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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석·박성수 부부 화가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미술여행-3]

등록 2023.06.05 08:44:22수정 2023.06.05 0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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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에서 이르쿠츠크 그리고 도로시의 꿈

바이칼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길에 만난 설산의 만년설 *재판매 및 DB 금지

바이칼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길에 만난 설산의 만년설 *재판매 및 DB 금지




[유라시아=뉴시스] 윤종석·박성수 부부화가 =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야 바이칼(Lake Baikal) 호수에 도착했다. 바이칼은 호수가 아닌 바다 같은 위엄을 갖고 있었다.  바이칼 호수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넓지만, 지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담수호이다. 최대 깊이는 무려 1,621m에 이르고, 전 세계 민물(담수)의 1/5이 담겨 있다. 주변엔 해발 2,000m급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정말 장관이었다. 호수에는 아직 얼음이 다 녹지 않은 채 있었고 뭔가 묘한 에너지를 전해주었다.

바이칼 호수에서 슈퍼스타게스트 유라시아 횡단팀 몇 명과 조우 했다. 앞서 출발한 팀이었지만, 우리를 기다려 주며 따뜻한 식사까지 준비하고 있었으니, 이보다 더 고맙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동안의 여정과 앞으로의 여행계획에 대한 정보도 주고받았다. 깊어지는 이야기만큼 바이칼의 밤도 무르익어 갔다. 서로의 차량을 가로질러 두고, 바이크 여행자의 텐트를 바람으로부터 막아주며 바이칼에서의 아름다운 밤을 맞이했다.

여행은 그 장소에 대한 기대감이 전하는 감동뿐만 아니라,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받는 위안도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 낯선 땅 러시아에서 바이칼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니, 이것은 여행이 주는 기적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는 다시 헤어져, 각자의 여행길에 접어들었다. 5월 24일 윤 작가와 나는 이르쿠츠크로 향했다.
바이칼 호수에서 만난 또 다른 유라시아 횡당팀 *재판매 및 DB 금지

바이칼 호수에서 만난 또 다른 유라시아 횡당팀 *재판매 및 DB 금지




바이칼 호수는 아직 얼음이 녹지 않았다. *재판매 및 DB 금지

바이칼 호수는 아직 얼음이 녹지 않았다. *재판매 및 DB 금지



바이칼 호수를 따라 길게 늘어선 도로를 달린다. 얼음이 채 녹지 않은 끝 모를 깊이의 짙푸른 청색 호수를 옆에 두고, 바로 맞은편엔 하얀 설산을 마주하고 달리는 길은 황홀경 그 자체였다. 우리가 그 감동에 미처 헤어 나오지 못해서일까. 갑자기 강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곧장 눈으로 바뀌었다. 눈보라는 거세졌고 풍요롭게만 보이던 바이칼은 곧 위엄을 들어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넓고 깊은 미지의 세계가 바이칼에 잠들었었음을 인정하게 했다.

바이칼을 벗어나 이르쿠츠크(Irkutsk)시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벌써 4시 33분이 넘어가고 있었고, 이르쿠츠크미술관으로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까지 우리가 갔던 도시들의 미술관들에서는 러시아의 예술과 문화에 대해 깊게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도시가 바뀔수록 더 많은 궁금증을 느꼈다. 그 호기심은 도시에서 도시로, 미술관에서 미술관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 같다.

이르쿠츠크미술관은 다행히 다른 도시들에 비해 더 많은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르쿠츠크 시장이자 미술품 수집가이던 블라디미르 수카초프(Vladimir Platonovich Sukachev, 1849~1920)의 개인 소장품을 기반으로 1870년 설립되었다. 2만 3,000여 점의 소장품을 자랑하며,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회화의 거장 일리야 레핀의 작품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도시가 커질수록 조금씩 예술가로서의 우리 갈증을 해소해 주는 듯했다.

지적 굶주림을 조금 해결했으니, 이제 진짜 육체적 굶주림을 해결할 차례이다. 간만에 한국 음식 생각이 간절해 검색해보니, 놀랍게 여러 곳이 나왔다. 그중 ‘김치’라는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러시아 사람들이 많았고 당연히 동양인은 우리 둘뿐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참 여행도 많이 즐기는 민족이고 해외에 나올 때 우연히 마주쳐 반갑기도 하건만,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의 여파인지 어디를 가나 우리뿐이다. 여하튼 우리는 예약을 할 수 없었고, ‘김치’ 그 곳은 예약해야만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아~ 못 먹겠구나, 싶은 순간 반가운 영어가 들린다. 이렇게 영어가 반갑다니.  다행히 우리를 위해 테이블 하나가 만들어졌고, 우리는 그곳에서 고추장 돼지불고기와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었다. 든든히 먹으니 금방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일단 우리는 차박할 조용한 장소를 찾았다. 차박지를 선택할 때 몇 가지 고려하는 점은 우선 오가는 차량이 많지 않아 시끄럽지 않고, 너무 외지지 않으며, CCTV가 있는 건물 앞 등이다. 큰 마트나 24시 페스트푸드점, 주유소나 병원 혹은 은행 앞이 제격이다.
바이칼 호수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담수호이다. *재판매 및 DB 금지

바이칼 호수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담수호이다. *재판매 및 DB 금지



차량 여행은 늘 적정한 차박지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우리는 이르쿠츠크 어느 체육관 앞에 차를 세웠다. 차의 안막 커튼을 사방에 다 치고 짐을 정리한 후 누울 곳을 만든다. 차 안에 마련된 작은 세면대에서 윤 작가와 번갈아 가며 양치질을 한다. 물을 아껴 써야 하니 고양이 세수로 만족하고, 전기장판에 온도를 올리고 침낭을 덮고 나란히 누우면, 우리의 작고 편안한 비밀스러운 공간이 되는 것이다. 여행에 있어 모든 상황이 풍족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보다, 우리가 세운 작은 계획에서 우연히 얻는 큰 감동은 이런 부족함을 즐겁게 한다.

이르쿠츠크는 러시아에서 날씨가 춥기로 알려져 있다. 역시 우리도 그 쌀쌀함과 묘한 날씨를 경험했다. 밤새 강풍으로 차가 흔들렸고 강풍에 차가 심하게 흔들려 잠을 깼을 때 나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처럼 ‘지금 차 문을 열고 나가면 대한민국의 나의 집에 와있을까’라는 상상을 했다. 집, 나의 집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 나는 여기 이르쿠츠크에 와있고 치타를 기점으로 차 정비를 한 후, 다시 크라스노야르스크를 향해 출발할 것이다. 집으로 가는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바이칼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길에 만난 눈보라 *재판매 및 DB 금지

바이칼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길에 만난 눈보라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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