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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교과서 고조선·훈민정음, 수정보완하라”

등록 2016.11.30 11:28:18수정 2016.12.28 18: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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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국정교과서 고등학교 한국사 24쪽 ‘고조선’ 부분

【서울=뉴시스】국정교과서 고등학교 한국사 24쪽 ‘고조선’ 부분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국정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상고사와 훈민정음을 홀대하고 왜곡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단군조선의 시작점인 단기(檀紀) 원년 BC2333년 주석 부분에 최초 근거가 되는 고려 때 ‘제왕운기’가 빠져 있고, 단군조선을 이은 천 년 왕국 기자조선은 완전 삭제해 버렸다. 나아가 기자조선의 고유한 법령인 8조법금을 단군조선의 법령인 것처럼 둔갑시켰다. 아울러 우리 문화의 정수인 훈민정음 언해본은 제목에 ‘世宗御製’(세종어제) 또는 ‘御製’가 빠진 2007년 문화재청본을 삽화로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 소장은 “고등학교 한국사 24쪽에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고조선 건국 이야기에 의하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기술돼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 권1 고조선 조항의 원문(開國號朝鮮)을 보면,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의 이름은 그냥 조선이지 고조선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삼국유사 ‘고조선’ 조항 말미에는 주나라 무왕이 ‘箕子’(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는 사실도 특기했다. ‘(단군왕검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의 虎王(=武王: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로 돌아와 숨어 산신이 되었다 … 당나라의 ’배구전(裵矩傳)’에 이르기를, 주나라가 기자를 봉해 조선이라고 하였다(周以封箕子爲朝鮮)’

 박 소장은 “삼국유사에서의 ‘고조선’이란 명칭은 그 다음 조항 ‘위만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단군조선+기자조선’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설명 없이 기자조선은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하면, 학생들은 그 고조선을 단군조선만으로 인식해 잘못된 역사 관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를 오도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러한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삼국유사보다 후대(1485)의 ‘동국통감’은 외기 부분에 ‘고조선’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이라고 표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국정교과서 중학교 역사① 37쪽 ‘고조선’과 ‘8조법’ 부분

【서울=뉴시스】국정교과서 중학교 역사① 37쪽 ‘고조선’과 ‘8조법’ 부분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을 주도한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고조선’이란 용어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남북 학자들이 함께 쓴 단군과 고조선 연구’(2005)에서 “고조선이란 이름 속에는 단군조선 천오백 년과 함께 기자조선 천 년이라는 시간과 각기 다른 시기가 아울러 함축되어 있다 … 고조선이란 이름은 분명한 개념 정리가 없을 때는 애매모호한 지칭이 되므로 명확한 이름을 쓰는 것이 옳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소장은 “그럼에도 이번 국정교과서에서 기자조선이 삭제되고 그 결과 고조선이 단군조선 만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변화돼 우리의 상고사가 혼동·왜곡되는 것을 방기했다”고 비판했다.

 단기 원년인 BC2333년에 대해, 같은 교과서에서는 주석 부분에 “‘동국통감의 기록에 근거하여 기원전 2333년이 단기 원년으로 정해졌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동국통감을 보면, 서거정 등의 편찬자들 또한 다른 옛날 문헌(古紀: 고기)을 언급하고 있다. 

 “신들이 살펴보건대, 고기에 이르기를, ‘단군이 요(堯)와 더불어 무진년에 함께 즉위하여, 우(虞)왕조와 하(夏)왕조를 지나 상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에 이르러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이 되었는데, 1048년의 수명을 누렸다’고 하였습니다(臣等按, 古紀云, 檀君與堯並立於戊辰, 歷虞夏至商武丁八年乙未, 入阿斯達山爲神, 享壽千四十八年)”

 ‘동국통감’(1485)보다 더 옛날 문헌인 이 고기는 고려 때 이승휴가 지은 역사책 ‘제왕운기’(1287)다.

 “처음 누가 나라를 열고 풍운을 열었느냐, 제석의 손자이니 그 이름은 단군이라. (조선 땅에서 왕이 되었다. 1038년을 다스리고 아사달 산에 들어가 신이 되었다) 요 임금과 함께 무진년에 흥하여 우와 하 왕조를 거쳐, 은나라 무정 8년 을미년에 아사달 산에 들어가 신이 되었다. 1028년간 나라를 향유하셨다(初誰開國啓風雲, 釋帝之孫名檀君(據朝鮮之域爲王 … 理一千三十八年, 入阿斯達山爲神) 與帝高興戊辰, 經虞歷夏居中宸於殷虎丁八乙未, 入阿斯達山爲神, 亨國一千二十八)”

【서울=뉴시스】국정교과서 중학교 역사① 161쪽 ‘훈민정음’ 부분. ‘御製’(어제)가 빠져 왜곡된 위작 언해본이 삽입돼 있다.

【서울=뉴시스】국정교과서 중학교 역사① 161쪽 ‘훈민정음’ 부분. ‘御製’(어제)가 빠져 왜곡된 위작 언해본이 삽입돼 있다.

 다만 ‘제왕운기’는 단군(조선)이 “1038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했다가 또 밑에서는 “1028년간 나라를 향유했다”고 해 같은 책 안에서 숫자가 서로 맞지 않는 단점을 드러내고 있다. 후대의 ‘동국통감’ 편찬자들이 요임금 당시의 무진년(BC2333)에서 은나라 무정 임금 8년 을미년까지를 다시 계산한 이유다. 1038년간이 맞다면 무정 왕 8년은 BC1296년이 된다. 그러나 BC1296년은 을미가 아닌 을유년으로 간지가 맞지 않았다. 1028년간이 맞다면 무정 왕 8년은 BC1306년이 되는데, 이 또한 을미가 아닌 을해년으로 간지가 들어맞지 않았다.

