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1년]③본격 손질 나선 정부…"처벌보다 예방" 대안될까
'실효성' 논란…고용부, 법 시행 1년만에 제도개선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처벌→자기규율 예방체계
법령 개선 TF 발족…올해 상반기 내 개선방안 마련
노동계 "정부, 중대재해법 무력화"…개정 진통 예고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11월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2022.11.30. [email protected]
처벌 위주에서 기업의 '자기규율' 방식으로 예방 체계를 전환하고 모호한 처벌요건 등을 명확히 하는 것이 골자로,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처벌→자기규율' 로드맵 발표…처벌요건 명확화 등 TF 발족
지난해 1월27일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 시행 당시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기업의 경각심이 높아져 산재 사망 사고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해 사고 사망자는 644명으로, 전년보다 39명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50억원 이상) 사업장의 사망자는 오히려 8명 증가했다.
특히 기업들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투자를 늘리기보다 대형 로펌 자문 등을 통한 처벌 회피에 집중하고, '보여주기식' 서류 작업에 몰두하면서 법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는 게 고용부의 진단이다.
이에 고용부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서 '자기규율' 방식으로 산재 예방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처벌과 감독을 통한 타율적 규제만으로는 중대재해 예방에 한계가 있는 만큼 노사가 함께 책임에 기반한 자기 규율로 예방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유명무실한 '위험성 평가'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중대재해법의 불확실성 해소에도 나서기로 했다.
현재는 의무 주체와 처벌 요건의 모호성으로 인해 기업은 물론 수사 당국도 인과관계 입증 등 수사 과정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데, 이를 보다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고용부는 이달 초 전문가들로 구성된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를 발족했다. 처벌대상 및 수준 등 제재방식 개선, 처벌요건 명확화 등 논의를 거쳐 올해 상반기까지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권기섭 고용부 차관은 "입법 취지와 달리 법리적, 집행과정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법 취지가 현장에서 왜곡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중대재해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데 힘을 싣는 모습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중대재해법이) 너무 사후 처벌 위주로 돼 있어서 예방 효과가 나지 않고 있다"며 "법 체계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시스]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 발족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제공) 2023.01.1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노동계 "정부, '개악' 공언" 반발…자기규율 방식도 의문제기
김광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본부장은 "고용부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중대재해법 불확실성 해소를 빌미로 안전보건 확보의무 축소, 처벌 완화 등의 '개악'을 공언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법 시행 이후 정권이 바뀌자 '중대재해법의 현장 안착을 위해 노·사·정이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경영계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중대재해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손질을 예고해왔다. 선거 기간에는 경영계가 모호한 조항과 과도한 처벌에 강한 우려를 표하자 법 개선에 대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노동계는 무엇보다 아직 재판 결과에 따른 처벌 등 법이 집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경영계와 함께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을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라는 입장이다.
최명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처벌법의 성격인 중대재해법은 재판 결과가 누적된 이후에 판단해야 한다"면서 "벌써부터 실효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1차원적인 분석"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금은 실효성을 따지기보다 엄정한 법 집행을 위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처벌보다 예방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이것이야말로 실질적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영 책임자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법 시행에도 오히려 산재 사망 사고가 증가했는데, 자기규율 방식에서 과연 중대재해가 효과적으로 줄어들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경영계의 예방 노력을 눈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로드맵 발표 당시 브리핑에서 "자기 규율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며 "중대재해 발생 시에는 예방 노력의 적정성을 엄정히 따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노사 모두의 노력을 주문한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영계는 운용 가능한 자율 안전관리체계 모델을 만들어 적극적인 실행 태도를 보여야 한다"며 "노동계는 기대한 수준의 엄벌이 어렵다는 인정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 개선 측면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일반 중대재해를 처벌하고, 중대재해법은 그 중 상습·반복, 다수 사망사고를 가중처벌 하는 등 산업안전법령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법 개정 작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TF가 전문가 중심으로만 꾸려져 노동계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현재의 여소야대 국면에선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는 지금 법을 완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옳지 않다"면서 "중대재해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즉시 중단하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