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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녹취록에 나오면 유죄'…어느 나라 원칙인가

등록 2022.02.28 17: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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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상 사회부 기자 *재판매 및 DB 금지

이기상 사회부 기자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피고인들 외 다른 사람들도 녹음되어서 유출 시 혼란이 큰 상황."

지난해 12월24일, 대장동 의혹 재판에서 검사들은 '정영학 녹취록' 녹음파일이 피고인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들은 "수사 진행 중인 내용이 녹음돼 있다", "공소사실 외 다른 내용도 불가분으로 담겨 있다"며 언성을 높였다. 녹음파일 재생은 법정에서만 하자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중순을 기점으로 녹취록은 여러 언론사에 대서특필됐고, 검찰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녹취록 보도로 조재연 대법관은 '그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좋으신 분'으로 거론됐다.

TV토론회에 나온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그분이 조재연 대법관이라고 보도되고 있다'고 공개 언급하기까지 했다.

이 일로 조 대법관은 개인 자격 기자회견을 연 첫 현직 대법관이 됐다. 여기서 그는 이 후보 발언에 대해 "공개토론에서 현직 대법관 성명을 거론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사실상 유감을 전했다.

녹취록에 등장만 하면 '대장동 비위 연루자'로 단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 현상까지 만든 것 아닐까.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조 대법관은 "김만배씨 명함도 없다"고 주장하며, 검찰이 자신을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고 했다. 이날 그는 "검찰이 필요하면 날 즉시 불러달라"고 강수를 뒀다. 발언 도중 의혹 보도가 인쇄된 A4 용지를 수차례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기자회견 후 검찰도 "그 내용은 사실관계가 상당부분 확인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현재까진 조 대법관에게 범죄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 검찰 설명이다.

실상, 이 녹취록이라는 것은 대부분 비위 연루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자들의 대화다. 유출된 것은 '말'뿐인 이 밀실 대화를 그토록 신뢰하게 된 이유는 뭘까.

이는 이 녹취록이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인들에게 너무나 쓸모있는 '무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 측은 앞뒤 문맥은 떼고 "윤석열 영장 들어오면 윤석열은 죽어"라는 문구로 윤석열 후보를 대장동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게이트', '그분' 등을 무기로 썼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당신은 유죄"라는 정치인들 선동에 각자 지지 정당이 다른 국민들이 호응한 결과가 작금의 현실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대장동 재판을 심리한 전임 재판부의 녹취록을 보는 시선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녹취록이나 관계자의 대화만 가지고 공소사실이 입증되거나 피고인의 결백이 입증된다고 하긴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재판 중 '변론이 녹취록이나 관계자의 진술에 의존하는 것'을 경계하며 "구체적 쟁점에 대한 토론과 검토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혐의가 어느 정도 특정된 대장동 피고인들조차 재판이 끝나기까지 40여명의 증인을 불러 유무죄를 다툰다.

허풍 섞인 '말'의 늪에서, 자격 없는 이들이 정국을 흔드는 걸 언제까지 내버려 둘 건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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