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 "의붓아들 고유정 아니면 누가 살해했나" 울분
대법, 무죄 확정 판결에 유족-변호인 등 반발
"실체적 증거 충분한데 받아들이지 않아 안타까워"
"10분 동안 아이 압박, 얼마나 힘들었을까" 눈물도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전 남편 살해 사건' 피고인 고유정이 지난해 9월16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3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2019.09.16. [email protected]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시신을 바다에 버린 고유정(37)에게 무기징역이 확정됐다.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은 5일 검찰과 고유정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고유정의 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유지했다.
구체적으로 "의붓아들이 고유정의 고의에 의한 압박 행위가 아닌 함께 잠을 자던 아버지에 의해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며 "설령 의붓아들이 고의에 의한 압박으로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그 압박행위를 피고인이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망원인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전 남편 A씨에 대한 살해 혐의에 관해서는 "사건 당일 A씨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고유정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면서 "고유정은 범행 도구, 방법을 미리 검색하고 수면제를 처방받아 구매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하고 A씨를 살해한 다음 사체를 손괴하고 은닉했음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설마하는 심정으로 의붓아들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을 기다리던 피해자 유족 측은 이날 대법원 선고에 대한 실망감이 역력했다.
의붓아들 사건 변호를 맡았던 이정도 변호사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의붓아들 죽음은)직접 증거가 없었으나 실체적 증거가 충분한 상황에서 과연 무죄 선고가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강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만 있어도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기 어려운데 이번 사건은 많은 증거와 함께 감정인들의 증언도 있었다"면서 "법률심인 대법원의 판단이 어쩔 수 없음에도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숨진 의붓아들의 아버지는 이번 사건에서 초동수사 부실을 가장 아쉬운 일로 꼽았다. 그는 "초반에 청주 경찰이 잘 해줬으면 (결과가)달라졌을 것"이라며 "모든 시초는 거기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이가 숨진 지 1년7개월이 지났는데도 감정을 억누를 수 없다. 10분 동안 압박이 있었다고 하면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런지, 저항할 수 없는 아이였다"며 목소리가 떨렸다.
의붓아들 피해자 유족 측은 사건이 기소되자 '전 남편 살해 사건'과 병합되지 않길 바랬었다. 행여나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부 무죄가 선고되면 재판부형량 선택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서였다.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지난해9월2일 제주지법에서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의 2차 공판이 열린 가운데 시민들이 고유정 탄 호송차량을 막아서고 있다. 2019.09.02. [email protected]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눈물로 호소한 검찰의 사형 구형도 소용없었다. 1심과 2심 모두 직접 증거 부족을 이유로 의붓아들 사건을 무죄로 판단했고, 고유정에겐 법정 최고형이 아닌 무기징역 선고가 내려졌다.
지난 2월에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고유정이 무기징역을 받자 유족들은 "얼마나 더 잔혹하게 사람을 죽여야 사형이 선고되는 것이냐"고 외치며 끝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불리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명제도 상기했다.
재판부는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입증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간접 사실 사이에 모순이 없어야 하고, 과학법칙에 부합돼야 한다”면서 “의심사실이 병존할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이어 “피해자(의붓아들)의 사망 원인이 비구폐쇄성 질식사로 추정됐으나, 피해자가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왜소하고 통상적 치료 범위 내에 처방받은 감기약의 부작용이 수면 유도 효과임을 고려해 봤을 때 아버지의 다리에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 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을 지켜 본 유족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며 “재판부의 선고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제주=뉴시스] 강경태 기자 = 지난해 6월28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환경자원순환센터 내 매립장에서 경찰이 ‘전 남편 살해 사건’ 피의자 고유정이 범행 후 버린 종량제 봉투를 찾기 위해 수색을 하고 있다. 2019.06.28. [email protected]
그러면서 얼마나 잔혹해야 사형이 선고되는지 되물으며 “재판부의 양형 기준을 이해할 수도, 신뢰할 수도 없다“고 분개했다.
고씨는 지난해 5월25일 오후 8시10분부터 9시50분 사이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 A(사망당시 37세)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버린 혐의(살인·사체손괴·은닉)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의붓아들 살해 혐의도 더해졌다. 검찰은 고씨가 지난해 3월2일 오전 4∼6시께 충북 청주시의 자택에서 잠을 자던 의붓아들 B(사망당시 5세)군의 등 뒤로 올라타 손으로 피해자의 얼굴이 침대 정면에 파묻히게 머리 방향을 돌리고 뒤통수 부위를 10분가량 강하게 눌러 살해했다고 보고 기소했다.
이날 형이 확정됨에 따라 제주교도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았던 고유정은 추후 청주여자교도소나 다른 수형시설로 이감 조치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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