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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뉴시스 초대석]'님아, 그 강을…' 진모영 감독 "죽음은 사랑을 이어가는 징검다리"

등록 2014.12.18 09:15:06수정 2016.12.28 13:4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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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이 16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4.12.16.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시인 박노해는 그의 에세이집 '다른 길'에서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라고 썼다.

 여기 76년을 함께 산 노부부가 있다. 외롭게 자란 스물셋 청년은 처가에 들어가 죽도록 일만 했다. 열네 살 어린 소녀는 이 청년이 자신의 남편인 줄도 모르고, 그저 일꾼으로 알고 '아재, 아재' 부르며 쫓아다녔다. 그렇게 덤덤하게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곧 사랑이 됐고 그 사랑은 평생 이어졌다. 부부는 서로에게 첫사랑이자 두 번째 사랑이고, 세 번째, 네 번째 사랑이자 끝사랑이 됐다.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 할아버지는 여전히 밤 뒷간 가는 걸 무서워하는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데려다 준다. 일을 보는 동안 노래를 불러달라는 할머니의 부탁을 할아버지는 묵묵히 들어준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할아버지의 머리를 단정하게 빗겨준다. 깨끗한 옷을 지어 커플룩으로 입는다. 봄에는 꽃을 꺾어 서로의 귀에 꽂아 준다. 여름에는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친다. 가을에는 낙엽을 서로에게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에는 눈싸움하며 서로 이겼다고 만세를 부른다.

 이들의 일상은 사소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작은 일을 한다. 76년을 밀어간다. 그래서 위대한 삶의 길이고 위대한 사랑이다.

 이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감독 진모영)가 16일, 135만 관객을 넘어섰다. 독립영화 사상 가장 빠른 흥행속도다. 이런 추세라면 '워낭소리'가 세운 독립영화 최다관객동원 기록(최종관객수 296만명)도 깨질 것으로 보인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최근 일일관객수는 10만명이 넘는다. 최종관객수가 1만명만 넘어도 성공으로 평가받는 독립영화 시장에서 이 다큐멘터리의 성공은 놀랍다.

 노인 두 명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특별한 사건 하나 일어나지 않는 잔잔한 영화에 대한 대중의 뜨거운 반응은 결국 이 부부의 판타지 같지만 실재하는 사랑에 대한 온전한 지지다. 실재하기에 누군가의 판타지가 아닌 나의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어떤 기원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연출한 진모영(44) 감독을 만났다. 촬영 기간 1년3개월, 촬영시간 400시간. 무엇이 변했느냐고 대뜸 물었다. 그러자 진 감독은 잠시 생각하더니 "시간이 쌓이는 게 중요하겠죠.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요. 오래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관객이 사랑의 지속성에 회의적인 허진호 감독의 멜로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실제로 사랑이 그렇다는 것. 그래서 '봄날은 간다'의 상우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한숨 쉬듯 묻고, '행복'의 영수는 "넌 밥 천천히 먹는 게 지겹지 않니? 난 지겨운데"라고 짜증 내듯 물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진모영 감독은 말한다. '여기 이 사랑을 보라. 이 영원한 사랑을 보라. 우리가 찾던 사랑이 여기 있다.' 모두가 찾던 변하지 않고, 지겹지 않은 사랑을 발견한 창작자가 그것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촬영이 시작됐다.

 "두 분이 '인간극장'에 나오셨었죠. 그 5부작을 정말 재밌게 봤어요. 그런데 그렇게 끝내기 아까웠습니다. 보통 TV는 집중해서 잘 안 보잖아요. 다른 일 하면서 보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이분들의 삶에는 정말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는데 그걸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면 어두운 곳에서 90분 동안 깊이 있게 생각할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봤던 거죠."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이 16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4.12.16.  photocdj@newsis.com

 진 감독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관객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부부의 사랑'이다. 인간의 수명을 80세로 놓고, 결혼을 30세에 한다고 치면 부부가 함께 사는 세월이 자그마치 50년이다. 생을 함께 했다고 해도 좋은 시간이다.

 부부는 함께 하는 긴 시간만큼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그런데 만약 부부로 사는 그 시간이 불행하다면 어떨까. 그것은 어쩌면 최악의 삶은 아닐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나 부부가 가지는 상징성은 대단한 거죠. 가족의 시작이니까요. 그러니까 부부가 사랑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혹은 어때야 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기잖아요. 이 노부부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체화해서 보여주잖아요. 그렇다면 거기에는 메시지가 담기는 거죠."

 노부부는 항상 손을 잡고 다닌다. 어느 한쪽이 걷다 지치면 괜찮으냐고 묻는다. 서로의 신발을 신기 좋게 돌려 놔준다. 사소한 부탁도 진심으로 들어주고 고맙다고 말한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잠이 들고 함께 앉아 밥을 먹는다. 이들의 사랑은 거창하지 않다. 조병만·강계열 부부가 보여주는 것은 그저 작은 배려다. 작은 것을 쉽게 여기지 않고, 쉬지 않고 쌓아가는 방식의 사랑이다. 진모영 감독은 이것을 '습관'이라고 말한다.

