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크라우드 펀딩 첫 EP...김예림 아닌 '림킴'의 실험
유니버설뮤직과 파트너십...K팝 신에서 드문 '아시안 여성' 강조
[서울=뉴시스] 림킴. (사진 = 유니버설뮤직 제공) 2019.12.04 [email protected]
K팝 아이돌을 중심으로 획일화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출구가 아닌 돌파구로 이 펀딩을 택했기 때문이다. 수동적 창작시스템이 지배하는 가요계 전반의 구조적인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안고 선택한 대안이다.
림킴이라는 이름은 많은 대중에게 아직 낯설다. 하지만 2011년 케이블 음악채널 엠넷 '슈퍼스타 K' 시즌 3에 출연한 혼성듀오 '투개월'의 김예림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법하다.
림킴은 긴 공백 끝에 지난 5월 싱글 '살기(SAL-KI)'를 공개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던 예전과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주목 받았다. 이후 텀블벅을 통해 앨범 제작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2000명에 가까운 후원자로부터 9000만원 이상을 모금, 이번 EP를 발매하게 됐다. 처음 목표한 금액 5000만원을 훌쩍 뛰어 넘었다.
대형 소속사에도 몸 담았던 김예림이 독립성을 갖고 주체적으로 만든 첫 앨범이다. 림킴은 프로듀서 노 아이덴티디(No Identity)와 함께 앨범 디렉팅은 물론 전곡을 작사·작곡했다.
더블 타이틀곡 '옐로(yellow)'와 '몽(mong)'을 비롯해 총 6곡이 실렸는데 그간 K팝에서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메시지를 담았다. '동양' 그리고 '여성'이라는 주제를 내세웠다. 타이틀곡 제목 '옐로'는 황인종을 의미한다. 아시안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메시지를 강렬한 사운드에 담았다. 조신하고 수동적인 '아시안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을 차용했는데 반전이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중국 상하이에서 이틀간 촬영한 '옐로' 뮤직비디오는 대만계 미국인 여성 감독 크리스틴 유안(Christine Yuan)이 메가폰을 잡았다. '옐로'와 또 다른 타이틀곡으로 동양 설화 '호접몽'을 차용한 '몽'의 뮤직비디오 역시 모두 크라우드 펀딩 모금액으로 제작됐다.
앨범에 실린 다른 곡들도 기존 K팝과 결이 다르다. 입구와 출구라는 부제를 각각 달고 첫 트랙과 마지막 트랙에 배치된 '민족요'는 무당의 굿판을 차용했다. '디지털 칸(DIGITAL KAHN)'은 디지털 시대의 유목민 그리고 통합에 대한 이야기다. '요술(YO-SUL)'은 동양적 마법을 노래했다.
이처럼 앨범은 글로벌 팝 시장에서 좀 더 다양한 아시안 음악을 선보기 위해 제작됐다. 특히 K팝의 장르적 트렌드와 개성이 부족하다는 고민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다.
이번 림킴의 음반 활동에서 또 주목할 만한 지점은 글로벌 직배사인 유니버설뮤직과 협업이다. 펀딩이 끝난 상황에서 협업을 하게 됐고 전속계약도 아니다. 하지만 유니버설뮤직은 림킴이 좀 더 폭넓게 대중을 만날 방법을 함께 고민해주고 실제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림킴은 아티스트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갖춘 이 회사의 국내 레이블 '온더레코드'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내년 상반기에 두 개의 싱글을 더 발매할 예정이다.
림킴과 작업을 주도한 유니버설뮤직 인터내셔널 A&R(아티스트 앤드 레퍼토리) 담당자 박서회 씨는 "먼저 노래만 들었을 때는 대중성과 멀리 있어 머뭇거렸다"면서 "림킴 씨와 이야기를 나눠 보니 자기 주관이 뚜렷해서 믿음이 갔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경험이 주관으로 형성돼 있고 그래서 메시지가 일관적이었다"면서 "대중이 소비하기 쉬운 앨범은 아니지만 알아보시는 분들이 분명 있고, 그 마니아층에 호소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덧붙였다.
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은 이미 가요계에 여러 차례 있었다. 시장이 좁은 메탈 밴드, 일부 인디 아이돌 등이 이 방식을 도입했다. 일부 가수는 마케팅적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도입하기도 했다. 림킴은 이 크라우드 펀딩을 독립 앨범을 제작하기 위한 비용을 모으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팬들과 직접적 소통 창구로 만들었다.
EP 발매에 앞서 지난 9월6일 크라우드 펀딩 후원자들을 위해 홍대에서 연 프라이빗 음감회가 증명한다. 이날 모인 사람 중 림킴의 김예림 시절 팬은 10%에 불과했다. 나머지 90%는 신규 팬이었는데 앨범이 지향하는 메시지에 공감한 이들이었다. 10~20대 여성이 주를 이뤘다. 박 담당자는 "사회문화적으로 진보적인 층이 많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분들도 상당수였다"고 귀띔했다.
