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종 문화소통]‘ㅎ’ 소리를 길게 끌면 ‘ㆅ’으로 되는 까닭
박대종의 ‘문화소통’
[서울=뉴시스] <사진1> 목소리의 발원지인 성대(목청)에서 ‘ㆆ’까지의 길이는 ‘ㅇ’보다 짧아 관악기의 규율처럼 ‘ㆆ’은 ‘ㅇ’ 보다 더 빠른 목소리다. ‘ㅎ(虛)’는 혀 수축이 아닌 송기(送氣)의 강함으로 인해 ‘ㆆ’ 보다 빠른 목소리다.
<사진①>에서 보듯, ‘ㅇ’과 ‘ㆆ’의 차이는 발성 위치의 다름에 있다. 입의 표면, 곧 상하 입술을 잇는 선을 기점으로 앞니 부근 입안 앞쪽에서 발성되는 전설(前舌) 상태의 목소리가 ‘ㅇ’이다. ‘ㆆ’은 ‘ㅇ’ 보다는 입의 표면에서 더 거리가 먼 입안 뒤쪽에서 발성되는 후설성(後舌性: 후설+중설) 상태의 목소리다.
한편, 위와는 다른 기점으로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사람의 목구멍은 일종의 피리 또는 관악기와 같다. 목구멍소리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목청=성대’에서 ‘ㅇ’까지의 길이는 ‘ㆆ’까지의 길이보다 더 길다. 2019년 7월16일자 <훈민정음의 ㅥㆀ은 ㄲㄸㅃㅉㅆㆅ처럼 긴소리>에서 설명한 것처럼, 긴 관은 낮고 느린 소리를 내고 짧은 관은 높고 빠른 소리를 내는 것은 관악기의 규율이다.
그런 관계로 ‘ㅇ’은 ‘ㆆ’ 보다 더 느리고, ‘ㆆ’은 ‘ㅇ’ 보다 더 빠른 목소리다. 이와 관련해 훈민정음해례 종성해 편 17~18장에선 “소리에는 느리고 빠름의 다름이 있다. 불청불탁의 글자들(ㆁㄴㅁㅇㄹㅿ)은 그 소리가 빠르지 않다”라 하였다. 또한 해례편 1~2장에선 “ㅋ은 ㄱ에 비해 소리 나는 것이 조금 빠른 고로 ㄱ에 획을 더하였다. ㅇ→ㆆ, ㆆ→ㅎ는 그 소리로 인해 가획한 뜻은 모두 같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는 2020년 1월29일자 <훈민정음 가획의 원리, ‘거셈’이 아니라 ‘빠름’> 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목청에서 ‘ㅇ’까지의 피리관이 ‘ㆆ’까지의 피리관보다 긴 이유는 ‘혀’의 작용 때문이다. 영어의 ‘모음(vowels)’은 훈민정음으론 ‘ㅇ·ㆆ + 중성’이다. 전설초성 ‘ㅇ’과 긴밀한 전설중성 ‘ㅣ’에 대해 해례본에선 “ㅣ는 혀가 수축되지 않아서 (앞으로 펴져) 그 소리가 입안의 앞쪽 소리다.(ㅣ舌不縮而聲淺.)”라 하였다. 그처럼 초성 ‘ㅇ’ 또한 혀가 수축되지 않고 앞으로 펴져 혀끝이 아랫니에 닿는 상태에서 발성되는 입안 앞쪽 목소리라 그 피리관이 길고, ‘ㆆ’은 혀가 뒤로 수축돼 혀끝이 아랫니에서 떨어지는 상태의 입안 뒤쪽 목소리라 그 피리관이 짧다.
그렇다면 ‘ㅎ’는 그러한 원리로 ‘ㆆ’ 보다 혀가 더 수축되기 때문에 그 소리가 ‘ㆆ’보다 더 빠른 것일까?
아니다. ‘ㅎ’는 ‘ㆆ’ 보다 혀가 더 뒤로 수축되는 소리가 아니다. 혀의 수축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해 ‘ㅎ’는 ‘ㆆ’ 보다 더 빠르다. ‘ㅎ’는 발음할 때 약송기음인 ‘ㅇ, ㆆ’에 비해 더 강하게 공기를 내뱉는 강송기음(强送氣音)이다. 강풍이 약풍에 비해 풍속이 더 빠른 것처럼, 송기의 강함으로 인해 ‘ㅎ’는 송기가 약한 ‘ㆆ’ 보다 더 빠르다. ‘ㅋ·ㅌ·ㅍ·ㅊ’이 ‘ㄱ·ㄷ·ㅂ·ㅈ’에 비해 더 빠른 것 또한 그 안에 포함된(ㅋ=ㄱ+ㅎ) ‘ㅎ’ 때문이다.
[서울=뉴시스] <사진2>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에서 우리말 토속어 초성에 쓰인 ‘ㆅ’과 ‘ㆀ’의 예. ‘ㅎ(虛)’나 ‘ㅇ(欲)’과는 달리 소리의 이치 상, ‘ㆆ(挹)’의 쌍자음은 없다.
‘ㆆ’은 혀가 수축돼 혀끝이 아랫니에서 떨어지는 입안 뒤쪽 목소리라 그것의 쌍자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ㅎ’는 피리관이 긴 ‘ㅇ’처럼 입안 앞쪽 목소리라 길게 늘여져 긴소리 전탁 ‘ㆅ’이 될 수 있다.
해례편 21장 앞면의 ‘ㆅㅕ’와 ‘ㆀㅕ’, 훈민정음 언해본 3장 뒷면의 ‘ㆀㅕ’는 우리말 토속어 중 긴소리의 예이다. ‘ㅎ’ 초성이 쓰인 ‘음(音)’들의 혀 수축 여부는 중성을 따른다. ‘ㅇ’은 종성에선 미약하여 혀 수축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으며, 종성 ‘ㅭ’의 ‘ㆆ’은 빠른 입성임을 나타내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쓰였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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