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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트럼프 아닌 미 대통령과 협상은 성과 기대 못해

등록 2019.10.02 09: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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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늦게 핵실무협상 시작하는 배경

미 새로운 입장 여전히 확신 못하지만

연말 시한과 미 대통령 탄핵 정국 고려

대안 없는 상태에서 선택한 고육지책

북한도 '새로운 길' 가는 상황 꺼리는 듯

【판문점=뉴시스】박진희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갔다 다시 남측으로 넘어오고 있다. 2019.06.30. pak7130@newsis.com

【판문점=뉴시스】박진희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갔다 다시 남측으로 넘어오고 있다. 2019.06.3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강영진 기자 = 북한이 어제 미국과 핵 실무협상을 오는 5일 열겠다고 발표했다. 전날 예비협상을 갖고 본격 협상을 이날부터 시작하겠다는 구체적 일정을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공식 발표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날자를 특정하지 않은 채 '다음 주까지'(within the next week)에 열릴 것이라고 확인했다. 따라서 조만간 실무협상이 열리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그런데 실무협상이 열리기까지 몇가지 흥미로운 대목들이 있다.

우선 국무부가 최 제1부상이 밝힌 5일이라고 하지 않고 "다음 주까지"라고 밝힌 이유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다음주는 오는 6,7일부터 시작되는 주다. 이런 차이가 왜 생기는 지는 미 국무부가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다음주까지'라는 말에는 이번주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최 제1부상이 5일이라고 확정 발표한 상황에서 굳이 '다음주'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아직 미국이 5일 개최에 동의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이와 관련 협상을 진행할 장소를 두고 북한은 평양을, 미국은 그 이외의 장소를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이런 입장 차이가 어제까지는 최종 해소되지 않았을 수 있다. 따라서 실제 협상 시작일이 다소 늦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한편 최 제1부상은 현재 북한의 북미 핵협상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전까지 북미 핵협상을 책임지던 김영철 통전부장과 같은 역할이다.

북한측 실무협상 대표는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라고 북한이 공식 발표했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협상을 진행할 재량권을 가지진 못할 것이다.

김대사를 뒤에서 일일이 컨트롤하는 사람이 최선희 제1부상이다. 최 제1부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협상의 전 과정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북미 실무협상의 북한 진용은 김명길→최선희→김정은으로 짜여진 상태다. 그런데 김계관 전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외무성 고문 자격으로 실무협상을 지켜보는 소감을 밝히고 나선 점이 특이하다.  

김계관 고문은 1993년부터 북미고위급회담, 4자회담, 북미미사일회담, 북미 테러관련 회담, 6자회담에서 북한측 대표를 맡았던 북한의 대표적 미국통 인사였다. 1998년 외무성 부상으로, 2010년에는 제1부상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2008년에 종료된 6자회담 이후 북미간에는 외교적 교섭이 없는 상황이 지난해까지 지속됐었고 김계관 제1부상은 건강이 악화해 치료에 전념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중 최선희 제1부상이 올해 그의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고문으로 물러났다.

최선희 제1부상도 김 고문 못지않게 북미 핵협상에 오래도록 관여해온 사람이다. 그런데도 현직에서 물러난 김고문까지 새삼 등장한 이유가 무엇일까.

북한은 북미 핵실무협상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외무성의 북미국장, 최선희 제1부상, 김명길 순회대사, 김계관 고문이 잇달아 공식입장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 미국에 대해 이번 실무협상에 '새로운 입장'을 가지고 오라고 거듭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이런 행보는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해임하고 '새로운 해법'을 언급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상당한 기대를 걸면서도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같은 북한의 입장은 김고문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담화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아직도 워싱톤 정가에 우리가 먼저 핵을 포기해야 밝은 미래를 얻을 수 있다는 '선 핵포기' 주장이 살아있고 제재가 우리를 대화에 끌어낸 것으로 착각하는 견해가 난무하고있는 실정에서 나는 또 한차례의 조미수뇌회담이 열린다고 하여 과연 조미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겠는가 하는 회의심을 털어버릴수 없다.하지만 트럼프대통령의 대조선 접근방식을 지켜보는 과정에 그가 전임자들과는 다른 정치적 감각과 결단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로서는 앞으로 트럼프대통령의 현명한 선택과 용단에 기대를 걸고 싶다"고 실무협상에 임하는 북한의 심정을 있는 '솔직하게' 밝혔다.

앞서 발표된 최선희 제1부상 담화, 북미국장, 김명길대사 담화도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미국에 대한 불신을 털어내지 못하는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그중 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는 "만일 미국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직접 경고하는 문구로 끝을 맺고 있다. 김고문의 담화에 비해 훨씬 강경하고 비외교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최제1부상은 여성이지만 역대 북한 외무성 고위간부중에서 가장 강성 인물로 꼽힌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담당했던 강석주 제1부상의 명맥을 잇는 인물로 평가된다. 이에 비해 전임자 김계관 고문은 강석주, 최선희에 비해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인물이다.

