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 규격 제각각에 무의미한 내용도...유통기한만이라도"

96번째 점자의 날…점자 미비 현실은 여전

"점 간격·높낮이가 틀리면 점자 읽을 수 없어"

유통기한 점자 표기 없어 식중독 우려도

"시각장애인에 대한 무관심 해소됐으면"

[서울=뉴시스] 김래현 기자 = 지난 2일 뉴시스 취재진과 함께 영등포아트홀을 방문해 계단 손잡이에 부착된 점자를 만져보고 있는 홍서준씨 2022.11.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래현 기자 = "시각장애인도 내려가는 계단인지 올라가는 계단인지는 만져보면 알아요. 그러니 점자에 '내려감' 같은 내용을 적을 필요가 없어요. 대신 내려가면 몇 층인지, 어떤 시설이 있는지를 점자로 알려주면 시각장애인에게 훨씬 도움이 되겠죠."

4일 96번째 점자의 날이 돌아왔다. 점자의 날은 한글 점자가 만들어진 1926년 11월4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뉴시스는 점자의 날을 맞이해 지난 2일 시각장애인의 일상 속을 들여다봤다. 이들은 점자 미비로 인해 길을 찾는 것부터 음식 유통기한을 파악하는 일까지 생활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부착된 점자는 내용도 규격도 맞지 않았고 이마저도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뉴시스] 김래현 기자 = 지난 2일 뉴시스 취재진과 함께 영등포아트홀을 방문해 승강기 버튼에 새겨진 점자를 만져보고 있는 홍서준씨 2022.11.04. [email protected]

시각장애인이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연구원으로 일하는 홍서준(42)씨는 지난 2일 찾은 영등포아트홀 계단 손잡이에서 걸음을 멈췄다.

취재진이 함께 방문한 영등포아트홀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 촉지도가 있다. 하지만 이곳에도 계단에는 이곳을 내려가면 몇 층인지, 어떤 시설이 있는지는 적혀있지 않다고 홍씨는 말했다.

점자를 읽은 홍씨는 "'내려감'이라고만 쓰여 있다. 하지만 이건 아래로 뻗은 손잡이만 만져봐도 누구나 알 수 있다"며 "시각장애인도 계단을 이용하는데, 내려가면 몇 층인지, 어떤 시설이 있는지를 알려줘야 한다"고 아쉬워 했다.

이어 "점자 내용뿐만 아니라 점자 규격에도 부족함이 많다. 점 간격이나 높낮이가 규정과 다르게 돼 있으면 점자를 읽을 수 없다"며 "형식적으로 점자를 부착하다보니 이같은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김래현 기자 = 지난 2일 뉴시스 취재진이 방문한 영등포아트홀 앞에 마련된 칠이 벗겨진 안내 촉지도 2022.11.04. [email protected]

점자 유무는 시각장애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유통기한이 점자로 표기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우유는 40개 제품 중 1개에만 점자 표기가 있었다. 그마저도 유통기한을 점자로 제공하고 있진 않았다. 시각장애인이 변질된 식품을 섭취할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높다는 의미다.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하는 최상민(43)씨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먹고 식중독에 걸릴까봐 두렵다"고 하소연 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점자 문제를 꾸준하게 지적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왔지만, 현실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홍씨는 "점자 버튼을 제작할 때 바뀐 지침을 몰라 과거처럼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홍보가 상당히 중요하더라"며 "규격이 잘못되거나 의미 없는 내용이 담긴 점자가 아닌 점자 표준 지침에 맞는 점자가 상용화되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대학교 2학년 우하늘씨는 "점자 도서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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