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고용불안·편견' 삼중고 겪는 아파트 경비원들
용역업체 소속에 쉬운 해고·퇴직금 꺾기 등 편법 수두룩
'직접 고용 등 경비원 노동 인권 보장 위한 대책 마련을'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1. "머슴 노릇…자치회장 갑질에 수치심만"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했던 A(76)씨는 주민자치(입주자 대표)회장 B(67·여)씨에게 갖은 이유로 돈을 뜯겼다. "헌금과 마트 외상값을 내야 하는데 수중에 돈이 없다"는 비상식적 이유였다. "상추·막걸리·맥주·꼬막 등을 사 오라"는 부당한 심부름도 이어졌다. 심지어 "방금 샀는데 맛이 없다"며 먹다 남은 굴비를 경비실로 가져와 구매를 강요하기도 했다. A씨는 인권을 침해받으면서도 부당한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자르겠다"는 회장의 엄포 때문이었다. 재계약 기간이 다다른 명절에는 소고기와 그림을 사 전해주기도 했다. 절대적 '을'이었던 A씨는 생계를 위해 버티고 또 버텼다. 하지만, 2년6개월간 이어진 회장의 횡포에 수치심을 견딜 수 없었다. 경비를 그만두고 사과를 요구했지만, 회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경찰은 B씨를 공갈 혐의로 입건했다.
#2. "택배에 시달리고, 폭언에 편법 난무"
광주 모 아파트 경비원 C(65)씨는 지난해 동 대표의 '불친절 민원'에 일을 그만둬야 했다. 동 대표가 '택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용역회사에 인력 교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C씨는 쏟아지는 택배 물량에 치여 다른 업무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다. 청소를 그따위로 하냐"며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폭언을 듣기도 했다. 같은 해 지역 다른 아파트 경비원 8명 중 6명은 용역회사에 제기된 사소한 민원으로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해고당했다. 한 두 달만 더 일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도 '취업 규칙'을 명목으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경비원들이 갑질, 고용불안, 사회적 편견 속에서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들의 권익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 마련과 사회적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비원 상대 갑질 왜 반복되나…용역화의 그늘
6일 광주시 비정규직지원센터(이하 센터) 등에 따르면, 지역 경비원 대다수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관리사무소에 직접 고용되는 대신 용역업체에 비정규직으로 간접 고용된다.
센터가 광주 광산구 아파트 201곳을 조사한 결과 경비원을 자체 고용하는 곳은 44곳(22%)으로 집계됐다. 157곳에 근무하는 경비원들은 18개 용역업체에 소속돼 있다.
이는 불안한 고용 상황으로 이어진다. 경비원들이 용역업체와 단기 근로 형태(1년 미만)로 계약하면서, 민원 발생 시 쉽게 해고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실제 센터가 2016년 벌인 경비원(212명 상대) 실태조사에서 1년 단위 계약은 60%에 불과했다. 용역업체 변경 때에도 50.8%만 '고용이 승계된다'고 답했다.
70세 이상의 경비원들은 3개월 단위 촉탁직으로 계약하고 있고, 만 1년을 근무하면 퇴직금을 줘야 하기 때문에 1년을 채우기 직전 해고하거나 업체를 변경하는 사례도 잦다고 경비원들은 증언했다.
경비원을 자주 바꾸는 용역업체일수록 일자리 소개비를 챙기거나 퇴직금을 주지 않으면서 이윤을 남긴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비원들은 "최근 모 아파트 경비용역업체가 복장 불량 등을 이유로 경위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결국, 일부 경비원이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부당해고 당했다. 퇴직금 꺾기, 고용승계 거부의 일환"이라고 지적했다.
또 "몇몇 아파트에선 택배 업무 등을 이유로 CCTV를 경비실에 설치해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 입주민 등과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면 계약 해지 위험에 놓일 수 있어 늘 두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불안정한 고용 형태는 경비원들이 부당한 대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로 꼽힌다.
지역 경비원 90%는 센터 조사에서 입주민 등과 갈등을 겪어도 '참는다'고 답했고, 7%는 '근무지를 바꾼다'고 했다.
◇임금 인상되면 근로조건 악화
경비원들의 최저임금 인상은 입주민의 관리비 상승과 직결된다. 이에 경비원 감원과 휴게시간 연장이 이뤄진다.
센터가 지난해 4월9일부터 22일 사이 광산구 아파트 93곳에서 일하는 경비원 1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단지 10곳(4.3%)의 경비원 10명이 감축됐다.
휴게시간도 77.3%가 연장했다. 최저임금 인상율(16.4%)에 맞춰진 급여 상승은 9.7%에 불과했다. 70% 가량이 근로 조건 변경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배제돼 있었다.
경비원들은 휴게시간은 사실상 근로시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택배 물품이나 민원(인터폰·비상벨·방문등)이 들어오면 처리해야 하고, 휴게 공간 또한 따로 마련돼 있지 않은 곳이 많다고 했다. 사실상 근무지를 벗어나 쉴 수 없다는 설명이다.
휴게시간 연장과 인원 감축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편법인 셈이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덜어주는 정부의 일자리 안정자금 제도에 대해 72%가 모른다고 응답, '사용주 측이 휴게시간 연장을 통해 안정자금만 챙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경비원 갑질 금지법 개정 법률, 실효성 적어
경비원에게 업무 외 부당한 지시나 명령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포함한 '개정 공동주택관리법'이 2017년 9월22일부터 시행됐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경비원에게 갑질을 해도 처벌 규정이 없고, 부당한 지시의 범위가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A씨·C씨의 사례처럼 입주민 등이 경비원을 하대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치안 관리를 포함해 택배·주차 관리·청소·분리수거 등의 업무 또한 경비원들의 몫인 상황이다.
정찬호 센터장은 "부당한 지시를 당해도 경비원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경비 업무에 대한 범위와 성격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입주민과 경비원의 관계는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라는 그릇된 편견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인권 증진 위한 대책 마련 시급
경비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자치 관리(직접 고용) 정착 ▲근로기준법·기간제법 등 법 제도 개정 ▲휴게시간 늘리기 제재 ▲24시간 교대제 근무 변경 ▲입주민 의식 개선 ▲감정 노동 지원 ▲지자체 등 관계기관의 지원책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파트가 자치 관리를 하면, 용역업체에 주는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고 경비·청소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센터는 설명했다.
또 1년 미만의 단기 계약을 없애고 고용 승계를 보장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2년 이상 고용시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조항도 적용해야 한다.
박용주 센터 조직국장은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마지막 직장'이라고 불리는 경비직은 노동 조건이 너무 열악하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 고용불안, 인권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권익을 보장하는 정책이나 제도가 너무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어 "위탁 관리를 자치 관리로 바꾸는 것과 경비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인격 공동체적 관계 형성, 노동에 대한 존중, 시민사회의 다각적인 지원 등도 함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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