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이 애국당 천막 강제철거하면 이중잣대일까
박원순, 애국당 불법천막 강경대응 재차 천명
2017년 박근혜 지지 서울광장 천막 강제철거
강제철거 반대론자 박원순 "정치천막은 예외"
강제철거 시 자칫 보수야권 결집시킬수 있어
정치적 논란 휘말리지 않는 철거시점 택할 듯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대한애국당이 설치한 천막이 세워져 있다.서울시는 천막을 불법시설물로 규정해 13일 오후 8시까지 자진철거 내용을 담은 계고장을 전달했지만 대한애국당은 철거를 거부하고 있다. 2019.05.13. [email protected] (사진=뉴시스DB)
앞서 애국당은 10일 오후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부근에 천막 2동을 기습 설치했다. 애국당은 11일 천막 1개를 추가 설치했다. 기습을 당한 시는 11일 대한애국당 천막을 찾아 '13일 오후 8시까지 천막을 자진 철거하라'는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전달했다. 이에 따라 16일 현재 시는 언제든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강제철거에 나설 수 있다.
박 시장은 자유한국당의 광화문광장 천막 설치 시도를 미연에 차단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애국당 천막에도 강경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 시장은 천막이 설치된 직후 "서울시의 허가 없이 광장을 점거하는 것은 불법이다. 불법으로 광장을 점거하고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며 애국당을 압박했다.
그럼에도 불법점거가 지속되자 박 시장은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는 1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지금 일단은 자진 철거를 촉구하고 있고 만약에 서울시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이라는 강제 철거의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박 시장의 발언은 단순한 엄포로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박 시장이 광장에 설치된 불법시설물을 대상으로 강제철거를 실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서울시는 2017년 5월30일 서울광장에 설치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불법천막을 강제철거했다.
당시 탄기국은 2017년 1월21일부터 5월말까지 천막 등 41개 불법시설물을 설치한 채 농성하며 박근혜 탄핵 기각을 주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는 '불법설치된 시설물 때문에 시민의 광장 이용권이 침해된다'며 탄기국에 변상금 6000여만원을 부과하면서도 정작 강제철거에 착수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5월 들어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는 등 국면이 급격히 전환됐고 시는 같은달 30일 오전 6시20분께 천막을 일제히 철거했다.
이 외에도 서울시는 예수재단 임요한 목사의 시청사 앞 농성장을 강제철거 했다.
임 목사는 퀴어축제 반대, 동성애 반대, 박원순 퇴진 등을 주장하며 2014년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 시청사와 서울광장 인근에 신고 없이 불법시설물을 설치하고 장기 농성을 벌였다.
이에 시는 불법이라며 변상금을 부과했지만 임 목사는 변상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결국 시는 변상금 체납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2017년 시설물을 압류했다. 이후에도 임 목사는 간헐적으로 신고 없이 광장 인근을 무단점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당사자 의사에 반하는 강제철거 방식이 박 시장의 평소 철학과는 충돌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박 시장은 이명박·오세훈식 뉴타운 재개발·재건축사업 과정에서 벌어졌던 강제철거와 이에 따른 세입자들의 정신적·육체적 피해에 강하게 반대해왔다.
박 시장은 또 뉴타운사업을 반성하겠다면서 도시재생사업을 도입했다. 도시재생사업의 핵심은 토지주와 건물주는 물론 영세 건물주, 세입자 등 구역 내 거의 모든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철거를 강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박 시장은 용산참사에 관한 서울시 차원의 백서를 제작하며 세입자에 대한 폭력에 반대한다는 뜻을 재확인했었다.
박 시장의 강제철거 금지 철학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박 시장은 세운상가 인근 노포와 공구상가, 인쇄업소에 대한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 을지로 재개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애국당 천막이 강제철거될 경우 박 시장이 진영논리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박 시장과 서울시는 서울시 조례를 지키기 위해 부득이 강제철거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 철거 과정에서 저항하는 애국당 관계자나 지지자가 부상을 입을 경우 보수진영의 공격을 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치지형도 박 시장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탄기국 천막을 강제철거한 2017년 5월은 박근혜 탄핵 후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직후라 현 정부 여당 지지율이 높고 보수진영이 지리멸렬한 상황이었지만 현재는 한국당 등 보수야당이 장외투쟁 등 강경대응으로 일관하며 세몰이를 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시장과 서울시가 법을 집행한다는 명목으로 완력을 앞세웠다간 한국당 등 야당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야권이 이 사안을 야권 결집의 계기로 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로 한국당 출신 오신환 의원이 선출되는 등 보수야권 내 지형도가 급변하는 것도 박 시장 입장에선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박 시장과 서울시는 최대한 야권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을 하고 있다. 야권이 애국당 천막과 세월호 천막을 동일선상에 놓고 공세를 펴자 시는 두 천막 사이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제철거는 막아야 한다는 게 박 시장의 생각"이라며 "대한애국당은 사회적 약자가 아닌 정치집단이다. 정당의 불법행위까지 그런 (강제철거 반대의) 범주에 포함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세월호 천막에 관해 "세월호 천막은 사회적 약자와 배려층에 대한 관용"이라며 "(세월호 천막은) 정치적 행위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세월호 천막의 경우에는 그 당시 박근혜정부 하에서 정부 합의에 따라서 범정부적으로 허용한 천막"이라며 "처음부터 정치적 목적으로 조례에 명백히 어긋난, 그리고 사전 절차를 전혀 이행하지 않은 그야말로 불법적인 (애국당) 천막과는 완전히 대비가 된다"고 강조했다.
애국당의 무단점거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앞으로 시는 자진철거 계고장을 거듭 애국당 측에 발송하고 변상금을 계속 부과하면서 강제철거 시점을 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5월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직후 탄기국 천막 강제철거에 나섰던 것처럼 시는 이번에도 정치적 역풍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날짜를 택해 행정대집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택일'을 잘못 했다간 자칫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애국당은 박근혜 탄핵국면과 현 정국을 빗대는 이른바 '미러링'을 통해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며 여당 소속인 박 시장에게까지 덫을 놓고 있다.
실제로 애국당 조원진 대표는 15일 광화문광장 천막에서 현장 최고위원 연석회의를 열고 "2016년 광화문광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포승줄에 묶인 조형물, 단두대, 비아그라 소품,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구치소에 갇히는 퍼포먼스 등 그야말로 저주의 굿판이 난무했다"며 "서울시가 대한애국당의 ‘광화문 텐트’를 강제 철거하려고 시도할 경우 광화문 광장에 박원순 서울시장 단두대를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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