김예림은 새로운 팬 유입에 대해 "아무래도 음악과 비주얼이 대중들이 봤을 때 마치 다른사람처럼 변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면서 "하지만 사실 내가 직접 만든 음악은 처음이니 아이덴티티가 다른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전 것들에서 내가 직접 보여준 것은 창작자로서가 아닌 보컬만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림킴의 이번 EP는 상품이나 브랜드의 생산 과정에 참여하는 소비자를 일컫는 '팬슈머'의 적극적 사례로도 볼 수도 있다. 박 담당자는 "이 정도의 팬 베이스면 좀 더 큰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봤다. "예전 음반 활동에서 공간이 필요한 경우 기획사가 해당 공간을 대여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반면 이번 림킴의 활동은 모든 업계 관계자들은 공간뿐 아니라 의상 등 팬이라서 제공한 경우가 상당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림킴은 "안정적인 기존의 커리어에서 벗어나 정말 오롯이 혼자 준비해왔던 나의 스토리와 내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큰 응원을 보내주고자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다"고 했다.
유니버설뮤직은 림킴의 사례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박 담당자는 "이전에는 아티스트를 우리가 직접 픽업하거나 데모 음원을 받는 등의 수준에 그쳤는데 함께 파트너로서 일하는 경우의 수가 더 생긴 것"이라면서 "아티스트 발굴 모델이 확장돼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림킴. (사진 = 유니버설뮤직 제공) 2019.12.04 [email protected]
박희아 대중음악평론가는 "림킴의 시도는 무엇보다도 음악산업 시스템 안에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던 인물이 그 자리를 직접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이후 모든 것을 직접 기획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과거에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고, 메이저 레이블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거기서 느꼈던 자신의 심리적 압박감과 불편을 솔직하게 토로하면서 오히려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음악,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짚었다.
음원 유통 측면에서는 동양인 여성의 메시지를 서양에 전달하고자 하는 앨범의 성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유니버설 뮤직을 선택, 국내외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층 넓게 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도 봤다.
박 평론가는 "여러 모로 매우 영리하게 만들어진 결과물이고, 덕분에 림킴 자신이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싱어송라이터를 넘어서서 제작자로서 스스로가 지닌 능력에 대해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면서 "자연스럽게 이 프로젝트 다음에 자신이 무엇을 할지 대중으로 하여금, 특히 여성들로 하여금 궁금해지게 만들고 응원을 보내게 만드는 기반을 스스로 마련했다"고 평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네이버문화재단이 인디 뮤지션을 발굴하고 선보이는 플랫폼인 '네이버 온스테이지'는 5일 오전 11시 림킴의 신곡 무대를 공개할 예정이다.
다음은 림킴과 미니 일문일답.
Q. '크라우드 펀딩'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 예상보다 펀딩액이 더 모였다. 예상했던 결과인가?
"현실적으로 음반을 제작하는 데에 필요한 예산을 모으기 위함도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크라우드 펀딩이 가지고 있는 특성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그리고 펀딩이 만약 성공한다면 음악 업계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안될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예상보다 큰 금액이 모여서 기대 이상의 결과였는데 그만큼 나와 나의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시는 것 같아 기뻤다."
Q. 수동적인 창작 시스템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 것으로 안다. 이번에 주체적으로 시도를 했는데 만족하나?
"사실 시스템에 속한 것과 주체적으로 하는 것의 장단점은 분명하다. 각자의 성격에 따라 어떤 것이 더 잘 맞는지 차이는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직접 시도하고 그것에 대한 경험을 쌓게 된것, 그리고 다이렉트로 세상과 소통하는 기분을 처음 느껴 보게 돼 좋았다."
Q. 건강한 페미니즘을 표방했는데 무엇을 뜻하나?
"기존의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하고싶은 것을 다할수 있는 것."
Q. 백남준, 최승희, 사요코 야마구치 등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은 음악가가 아니다. 음악가가 꼭 음악가의 영향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선했다. 당신은 어떤 롤모델이 되고 싶은가?
"그들이 가진 에너지와 당시의 시대보다 앞서 나갔던 상상력 그리고 재능에 영감을 받았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런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Q. 당신의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굿 또는 제의처럼 느껴졌다. 김예림을 위한, K팝을 위한, 여성을 위한, 사람을 위한 등등. 그 대상은 여러 개인데 대략 이정도로 정리했다. 그렇게 들어도 되나? 당신은 이 해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실제로 민족요를 작업할때 생각했던 것이 '굿'이었다. 굿이라는 것은 내게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뿌리적 요소라고 생각이 됐다. 종교적 이유가 아닌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하는 내면의 흥과 직결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에서 형상화시킨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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