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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핵심증거" 평가 무색…잘 안 들리는 정영학 녹취록

등록 2022.05.13 14:09:53수정 2022.05.13 16: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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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류인선 기자 = "정영학 회계사는 이 녹음 파일을 다시 들어보셨나요. 원래도 이렇게 안 들리는 상태인가요?"(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측 변호인·지난 9일 29차 공판기일)

'대장동팀'이라고 불리는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 등 5명의 최근 공판에서는 연일 정 회계사의 녹음파일에 대한 증거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파일 재생, 각 파일의 재생 후 대화 당사자로부터의 진정성립. 법정에서 계속되는 절차다.

방청객은 조악한 음질의 녹취록을 이해하기 어려워 한다. 변호인들 역시 약 1.4배속으로 재생되는 녹음파일과 속기록을 대조하기 위해 바쁘다. 녹음파일 속도를 못 따라갈 경우, 속기록을 보는 변호인의 눈도 갈 곳을 잃는다.

정 회계사가 대화 당사자들 몰래 대화를 녹음하려다 보니 상대방의 목소리가 작게 녹음됐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카페, 식당 등에서 녹음하다 보니 잡음도 많이 섞였다. 재판부도 신속한 진행을 위해 요증사실과 거리가 먼 구간은 빠른 속도로 재생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기에 유 전 본부장의 변호인이 정 회계사에게 원래 녹음 상태가 불량했는지 확인하게 된 것이다. 녹음 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보니 녹음파일에서 등장하지 않은 법조인의 이름이 김씨의 로비 대상이었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촌극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녹취록은 줄곧 이 사건의 핵심 증거로 꼽혀왔다. 사건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김씨, 유 전 본부장, 남욱 변호사, 정 회계사, 정민용 변호사가 대장동 개발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사전에 공모하는 듯한 대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특히 김씨, 남 변호사, 정 회계사는 배임죄의 구성요건인 '타인의 재물을 관리하는 자'라는 신분을 가지지 않았는데도 배임 혐의로 의율됐다. 그 배경에는 이들이 유 전 본부장과 사전부터 공모했다는 검찰의 판단이 있다.

이 상황에서 정 회계사의 녹음파일이 공판중심주의 원칙에 걸맞게 조사되는지 우려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정에서 법관이 증거를 조사하면서 심증을 형성해야 하는데, 속기록을 본다고 해도 들리지 않은 녹음파일 속 대화를 법관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속기록과 쌍방 의견서에 의존하거나 법관이 사무실에서 녹음파일을 켜고 심증을 형성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 같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공판중심주의와 공개재판주의의 원칙에는 어긋날 수 있는 현실인 것 같다"고 했다.

그렇기에 저음질의 녹취록이 당황스럽다는 감정을 지울 수 없다. 대장동 사건은 지난 대선 정국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전 대선후보)와의 연관성 의혹이 불거지며 국민적 관심을 받은 사건이었다.

벌써부터 입증 성공 여부에 대해 말할 때는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적 관심이 컸던 사건의 핵심 증거인 것을 감안하면 "이어폰을 끼고 들으면 들린다"는 검찰의 반응은 의아하다. 향후 공판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입증의 적절성을 살펴볼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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