김고문의 담화는 최제1부상 담화에 담긴 '강성' 표현을 순화시켜 미국을 달래려는 의도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김고문이 최선희 제1부상을 넘어 실무협상에 직접 관여하기보다는 협상 시작을 앞두고 분위기를 잡으려 담화를 발표한 셈이다. 혹시라도 미국이 최 제1부상 담화에 담긴 강경 표현에 이의를 제기했을 수도 있다.

셋째,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6월3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전격 회동한 직후 2~3주 내에 실무협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협상은 3개월 가까이 지연된 뒤에야 열리게 됐다.

그런데 미국이 지난 3개월 동안 북한을 재촉하면서도 책임을 추궁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인 점이 흥미롭다. 북한이 연거푸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오히려 '모든 나라들이 하는 일'이라고 북한을 두둔하기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미국이 북한에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것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준 것이다. 통상적이라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제발 실무협상 좀 합시다"라고 애걸복걸하는 상황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실무협상이 임박한 오늘도 시험발사를 감행했다.

미국이 이처럼 '저자세'를 보인 것은 1차적으로 판문점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7월중 실무협상 재개를 김위원장에 요청했지만 동의까지 받지는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2월 하노이 정상회담을 결렬시킨데 따라 김위원장이 않게 된 정치적 부담을 최대한 배려함으로써 북한이 비핵화협상에 다시 나서도록 유도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한편 북한은 최소한 협상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미국이 진전된 "새로운 입장" 제시할 것인지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실무협상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협상도 잔득 기대했다가 속된 말로 "개망신"한 하노이 정상회담처럼 진행될 경우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인데도 내린 '결단'이다.

그같은 부담을 느낀다는 점은 실무협상을 앞두고 반복해 발표한 외무성 관계자들의 담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정상적이라면 그런 부담까지 안고 북한이 실무협상에 나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자칫 김정은 위원장의 권위까지 재차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실무협상에 나선 것은 시간문제와 미국의 정치상황 때문을 고려한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우선 북한은 11월말까지 올 한해 진행된 대내적, 대외적 주요 국정 사안을 '총화'하는 오랜 관습을 가지고 있다. 총화는 우리 말로 결산한다는 의미보다 좀 더 큰 의미로 지난 일들을 면밀히 평가하고 새로운 방향과 대책을 수립하는 과정을 뜻한다.

이 총화를 토대로 김위원장이 내년 국정방향을 밝히는 신년사를 작성하게 된다. 따라서 북한이 북미협상을 이어갈 것인지 여부를 11월말까지, 늦어도 12월 중순까지는 최종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김위원장이 연말까지로 북미협상의 시한을 밝혀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미 의회의 탄핵추진이 본격 시작된 점도 북한이 실무협상을 서두른 이유가 될 듯하다.

북한이 실무협상을 재개할 의사를 처음 밝힌 것은 지난 달 9일 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였다. 그러나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입장을 내면서 막상 회담 일정을 확정하지 않다가 어제 갑작스럽게 최제1부상이 짤막한 담화로 5일 회담이 시작된다고 발표한 것이다.

지난 달 9일과 어제 사이에 일어난 일 가운데 북미협상에 영향을 미칠 사건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미 하원의 탄핵조사가 본격 시작된 것이 대표적이다.

김계관 고문의 담화에도 나타나듯이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자들과는 다른 정치적 감각과 결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핵협상을 하는 것에 대해 북한이 큰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임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내내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로 대처했었다. 핵실험을 해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해도 미국은 제재만 강화할 뿐 북한과 협상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북한으로선 여간 답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과는 매우 대조적인 파격적 행보를 여러차례 선보였다. 30대 초반의 젊은 독재자 김정은위원장을 미국 대통령이 만나 협상하는 것 자체가 과거엔 북한이 미국 대통령한테 기대하기 어려운 파격적 대우였다.

【하노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현지시간) 하노이 중심가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 입구 국기 게양대 앞에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19.02.27.

【하노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현지시간) 하노이 중심가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 입구 국기 게양대 앞에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19.02.27.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에 어떻게든 협상을 진전시킴으로써 트럼프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여론을 호전시키거나 거꾸로 탄핵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최종 판단되면 조기에 협상을 중단한다는 계산을 하고 실무협상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처럼 북한은 이번 실무협상에 대한 확신도 없는 상황에서 큰 부담을 안은 채 협상에 나서고 있다. 달리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취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연초 신년사에서 북한이 동의할 방안을 미국이 보이지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게될 수도 있다'고 완곡하게 경고한 적이 있다.

실무협상 시작까지의 과정은 북한이 미국이 '새로운 입장'을 보이지 않을 경우 불가피하다고 경고한 '새로운 길'을 가야만 하는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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