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당국 '늑장대응' 비판…추가 대책 내놓을까
추가대책 필요한데…정부·한은 정책 '엇박자'도 우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추경호(가운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를 마친 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 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2022.10.23. [email protected]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거금회의)'를 열고 최근 높아진 회사채시장과 단기 자금시장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지원 조치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가동하는 50조원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은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20조원,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의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16조원, 한국증권금융의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3조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의 사업자 보증지원 10조원 등이다.
이 가운데 채안펀드는 1조6000억원 규모의 가용 재원을 우선 활용해 이날부터 시공사 보증 프로젝트 파이낸싱(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등 회사채·CP 매입을 재개했다. 추가 펀드 자금 요청(캐피탈 콜) 작업도 속도를 내 다음달 초부터 본격적으로 집행하기로 했다.
특히 정부는 레고랜드발 사태를 야기한 지방자치단체 보증 ABCP에 대해서는 모든 지자체가 지급보증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예정이라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채권시장 불안에 일조한 은행채와 관련해선 당국이 은행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를 6개월 유예키로 한 가운데 필요시 유예 기간을 더 조정하고, 예대율 규제 등도 필요시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은행은 적격담보 대상 증권에 국채 이외에 공공기관채, 은행채 등을 포함하는 방안도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검토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이번 조치로 인해 자금 시장에 어느 정도 숨통이 틔고,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지자체 ABCP에 대한 불안 심리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다. 실제로 이번 대책 발표 하루 뒤인 이날 연고점을 경신했던 국채 금리는 20bp(1bp=0.01%포인트) 가량 하락하는 등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과 같은 금융 정책 당국뿐만 아니라 행정안정부, 국토교통부와 같은 관계 부처가 함께 해당 이슈를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도 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며 "특히 이번 자금경색의 직접적인 트리거로 작용한 레고랜드 사태를 겨냥해 지자체의 재확약을 이끌어낸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추가대책 필요한데…정부·한은 정책 상충에 '한계' 우려
금융당국도 채권 시장 안정을 위해 "시장과 대화하며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돈풀기'와는 반대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긴축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추가 처방이 제한적일 것이란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더욱이 당국이 내놓은 채안펀드 가동 추가 캐피탈 콜 조성이 결국 증권사와 시중은행들의 부담으로 이어져 오히려 자금시장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LCR 비율 정상화를 앞두고 자금 부족으로 이미 대규모 은행채를 발행해온 은행들이 추가 캐피탈 콜에 나설만한 자금 여력이 없을 수 있고, 캐피탈 콜을 위해 은행채를 추가 발행한다면 시장 안정화 조치의 효과는 떨어질 것이란 설명이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채안펀드,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 등은 모두 현재 유동성 고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융시장 내 기존 금융회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재원을 확보하는 조치로 시장 전반의 유동성 경색 해소에 다소 한계가 있다"며 "즉 채안펀드 캐피탈콜에 응해야 하는 증권사들은 정작 자금지원이 필요한 회사들로 채안펀드 캐피탈콜에 대응한 자금조성 과정에서 자금시장 경색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은행도 재원 조성을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리면서 자금시장에 수급부담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채안펀드는 금융기관이 출자하는 방식으로 은행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최근 시중은행은 대규모 은행채 발행을 해왔다"며 "채권을 발행하고 있는 은행들의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고, 캐피탈 콜에 응하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지속한다면 시장 안정화 조치 효과는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고 자금시장 지원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말 종료한 한국은행의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와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를 재가동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금융안정특별대출 제도는 한은이 증권사·보험사·은행 등 금융회사로부터 우량 회사채(AA-이상)를 담보로 받고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비상시 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다.
한은 대출 등의 적격담보증권 대상에 공공기관채, 은행채를 포함하는 방안에 더해 우량 회사채 및 여전채를 추가하는 것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만약 은행채가 포함된다면 은행은 이미 보유한 은행채를 대출 담보로 이용, 한은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다만 국내 펀더멘탈 여건이나 통화정책 기조 등을 고려할 때 한은이 쉽게 재가동을 결정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조치들이 실행되면 유동성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 통화긴축을 진행 중인 한은의 입장에서는 시장의 요구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공 연구원은 "시중금리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글로벌 유동성 축소 등으로 꾸준히 상승하는 과정에서 자금경색이 발생한 만큼 정책 당국의 대응 역시 한계나 기조 상으로 상충되는 문제는 향후에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전날 "SPV 재가동 등 방안은 이번 대책에선 빠져 있다"며 "앞으로 이번 방안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국제금융시장 변동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금통위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커지는 '늑장대응' 비판…당국 "모든 역량 총 동원"
이번 자금시장 경색은 이미 금리상승과 부동산 경기침체로 지방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 있는 가운데, 정부 신용등급에 준한 지자체 보증 PF 미상환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시장에 불안심리가 확대되며 심화됐다. 이미 시장에서 부실 우려가 고개를 든 지 오래인데 정부가 "아직은 괜찮다"며 안이하게 상황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특히 은행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유예 조치는 이미 은행들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크다. 은행들이 LCR 규제를 맞추기 위해 발행한 은행채가 한전채 등과 함께 시중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 이미 3개월 전이고, 강원도가 레고랜드의 빚보증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법원에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한달 전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시장과 어려움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며 "LCR 규제를 6개월 유예키로 했는데 이게 끝이 아니며, 모든 시장의 변화 가능성을 보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는 메시지로 이해해 달라"며 "LCR 규제도 필요하면 더 조정을 하고, 예대율 규제 등도 필요한 조치는 시장과 대화하며 필요한 것을 해나가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금융감독원이 시장의 현황을 파악하기 보다, 루머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나선 것을 두고 "아직도 사안의 심각성을 모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금감원은 자금시장 경색과 관련해 특정 증권사·건설사 부도 등 근거 없는 악성 루머가 떠돌자, 한국거래소와 집중적으로 감시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에 대해 "금융기관들의 건전성 유동관리에 필요한 여러 정보를 챙기고 있다"며 "그런 것에 비춰볼 때 몇 가지 이슈는 기본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시장교란적 성격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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