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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산불][르포]화마 휩쓴 속초·고성 잿더미만 남은 전쟁터였다

등록 2019.04.05 20: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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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뉴시스】김경목 기자 = 5일 오후 산불 피해가 큰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무너진 가옥이 폭격을 맞은 듯 하다. 2019.04.05. photo31@newsis.com

【속초=뉴시스】김경목 기자 = 5일 오후 산불 피해가 큰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무너진 가옥이 폭격을 맞은 듯 하다. 2019.04.05. photo31@newsis.com

【고성(강원)=뉴시스】김경목 기자 = 5일 오전 7시20분께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전쟁터였다.

마을 초입에 위치한 철골 재질로 지어진 주류창고는 산불의 화염에 엿가락처럼 휘어져 폭삭 주저앉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류창고 맞은편 농장의 주택과 창고 등도 숟가락 한 개, 양말 한 켤레를 건질 수 없을 정도록 전부 탔다.

마을회관 뒤 산자락에 옹기종기 자리잡은 가옥 12채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록 폭삭 내려앉았다.

그 모습은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 내려앉고 깨지고 타는 등 처참했다.

2010년 연평도가 북한군 포격에 잿더미가 됐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가옥 뒷편 야산은 화마가 쓰나미처럼 휩쓸면서 본래의 황토색 흙 빛깔을 잃어버렸다.

【속초=뉴시스】김경목 기자 = 5일 오후 산불 피해가 큰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주민이 볍씨에 붙은 불을 끄려고 물을 붓고 있다. 2019.04.05. photo31@newsis.com

【속초=뉴시스】김경목 기자 = 5일 오후 산불 피해가 큰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주민이 볍씨에 붙은 불을 끄려고 물을 붓고 있다. 2019.04.05. photo31@newsis.com

소나무들은 숯이 됐다.

홀로 지내시던 어머니 집을 찾은 60대 아들은 볍씨에 붙은 불을 끄느라 쉴 새 없이 양동이에 물을 담아 부었다.

아들은 운이 좋게도 축사 출입문만 그을리고 불이 번지지 않아 암소 1마리와 송아지 1마리를 잃지 않았다.

아들은 소 2마리와 볍씨라도 건졌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70대 할머니는 "자다가 몸만 빠져나왔어. 당장 오늘 약도 먹어야 하는데 빨리 피하라고 해서 혈압약을 못 챙기고 나왔다"며 "조카 사위가 처방전을 받아서 약을 갖고 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사람이 안 다쳤으면 됐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속초=뉴시스】김경목 기자 = 5일 오후 산불 피해가 큰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한 농장이 밤새 할퀴고 간 화마에 온통 잿더미다. 2019.04.05. photo31@newsis.com

【속초=뉴시스】김경목 기자 = 5일 오후 산불 피해가 큰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한 농장이 밤새 할퀴고 간 화마에 온통 잿더미다. 2019.04.05. photo31@newsis.com

이 할머니 집은 화마로 무너졌다.

농장이 잿더미가 된 농장주 김택수(70)씨도 "불이 났다고 빨리 나오라고 해서 약도 못 챙기고 그냥 나왔다"며 "칫솔조차도 없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김씨는 "정부가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보상을 빨리 해줘야 먹고 살 것이 아닌가"라며 정부 지원이 조속히 이뤄지길 기대했다.

장천마을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동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영랑호 일대도 밤새 폭격을 맞은 듯 온통 잿더미였다.

신세계 영랑호리조트 퍼블릭골프장은 9홀 전부의 잔디가 새까맣게 탔고 리조트 내 식당 등 건축물 2동은 불똥이 날라와 불이 붙어 내부 시설이 전부 소실됐다.

콘도 7동과 창고 3동도 모두 탔다.

【속초=뉴시스】김경목 기자 = 5일 오후 산불 피해가 큰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한 주류창고가 폭격이라도 맞은 듯 온통 잿더미다. 2019.04.05.  photo31@newsis.com

【속초=뉴시스】김경목 기자 = 5일 오후 산불 피해가 큰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한 주류창고가 폭격이라도 맞은 듯 온통 잿더미다. 2019.04.05. photo31@newsis.com

속초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쪽 고성으로 올라가면서 드러나는 광경도 같았다.

고성·속초 대형산불은 전날 오후 7시17분께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성콘도 인근 도로 전신주 변압기 개폐기에서 발생한 스파크가 풀숲에 옮겨붙으면서 태풍급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번졌다.

발화 지점에서 영랑호리조트까지는 불과 9.1㎞.

순간최대풍속 초속 30m급의 매우 강한 바람의 힘이 불똥을 하늘로 올려 바람 방향으로 날라가다 떨어지면서 불을 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마치 게릴라전을 방불케했다.

속초와 고성은 밤새 불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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