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초 폐강 사태 '고질병'···대학생들 곤혹, 강사는 실직
폐강 비율 2~4%대···심한 대학은 7~8%까지
학생 수강권 침해에 강사들 생존권 위협 문제
"교육권 보장돼야···시간강사 보호 대책 필요"
【서울=뉴시스】홍지은 기자 = 학기 초 인원수 미달로 폐강되는 과목들 탓에 학생과 교수진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폐강 공지로 과목을 바꿔 원치 않는 수업을 들어야만 하는 학생과 실직하는 강사들이 발생하는 폐강 사태는 학기마다 되풀이되는 모양새다.
◇폐강 비율 중앙대 4%, 성균관대 7%대 등
폐강 사태의 주원인은 인원수 미달이다. 대학은 전공과 교양과목을 구분해 기준에 따라 폐강 여부를 가른다.
뉴시스 전수조사 결과 2017년도 2학기 서울 소재 13개 대학의 폐강 평균치는 전공과목이 10명, 교양과목은 20명 미만이다. 서강대, 시립대의 폐강 기준은 전공수업의 경우 10명 미만, 교양수업은 20명 미만이다.
경희대 폐강 기준은 전공수업 15명 미만, 교양수업 20명 미만이다. 한국외대는 전공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이 각각 5명과 10명 이하, 교양과목은 10명 미만이다.
서울대는 전공과목의 경우 전임교수 5명, 비전임교수 8명 미만의 기준을 적용하고 교양과목은 정원수 40명 이상일 때 10명 미만이 기준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학교 규정상 수강 인원을 제한하고 있지만 일률적으로 기준을 말하기는 모호하다"며 "교수 재량에 따라 미달되더라도 (수업을) 개설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13개 대학 평균 폐강 비율은 전체 개설 과목 대비 평균 2~4%를 차지했다. 연세대는 2017년도 2학기 기준 개설된 3287강좌 중 52개가 없어져 1.58%의 폐강률을 보였다. 시립대는 1398개 중 32개가 폐강돼 2.2%의 폐강률을 나타냈다. 서강대학교는 1142개 개설 강좌 중 34개가 폐강돼 2.97%다
이대는 3.2%, 한국외대는 3.5%, 중앙대는 4.01%, 성균관대는 7.1%, 건국대는 8.18%를 각각 기록했다.
◇폐강에 '울며 겨자 먹기'로 수업 바꾸는 대학생
서울 소재 대학생 4학년 전모(23·여)씨는 필수과목 '고전읽기와 글쓰기'를 수강 신청했다. 그러나 인원수 미달로 폐강 통지를 받고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수업을 신청했다.
전씨는 "수업 계획표를 보고 신중하게 고른 수업인데 폐강이 되니 당황스러웠다"며 "전공 필수과목인데 두 학기 뒤 졸업을 하려면 꼭 이수해야 해서 다른 시간대 수업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졸업을 앞둔 학생의 경우 더욱 난감한 상황이다.
부산 소재 한 대학교에 다니는 3학년 김모(24·여)씨는 인원 수 미달을 이유로 전공 필수과목 폐강 통지를 받았다. 김씨는 "졸업하려면 꼭 들어야 하는 수업이라 어쩔 수 없이 야간에 있는 빈자리 수업을 들었다"고 밝혔다.
보통 폐강 통보는 개강 이후 1~2주 사이에 이뤄진다. 갑작스러운 폐강으로 전체 시간표와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다른 과목까지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소재 대학교 1학년 송모(20)씨는 학부 사무실로부터 수강신청한 전공 수업이 폐강 위기라는 문자를 받았다. 송씨는 "전공 수업이 폐강되면서 전체 시간표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수 학점을 채워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 기존 잡아뒀던 교양 수업을 포기하고 전공과목을 넣었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매 학기 수백만 원이 넘는 교육비를 지불한 학생의 수강권 침해라는 지적도 제기한다.
막 학기를 다니는 서울 소재 대학생 권모(24·여)씨는 "등록금을 내고 입학했음에도 듣고 싶은 수업을 못 듣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푸념했다. 권씨는 "대학원보다 학부 등록금이 현저하게 저렴한 것도 아니다"라며 "5명이 들어도 진행하는 대학원 수업과 달리 인원 미달로 학부 수업이 폐강되는 점에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대학 측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 모 대학 관계자는 "운영의 효율성과 재정적 측면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며 "학교에서도 유보적 기준 지침에 따라 학문의 특수성, 정책적인 측면, 학내 사업을 고려해 인원 수가 미달됐다고 해도 융통성 있게 조정하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인기 교수의 특정 수업에만 학생이 몰리다 보니 폐강이 생기는 것"이라며 "대학 내부에서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대학교육연구소 임희성 연구원은 "비싼 등록금을 낸 학생은 원하는 과목을 수강할 권리가 있는데 인원수 부족으로 일방적으로 폐강시키는 것은 수업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 연구원은 "정부에서 학문적 다양성 보장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탄탄하게 뒷받침해야 한다"며 "대학 운영자도 시장 논리가 아닌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와 수강할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학기 어떻게 먹고 사나"··· 갈 곳 없는 시간강사
폐강으로 울상이 된 이들은 학생뿐만이 아니다. 올해 첫 강의를 맡은 강사 A씨는 자신의 수업을 신청한 학생이 7명에 그쳐 폐강 위기에 처했다.
A씨는 "오리엔테이션 수업에 들어갔을 때 참 어색하고 참담했다"며 "강의가 밥벌이인데 이렇게 매 학기 폐강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다"고 말했다.
2년차 시간강사 B씨는 문자로 폐강 통보를 받은 후 "방학 동안 열심히 준비했는데 좌절감이 크다"며 "이미 학기는 시작했고 대학과 강사 간 계약 기간은 이미 끝난 상황이라 갈 곳도 없다"고 답답해 했다.
시간강사의 폐강 비율은 전임교수보다 높다. 대학 관계자는 "전임교수의 경우 권위 보장이란 측면에서 인원이 미달돼도 재량으로 수업하기도 한다"며 "전임교수 수업은 시간 조정도 쉽고 인기 시간대에 주로 배정돼 시간 강사와 폐강 비율에서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20년 차 비전임강사 C씨는 "대학이 시장 논리와 행정 편의주의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 하는 것이 문제"라며 "한 학기에 몇 백개씩 강좌가 폐강되는데 결국 비정규직 강사의 한 학기 수입 상당 부분은 날라가게 되는 것"이라고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는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열의를 쏟는 강사와 강의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수년간 인문학 강좌의 강사로 현장에서 뛰어온 D씨는 "학교의 재정적 문제도 이해는 된다"면서도 "정말 이 수업을 듣고 싶은 학생들이 있을텐데 인원 수 미달이란 이유로 일방적으로 폐강 시키는 것은 참 씁쓸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국대학강사노조 김동해 본부장도 "이미 강의를 배정했다는 것은 실제 학교와 강사 간 계약관계가 성립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강의 준비를 다 했는데 인원수 미달로 강사를 자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김 본부장은 "학교와 학과에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보호과목 설정' 등 폐강을 막을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한다"며 "초년강사의 강의는 학생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주도적으로 홍보하고 수업 참여를 독려하는 것도 폐강을 막는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대부분 대학에서는 폐강 기준을 강화하고 있고, 그 부담을 강사가 짊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수강인원 설정은 제도적으로 강제할 수 없고 대학 자체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대학 당국에서 자발적으로 강사의 처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