 박 소장은 “편찬자들은 무정 8년 을미년이 BC1286년임을 확인하고 단군조선의 역년을 총 1048년으로 계산, ‘제왕운기’ 내의 오자 1038과 1028년을 바로잡아 ‘동국통감’에 ‘1048년의 수명을 누렸다’고 기록했던 것이다. 따라서 금번 역사교과서에서 단기 원년인 BC2333에 대한 근거를 주석에 명시할 때는, 시기적으로 ‘동국통감’보다 더 오랜 1차적 문헌인 ‘제왕운기’를 명시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단군조선이 BC2333~BC1286이고, 위만조선이 BC194~BC108년이라면, ‘제왕운기’에서 단군이 아사달산에 들어간 때(BC1286)로부터 164년 후에 은나라의 현자(=기자)가 왔다고 했으니, BC1122~BC194년 1000여 년의 기간은 공백이 아니라, 바로 기자조선의 역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국정교과서 고등학교 한국사 24쪽의 오른쪽 단 ‘고조선의 발전과 변천’ 부분에 나오는 ‘고조선’이란 용어는 모두 ‘기자조선’으로 수정해야 마땅하다. 물론, 37쪽도 이에 준해서 수정돼야 한다. 기원전 5~4세기께의 고조선은 단군조선이 아니라 기자조선이기 때문이다.” 

 또 “국정교과서 중학교 역사① 37쪽 주석 1의 ‘단군이 세운 나라는 조선인데, 고려 후기에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단군조선을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古)조선이라 칭하였다’라고 한 부분도 사실대로 ‘단군이 세운 나라는 조선인데, 고려 후기에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단군조선+기자조선을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古)조선이라 칭하였다’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같은 책 1-8-4항 ‘고조선은 계급이 존재하는 신분제 사회였다’는 기자조선의 8조법금을 근거로 기술한 것이니, 이 또한 혼동을 막기 위해 ‘고조선’이란 용어를 모두 구체적으로 ‘기자조선’으로 수정해야 한다.”

【서울=뉴시스】박대종 복원 훈민정음 언해본(왼쪽), 2015. 國之語音(국지어음) 부분은 2007년 문화재청 복원본과 같고, ‘나랏말싸미’부터는 서강대본과 같다. 오른쪽은 서강대 월인석보(보물 745호) 언해본, 1459.

【서울=뉴시스】박대종 복원 훈민정음 언해본(왼쪽), 2015. 國之語音(국지어음) 부분은 2007년 문화재청 복원본과 같고, ‘나랏말싸미’부터는 서강대본과 같다. 오른쪽은 서강대 월인석보(보물 745호) 언해본, 1459.

 팔조금법으로도 부르는 팔조법금은 8개 조항으로 된 법령 금지사항으로 기자조선의 고유한 법령을 가리키는 말이다. 출전인 ‘한서지리지’에서는 “은나라의 도가 쇠해지자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 … 조선 백성들의 범금팔조(犯禁八条):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하며, 남의 물건을 훔치면 남자는 그 집 노예로 여자는 종으로 삼는다. 단, 자속(自贖)하려는 자는 1인 50만 전을 내야 한다”고 했다.

 ‘삼국사기’ 권32 제사 편, ‘구당서’와 ‘신당서’의 고구려전에서는 “고구려 풍속에는 기자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7년(1398) 9월12일자 기사에는 “기자는 조선에 봉토를 받아 실제로 풍화의 기초를 닦았으니, 마땅히 제전(祭田)을 둬 사시에 제사를 지내야 될 것이다”고 했다. 이렇듯 고구려와 근세조선에서 기자에게 제를 지낸 것은 당연히 기자대왕이 단군왕검처럼 우리 민족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역사는 사실대로 기술해야 한다. 정히 중국 출신이라는 것이 기분 나빠, 우리 역사 체계에서 기자조선을 떼어내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면 기자가 제정한 8조법금도 삭제해야 도리다. 기자는 왕따시키면서 그가 만든 8조법금만은 한서지리지를 왜곡해 ‘고조선(단군조선)의 것’으로 돌려 크게 써먹는 것은 이율배반적 행위”라고 강조했다.

 중학교 역사① 47쪽의 “고구려는 부여 계통의 이주민 세력과 압록강 유역 토착 세력의 연합으로 건국되었다”처럼 기자조선은 은나라의 유민 세력과 단군조선 토착 세력의 연합으로 건국된 우리의 조상국이다. 

 국정교과서 중학 역사①의 161쪽 훈민정음 부분도 문제다. 제목에 ‘世宗御製’ 또는 ‘御製’가 빠진 언해본 사진을 실었다. 일부 국어학자들의 계산과 판단 착오에서 비롯된 2007년 문화재청 복원 언해본이다. 복원 과정의 오류와 제대로 된 복원에 대해서는 뉴시스 2015년 11월30일 ①훈민정음 간송본, 오자도 안 잡고 모르는 척, 2015년 12월1일 ②훈민정음과 어제훈민정음…세종의 원제는?, 2015년 12월22일 ③75년만에 바로잡았다, 세종대왕 ‘어제’ 훈민정음에 자세히 언급돼 있다. 

 박 소장은 “세종대왕 당시대로 ‘御製訓民正音’이라 바르게 복원된 2015 박대종 언해본이 싫으면, 보물 745호에 수록돼 있는 서강대 월인석보 언해본을 국정교과서에 삽화로 쓰면 될 것이다.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에 반론도 제대로 못하는 왜곡본을 국정 역사교과서에 게재하면, 그건 올바른 교과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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