 "이벤트 같은 걸 하잖아요. 장미꽃 백 송이를 준비하고 촛불을 켜 길을 만들고 그런 것들이요. 물론 그것도 사랑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이벤트잖아요. 이 부부의 방식은 매일 꽃 한 송이를 서로에게 건네는 겁니다. 그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행동이 습관이 된 거죠. 습관이 뭡니까. 계속 반복해서 몸에 밴 행동이잖아요.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이들의 사랑에 관객의 마음이 움직이는 겁니다."

 할아버지의 나이는 98세다. 영화의 진행과 함께 그의 건강은 악화한다. 할머니는 점점 쇠약해져 가는 할아버지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남편은 마침내 저세상으로 간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첫 시퀀스는 할아버지 무덤 앞에서 눈물 흘리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진모영 감독은 할아버지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다. 부부는 오랜 시간 계속 찾아온 진 감독을 막내아들처럼 대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진 감독에게도 충격이었다. 그 죽음이 생활인 진모영에게는 충격일 수 있지만, 창작자 진모영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다. 죽음보다 극적인 사건은 없다. 게다가 부부는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그렇게 볼 수 있겠죠. 결과론적으로 이 작품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볼 수도 있죠. 할아버지의 죽음이 이 프로젝트 자체를 없어지게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전 오히려 할아버지가 건강하시기를 바랐어요."

 다큐멘터리도 극이다. 인간의 죽음, 얼마든지 자극적인 연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진모영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장면은 딱 두 장면이다. 수의를 입은 할아버지의 발을 비추는 신과 저세상으로 간 할아버지의 얼굴. 카메라는 최대한 정적으로 이 모습을 짧게 담는다.

 "얼마든지 자극적인 연출을 할 수 있었지만 '감성팔이'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어요"라는 게 진 감독의 말이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이 16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4.12.16.  photocdj@newsis.com

 "죽음을 판다는 이야기는 정말 듣기 싫었어요. 눈물 질질 짜게 하고 그건 아니라고 했죠.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였지, 관객을 슬프게 하려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님아'가 말하려는 건 부부의 소소한 사랑이지, 죽음의 슬픔이 아니잖아요. 굳이 그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저희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고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죽음 자체를 다루기보다 죽음을 준비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담는 데 더 공을 들인다. 이 부부는 열두명의 자식을 낳았다. 여섯은 죽었다. 가난하고 못 먹던 시절이었다. 어느날 할머니는 읍내 시장에 나간다. 숨이 차 걷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할아버지는 기어코 할머니를 따라 나간다. 부부는 여자아이 내복 5장과 남자아이 내복 1장을 사 집에 돌아온다.

 할머니는 죽은 자식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살았을 적에 내복을 못 입힌 게 평생 마음에 걸린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에게 부탁한다. "저 세상 가서 우리 애들 만나면 꼭 내복 입혀주시라."

 "제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부의 모습이 바로 죽음을 준비하는 할머니의 모습이었어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하셨겠죠. 할아버지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할머니도 변하셨어요. 남편의 죽음이 슬픈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슬픔을 뛰어넘은 행동이었어요. 내복 장면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고 봐요. 두 사람의 사랑이 다른 세계로 확장되는 것이죠."

 할머니는 어느 날 밤 할아버지의 새 옷을 아궁이에 가져가 태운다. 새 옷을 태워야 저 세상에서 그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전반부가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대요'의 뒷이야기라면, 영화 후반부는 이 동화가 어떻게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확장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영원한 사랑이 되는 거죠. 할머니가 새로운 세계를 열어놓은 거라고 봐요. 죽음이 이별이 아니라는 거죠. 죽음은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그곳에서 사랑을 이어가는 징검다리인 거죠. 멋진 사랑입니다. 그런 세계가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할머니는 그저 당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을 하는 겁니다."

 진모영 감독은 이 영화를 사, 오십 대 부부들이 보기를 바랐다. 나이 든 부모가 있고 그들도 남편, 아내와 함께 나이가 먹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러온 관객 중에는 이십 대 초반의 젊은 커플들이 많다는 점이다.

 진 감독에게 물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누가 봐야 하는가. 구체적으로 답해달라고 했다.

 "커플이 보면 좋겠죠.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어떤 세대가 보느냐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다는 거예요. 함께 간 커플이 이 영화를 보고 나올 때 손을 잡고 있으면 된 게 아닐까요."

 □ 진모영 감독 약력 ▲1970년 12월 ▲전남대 법학과 ▲1997년 방송 입문 ▲'뉴스투데이' '생방송 오늘' '생방송 KBS 저널' 'KBS 월드리포트' 제작 ▲2005년 KBS 특집다큐 '56%의 눈물, 비정규직 노동자' 제작 ▲2007년 KBS 3.1절 특집 '잊혀진 독립운동, 단파방송 수신사건' 제작 ▲2013년 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 제작 ▲2014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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