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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북 조폭 대해부] ① '조폭 전국최다 지역 오명' 전주의 실태

등록 2011.11.01 12:00:32수정 2016.12.27 22: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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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뉴시스】신동석 기자 = 1일 전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전주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폭력조직은 총 6개 계파 150여명이다. 사진은 전주지역 조폭 계보.  photo@newsis.com 

【전주=뉴시스】신동석 기자 = 정부와 경찰이 인천 조폭 폭력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런 가운데 전북은 인구 대비 전국적으로 조폭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공식적으로 경찰이 밝힌 전북 내 조폭은 500명 정도지만 실제로는 공식 숫자의 배가 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부산과 서울 등 수도권의 조폭수도 전북과 비슷하다. 전북 인구가 18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전북은 사실상 '조폭 천국'이라고 불릴만 하다.

 이런 이유로 전국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호남 조폭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 바로 전북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뉴시스는 경찰의 조폭과의 전쟁 개시를 계기로 4회에 걸쳐 전북의 조폭을 대해부해 본다.<편집자주>  

 제1편 : '조폭 전국최다 지역 오명' 전주의 실태  제2편 : 군산과 익산 등 조폭 상황  제3편 : 대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북 출신 조폭  제4편 : 생활까지 파고 드는 조폭의 실상  제5편 : 어느 조폭 보스의 회고  



  제1편 :  '조폭 전국최다 지역 오명' 전주의 실태

 ◇ 전주지역 6개 계파 150여 명

 1일 전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전주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폭력조직은 총 6개 계파 150여 명이다.

 계파별로는 월드컵파(조직원 40여 명)와 나이트파(조직원 30여 명), 오거리파(조직원 20여 명), 타워파(조직원 20여 명), 북대파(조직원 20여 명), 중앙시장파(조직원 20여 명) 등이다.

 이들 조직들은 신흥 폭력조직인 '중앙시장파'를 제외하곤 1983년 쯤에 대부분 결성됐다.

 폭력써클에서 지난 1983년 출발한 월드컵파는 당시 전주시 중앙동 '월드컵나이트클럽'을 기점으로 조직을 구성했고, 나이트파는 전주관광호텔을 무대로 결성됐다.  

 또 당시 상가와 주점 등이 밀집해 있던 '오거리'를 기점으로 오거리파가 등장했고, 타워파와 북대파는 금암동을 거점으로 생겨났다.

 30년 가까이 조직을 이끌고 있는 각 조직 보스들과 부두목, 행동대원 등은 대부분 폭력전과가 있으며, 이 가운데 전과 10범이 넘는 보스도 있다.

 주로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인 보스(큰 두목)들은 현재 자영업과 건설업 등을 하고 있고 일부 보스들은 서울과 경기, 충남 등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무직이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인 보스도 있다.

 타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보스들은 정기적으로 전주에 내려오고 있으며, 부두목과 행동대원 등은 조직원 중 활동이 가장 왕성한 중간급인 30~40대 조직원으로부터 정보를 얻은 뒤, 보스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또 조직원 수가 가장 많은 월드컵파와 나이트파가 전주지역에서는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으며, 관리대상으로 선정해 이들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 왕성했던 80년대, 주춤해 진 90년대

 전주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이들 조직들은  90년대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 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검은색 정장에 고급 세단을 타고 다녔고, 당시에는 조직간의 구역싸움도 치열해 유혈 난투극이 자주 벌어졌다.

 조직 자금을 만들기위해 조직원들은 '업소를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구역에 있는 업소를 돌며 업주로부터 월정금을 받았고, 자신들의 구역을 침범하는 타 조직은 거침없이 응징했다.       

 특히 조직 가운데 월드컵파와 나이트파의 세력다툼은 치열했고 이로인해 도심 한복판에서 유혈 난투극은 끊이질 않았다.

 전주 한성여관 살인사건, 명동여관 살인사건 등 이들의 세력다툼은 84년까지 이어지다가 전주백화점을 중심으로 유흥가를 양분하면서 세력균형이 이뤄졌다.

 이 후 크고작은 세력다툼이 벌어지다가 6년 후 '서울 강남병원 응급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검·경의 수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 을 선포한 이후 조직들의 세는 약해졌고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조직원들은 하나 둘씩 서울로 상경했다. 

 각 지방경찰청마다 특수강력수사대(특강대)가 결성돼 '조직폭력배 소탕 작전'에 들어갔고, 자금줄이었던 업주 월정금도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당시 특강대 소속이었던 전주완산경찰서 A 경위는 "조직간의 이권 싸움이 치열해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고, 조직원이 피해를 입으면 반드시 보복도 이뤄졌다"면서도 "그러나 대대적인 단속으로 인해 조직들의 세는 약해졌고 조직 자금 조달도 하지 못하자 조직원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과 경기 지역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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