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조사관 80% 정서적 탈진…"근무시간 100시간 넘게 일해"
새벽 5시 퇴근, 2시간 뒤 출근 "역학조사 꿈꿔"
"정치인, 행정가가 역학조사 결정에 개입키도"
항의·폭언 빈번, 처우는 미흡 "업무환경 개선必"
[서울 뉴시스] 박민석 기자 = 지난 9월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역학조사를 받고 있다.. 2020.09.18. [email protected]
한 달 근무시간이 100시간이 넘거나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도 다반사였으며 조사대상 중 80%는 정서적 탈진 증세를 보였다.
유명순 서울대 교수 연구팀은 26일 경기도의 역학조사관 20명을 대상으로한 초점집단면접 주요 결과를 발표했다.
면접 조사 내용은 역학조사관의 업무 실태와 영향, K방역이 극복할 도전과제를 이해하고 사회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실시됐다.
조사대상 역학조사관의 평균 근무 기간은 6.8개월이며 최장 근무 기간은 9개월이다. 참여자 중 3명을 제외한 전원이 간호사나 의사, 한의사 등 면허 소지자다. 20명 중 남성은 15명, 여성은 5명이다.
유 교수는 "인터뷰에 참여한 역학조사관들은 역학조사를 위해 주말, 평일 구분 없이 근무하고 있었으며 근무 시간 역시 매우 긴 것으로 나타나 인력 부족 및 업무 강도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A역학조사관은 "벌써 초과 근무 시간이 100시간 정도가 되버린 상태"라며 "매일 매일 이렇게 초과 근무되고 원래는 어제도 제가 근무날이 아니었는데 근무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 뭔가 제대로 쉴 수 있는 날이 없다"고 말했다.
B역학조사관은 "최근 1주일로 본다고 하면 금요일부터 투입이 돼서 계속 했었는데 새벽 4, 5시에 집에 오고 다음 배치는 아침 7시"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월 100시간이 넘게 일한 경우, 확진자 증가 시기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한 경우, 최근 1주일 사이 새벽 4~5시 경에 귀가, 오전 7시에 다시 업무배치 연락을 받은 경우 등 초과 근무가 상당한 수준이었다"며 "근무량과 함께 퇴근 후에도 또 출근 전에도 끊임없이 업무 연락이 오고 평일,주말 구분과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 등 업무 조정의 문제 역시 심각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역학조사관의 과잉근로는 신체적 피로와 함께 심리적 스트레스로 나타났다.
참여자들의 정서적 고갈 평균값은 4.31점으로, 기준점인 3.2점을 적용하면 20명 중 80%인 16명이 정서적 고갈 상태를 보였다.
효능감 저하를 보인 참여자도 16명 있었고 냉소 상태를 드러낸 참가자는 11명이었다.
C역학조사관은 "역학조사를 하다가 실수를 해서 문제가 생겨 많이 힘들었던 꿈을 꿨다"며 "2~3달 전부터 매번 잘 때마다 역학조사를 하는 꿈을 꾼다"고 호소했다.
D역학조사관은 "동선이 마음에 걸리는 사람, 괜히 풀어줬나 싶은 사람, 나 때문에 생계를 막은 건 아닐까 하는 수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크게 났었다"고 말했다.
역학조사관들의 울분 상태를 측정한 결과 심각한 수준은 5명, 울분이 지속되는 상태는 9명이었다.
유 교수는 "역학조사관이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조사 범위 등을 설명해도 정치인과 행정가들이 정치적, 행정적 또는 경제적 고려에 따라 역학조사관의 결정에 개입하려는 사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E역학조사관은 "왜 여기는 접촉자 분류 안 했느냐 여기는 왜 검사 진행하지 않았느냐 이런것들에 개입이 있다"며 "지역 주민들의 불만을 대신 표현해주는 분들이다 보니 저의 결정보다 그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거다. 그렇다보니 내가 설명을 해도 이 사람들은 이미 결정을 한 거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국비 검사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요구하는 사람, 경제적 이해관계로 항의나 폭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답변도 나왔다.
반면 역학조사관들은 실제 업무에 비해 보상과 처우가 미흡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유 교수는 "역학 조사관을 비롯한 현장 방역 인력의 업무 강도 및 환경을 개선할 대안이 필요하고 협조와 신뢰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춰야 한다"며 "무엇보다 현장을 우선해 문제를 해결하는 협치의 체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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