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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블랙리스트 수사' 3년 묵힌 검찰…스스로 신뢰 허물어

등록 2022.03.30 14:55:33수정 2022.03.30 19: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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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블랙리스트 수사' 3년 묵힌 검찰…스스로 신뢰 허물어

[서울=뉴시스] 이윤희 기자 = 산업통상자원부가 아직 임기를 마치지 않은 산하 공기업 사장 등에게 사표 제출을 종용했다는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최형원)는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를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사흘 만에 관련 기업 8곳을 다시 압수수색했다. 현재도 압수물 분석이 한창일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조만간 관련자 소환 조사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느 선까지 칼끝을 겨눌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당시 산업부 간부나 청와대 관계자 등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검찰 수사 시점을 두고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고발장을 접수한 것은 무려 2019년 1월인데, 왜 지금에서야 강제수사를 진행하는 등 수사를 급격히 진척시켰냐는 것이다. 정치적 의도가 들어갔다는 의심어린 시선도 있다.

검찰은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하는 모습이다.

서울동부지검은 김은경 전 장관 등이 기소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올해 1월에야 유죄로 확정돼 판결문과 법리를 검토하느라, 수사가 지연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지난 2019년 4월 기소됐고, 지난 1월 대법에서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다른 수사기관도 아닌 검찰이 유사 사건을 기소했음에도, 1심이나 2심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연루됐을지 모를 중대 범죄 의혹이 있음에도 3년을 손 놓고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환경부 블랙리스트를 수사해 기소한 것은 같은 서울동부지검었는데, 유사 사안에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는 의미다.

강제수사 착수 시점도 내막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산업부 압수수색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대법 선고가 내려진 직후가 아니라 두 달이 지나 이뤄졌다. 3년 넘게 캐비넷에 잠들어 있던 사건이 공교롭게도 최초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선출되자마자 펼쳐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검찰이 새 정부 '코드 맞추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정치적 고려를 통해 수사 시점을 정했다는 의미다.

윤석열 당선인은 검찰 재직 시절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렸고,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하고 기소했다가 좌천된 주진우 전 부장검사는 차기 정부 인사검증이라는 요직을 맡고 있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비위 의혹을 정면 겨냥해 윤석열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고민 끝에 최선의 시점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청와대가 연루됐을지도 모를 의혹을 처음부터 제대로 수사했다면 외압이 들어왔을 수 있고, 대선 전에 시작하자니 정치에 개입한다는 의심을 걱정해야 했을 것이다. 또 정권이 교체되기까지 기다렸다면 지난 정권 죽이기로 비칠 수 있다. 여러 경우를 감안해 부작용이 가장 적은 시점을 선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쪽이든 수사기관이 입버릇처럼 강조해온 "원리원칙에 따른 수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검찰 세계를 그려내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에서는 검사를 두고 "사회의 기준이 돼 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으나, 수사권과 기소권 행사가 우리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기준점이 스스로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흔들리는 일이 지속되면, 결국은 그 권한을 위임한 사회 구성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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