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을 바꿔라②][르포-2]"쪽방만으로도 만족해요"
대한민국에서 쪽방촌은 가난의 집약물과도 같다. 쪽방촌은 최소한의 주거복지 요건도 갖추지 못한 공간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우리사회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거처다.
뉴시스는 신년기획 '쪽방촌을 바꿔라'를 통해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1월 한달간 기자들을 직접 상주시켜 거주민들의 현실을 밀착취재한다. 동시에 헌법상에 보장된 최소한의 주거복지 실현을 위한 방안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임재희 기자 =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내 한 계단 아래 물이 얼어 빙판이 생기자 서울역쪽방상담소 요청으로 바로 옆 쪽방에서 미끄럼 방지 매트리스를 설치한 모습. 2018.01.17. [email protected]
월세 오를까 추워도 임시방편으로 바람막이
서울 쪽방촌주민 절반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
마땅히 갈곳없어 5명중 3명 계속 살기 원해
공방통해 안부 묻고 돈도 벌어…더불어 사는 삶 배워
나눔센터 등록하면 공용샤워실 등 생활불편 줄이기도
【서울=뉴시스】특별취재팀 = 서울 용산구 동자동쪽방촌의 쪽방은 '임시방편투성이'다. 찬바람이 들기 시작하니 창문을 스티로폼으로 덮고 청테이프로 막았다. 외벽 냉기가 방안에 새어들지 않도록 단열 벽지로 사방을 둘러쌌다. 난방은 전기장판으로 대신했다.
모두 관리인 정연성(가명·79)씨의 솜씨다. 그는 "보일러 바꾸고 화장실 변기랑 수도꼭지 갈고 전기까지 거의 다 내 손으로 한 것"이라며 "이런 걸 돈 들여서 전문가 불러다 시키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정씨도 쪽방촌 주민이다. 3층짜리 건물을 빌려 쪽방을 만든 뒤 쪽방을 임대해 돈을 번다. 정씨가 만든 쪽방 30개 평균 월세는 20만원이다. 월세를 받아 가스·수도·전기요금 등을 내고 '진짜 집주인'에게 건물에 대한 전세와 월세를 내면 겨우 한해 먹고 살만큼 남는다.
임시방편엔 한계가 뒤따른다. 찬바람을 피하는 대가로 환기를 포기했다. '건강관리를 위해 주기적으로 창문을 열어 환기해야 한다'는 조언은 쪽방과 거리가 멀었다. 단열벽지는 벽 누수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까지 막아주진 못했다.
그런데도 정씨 쪽방에 사는 세입자중 누구 하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세입자들도 안다. 시설을 손보려면 돈이 들고 그만큼 월세가 높아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증금 없이 월 20만원으로 동자동 쪽방촌에서 살려면 이게 최선이다.
【서울=뉴시스】임재희 기자 =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 창문을 스티로폼으로 덮고 청테이프로 막아 놓은 모습. 2018.01.17. [email protected]
◇각종 불편에도 쪽방촌에 살 수밖에 없다
쪽방촌 외에 달리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운영하는 자활작업장 '새꿈더하기 공방'에서 만난 김경재(가명·55)씨는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된 뒤에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건강 하나는 자신 있었다. 막노동하고 돈도 틈틈이 모았다. 떨어져 살더라도 가족에게 생활비는 꼬박꼬박 보냈다.
건설업이 건재하는 한 먹고 살 걱정은 없었다. 티끌 같은 재산이라도 가족과 모여 살 월세방 한칸은 마련할 수 있겠다 싶었다. 꿈이 커질 무렵 피로가 쉽게 안 풀린다 싶더니 눈앞이 흐릿해졌다. 병원에선 중증근무력증이라고 했다. 건설업보다 믿었던 몸이 먼저 무너졌다.
김씨는 "조금만 힘을 줘 일해도 온몸이 아프더라고요. 몸이 아픈 건 참을 만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이 안 보이니까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없게 된 거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 몸 하나 살 곳을 찾다 보니 동자동에 왔어요"라고 쪽방촌에 살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인 김씨와 같은 이들에게 쪽방 월세는 부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서울 1인 가구 수급자에게 지원되는 주거급여는 21만3000원이다. 쪽방 월세는 걱정 없는 금액이다.
서울지역 쪽방촌 주민 중 절반이 김씨와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해 말 기준 3274명 중 50.6%인 1656명이 기초생활수급자다.
지난해 서울시가 발표한 '2016 서울 쪽방 밀집지역 건물실태 및 주민의견 조사'에서 서울 지역 쪽방밀집지역 주민 2473명 가운데 55.2%가 '계속 쪽방에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
계속 살고 싶은 이유로는 60.1%가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라고 했다. '불편함이 없어서'라는 답변은 6.6%에 그쳤다. 쪽방촌 주민들도 쪽방이 편해서 사는 건 아니란 얘기다. 어떤 이들에겐 불편을 받아들이는 것 외엔 달리 방도가 없다.
◇버려진 쪽방촌에도 희망이 싹 틔웠다
【서울=뉴시스】임재희 기자 =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운영하는 자활작업장 '새꿈더하기 공방'. 2018.01.17. [email protected]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쪽방촌 주민들은 서로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기댔다.
새꿈더하기 공방은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있다. 한 의류업체 쇼핑백에 속지를 넣거나 끈을 달아 한 개당 10원씩 받을 수 있다. 기자도 이곳에서 3일간 속지 200장을 넣고 끈 620개를 달아 1만2200원을 벌었다.
공방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공방을 찾은 주민들은 이웃 안부를 묻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높은 곳에 혼자 사는 노인 건강 걱정부터 기초생활수급자가 쌀 10㎏ 한 포대를 저렴하게 받는 방법을 알려줬다. 일터가 아닌 일종의 '사랑방'이었다.
이웃의 끼니 고민도 주민들이 덜어준다. 쪽방내 공동주방 '사랑방식도락'(이하 식도락)에선 생선조림, 계란찜, 어묵볶음, 깻잎지, 볶은김치 등이 단돈 1000원이다. 조리부터 배식, 설거지까지 쪽방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기에 가능한 일이다.
쪽방상담소를 통해 '동자희망나눔센터' 회원으로 등록하면 생활상 불편도 줄일 수 있다. 회원번호 '2008-0001'. 새해 들어 첫 회원증을 받자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오전 5시부터 추위에 떨 필요가 없는 공용샤워실(월·수·금·일요일 남성, 화·목·토요일 여성)과 공용세탁실을 쓸 수 있게 됐다.
헌법에선 재산권은 보호하지만 주거권은 구체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환경권을 다룬 제35조 3항에서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해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쪽방촌 주민들에게 주택개발정책은 곧 퇴거를 의미했다.
낮은 월세를 유지하느라 구멍 뚫린 주거환경을 주민들과 쪽방상담소가 그물망처럼 엮어 보완했다. 김경재씨는 공방 동료들을 보며 "살면서 사람에게 배신감도 많이 느꼈지만 여기 나오고 나서부턴 사람에게서 희망을 본다"고 했다. 버려진 쪽방촌에선 쾌적한 주거생활은 주민들과 쪽방상담소에 의존했다.
로또를 샀다는 공방에서 만난 40대 남성에게 '1등에 당첨되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남산 밑자락에 3층짜리 건물 하나를 지을거야.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게 살 수 있는 쪽방을 만들고 싶어. 월세는 10만원만 받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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