고 있다. "우리 도자인형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어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복식을 세계에 소개하는 역할도 하고 싶어요. 끊임없이 노력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전시는 23일까지. 02 734-133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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