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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5억, 허버허버, 웅앵웅'…이말이 왜 남성혐오?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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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4-20 14:01:00  |  수정 2021-04-20 21:37:26
광고에 나왔는데…갑자기 '남혐' 단어 등극
"여성들 언어 문화 '남혐' 프레임 안에 가둬"
전문가 "반발심리에 정치적 포퓰리즘 영향"
"감정싸움 부추기는 대신 새담론 논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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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지난 2019년 7월께 방영된 동원참치 광고 캡쳐. (사진=유튜브 갈무리) 2021.04.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천민아 기자 = 최근 일부 남초(남성 회원이 많은) 사이트에서 여초(남초의 반대 의미) 커뮤니티가 주로 쓰는 '오조오억'이나 '허버허버', '웅앵웅' 등 단어를 '남혐(남성혐오)'라고 비판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반발이 여성들 담론이나 여론 형성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나 저항감이라고 분석한다. 더 나아가 페미니즘 색채가 상대적으로 강한 '2030 여성'들의 언어 문화를 남혐으로 프레임화하려는 진화된 형태의 '여혐(여성혐오)'일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20일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이미 수년전부터 광범위하게 쓰이던 해당 용어들이 최근 들어 갑자기 남혐 논란에 휩싸이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오조오억(5조5억)'은 '매우 많다'는 뜻으로, '허버허버'는 '허겁지겁 무언가를 하다'는 의미로, '웅앵웅'은 '아무 말이나 한다'는 신조어로 당초 유래는 남성 혐오의 취지가 없다.

오조오억은 지난 2017년 한 아이돌 팬이 '우리 OO이는 십점 만점에 오조오억점'이라고 하며 유행하기 시작했고, 수년 전부터 온라인 상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던 허버허버는 지난 2월 MBC '나혼자산다'에서 자막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웅앵웅은 한 트위터 사용자가 '한국 영화 음향이 좋지 않다, 대사가 웅앵웅 초키포키로 들린다'고 쓰며 나타났고 토마스 오도넬이라는 헐리우드 배우가 글자 모양이 예쁘다며 글을 올리며 유명세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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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외국 배우 토마스 오도넬이 트위터에 올린 '웅앵웅 초키포키' 게시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몇 해 전 동원참치는 '오조오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CF를 만들어 소위 '대박'을 치기도 한 사례도 있을 만큼 이들 단어는 여초 커뮤니티 밖에서도 흔히 쓰이던 용어다.

그러나 올해 들어 남초 사이트의 반발로 최근 카카오톡은 '허버허버'라는 문구가 들어간 이모티콘을 판매 중지까지 했다. 유튜브에 '오조오억'이라는 단어를 쓴 연예인 하하는 사과글까지 올려야 했다.

남초 사이트에서는 이 단어들이 남성혐오적 맥락을 띄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조오억은 '정자가 오조오억개'라는 비하 표현이며 허버허버는 '남성들이 음식을 마구 먹는 모습을 희화화한 것', 웅앵웅은 '남성이 말을 웅앵웅 한다며 무시하는 것'이라는 등의 해석이다.

하지만 남초 사이트 내에서도 이 같은 표현은 '솔직히 억까(억지로 까기) 아니냐'는 여론이 상당하다. 특히 최근 '보겸(유튜버)+하이루'라고 불리던 '보이루'라는 단어 등을 여성계가 '보X(여성 성기를 칭하는 은어)+하이루'의 의미로 '여혐'이라고 비판하는 게 억지이기에 이를 단순히 미러링한 것뿐이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반응을 미뤄볼 때 그간 비판을 받던 '한남충(한국남자벌레)' 등 명백히 남혐 색채를 띄던 표현과 달리 최근 문제가 된 '오조오억' 등은 단순히 여초에서 파생되거나 주로 쓰이는 단어라고 보는 편이 가깝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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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20일 남초사이트 에펨코리아에 "솔직히 오조오억 등은 억지이긴 하다", "우리도 프레임을 짜서 승부하자"는 등의 게시글이 올라와있다. 2021.04.20.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같은 단어를 남혐이라고 프레임화 하는 것 자체가 여초 언어 문화를 폄훼하는 여혐이 아니냐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여성을 '된장녀', 아이돌 문화를 즐기던 여성들을 '빠순이'라고 깎아내렸던 것처럼 페미니즘 색채를 띈 여성들의 언어 문화 자체를 남혐이라는 프레임 안에 가두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남성이 모르고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 안에서 여성들만 이용하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담론이 만들어지는 것, 여론이 형성되는 것 자체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과 저항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이전처럼 대놓고 여혐을 하는 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지탄받는 흐름이 형성됐기 때문에 '혐오 표현 규탄'이라는 PC(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외피를 쓴 '진화된 여혐'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이런 논란이 올해 들어서 부쩍 늘어난 이유로 전문가들은 장기화된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과 정치적 선동주의를 지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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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째 장기화된 페미니즘에 반발하는 2030 남성의 심리에 더해 일부 정치인들이 '남성 혐오'나 '남성 역차별'이라는 프레임을 포퓰리즘적인 정치 전술로 쓰며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윤김 교수는 "군복무제 도입 등 2030 남성들의 역차별 감정을 일으켜서 정치적으로 결집하려는 양상이 포착된다"며 "페미니즘이 길어지며 새로운 분기점이 되려고 하자 뿌리를 자르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김 교수는 "한 단면만 보고 선동하거나 성별 간 감정싸움을 부추기는 대신 현 대한민국 상황이 어떤지 진단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일종의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며 "화합할 수 없는 것 처럼 보이는 이 국면이 어쩌다가 부상했는지 이해하고 나아갈 수 있는 비전이 제시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min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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