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이 부른 부실대학 난립…개혁 골든타임 코앞[교육개혁 30년⑤]
대학 다양화, 특성화 기치로 설립·정원규제 완화
학생 감소로 2013년 입학정원 자율화 기조 폐기
정원보다 학생 수 적어…10년 뒤 대학 20% 위기
교육부, 구조개혁·수입 다각화·부실대 퇴로 '유도'
재산 빼돌리기·수도권 집중 심화 우려…해법 될까
[서울=뉴시스] 지난 2017년 8월10일 오후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열린 '서남대학교 폐교 반대 투쟁 총학생회 기자회견'에 참가한 서남대 학생들이 정상화 촉구 피켓을 든 모습. 서남대는 같은 해 12월 교육부의 대학 폐교 명령에 따라 이듬해인 2018년 2월말 문을 닫았다. (사진=뉴시스DB). 2025.01.29. photo@newsis.com
5.31 교육개혁은 지난 1995년 문민정부의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가 내놓은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을 말한다. 이후 역대 정권에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교육 정책의 근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문제 의식인 '암기 위주의 입시교육'은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5.31 교육개혁의 정책 기조가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부실 대학의 난립을 불러왔다는 비판도 받는다. 5.31 교육개혁 30주년을 맞아 교육 현장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보고자 한다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대학 구조개혁은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기치로 입학정원을 자율화 했던 5.31 교육개혁이 불러온 과제로 꼽힌다. 학생 수 감소에 대응하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고 수도권 집중을 완화해야 하는 숙제가 놓여 있다.
29일 교육계에 따르면, 대학에 입학할 것으로 기대되는 학생 수가 한국 대학의 입학정원보다 적어진 '데드크로스'가 일어난 시점은 통상 2021년부터로 여겨진다.
지난해 4년제 일반대 신입생 충원율은 98.0%, 재학생 충원율은 94.9%였다. 수도권은 각각 99.5%, 100.2%였지만 비수도권은 각각 97.1%, 91.6%였다. 전문대는 신입생 90.2%, 재학생 82.6%로 충원 어려움이 컸다.
현재 국내 대학 85.8%가 사립대로, 수입 50.1%(2023년 결산)를 등록금에 의존한다. 학생 수 감소가 치명타인 이유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5~10년 이내 학생 수 절벽을 앞두고 있어 대학 교육 생태계 붕괴를 우려한다.
민간 연구기관인 대학교육연구소가 지난해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펴낸 국정감사 보고서 '윤석열 정부 지방대학 정책 진단'을 보면, 만 18세 학령인구는 당분간 45만명대를 유지하지만 2032년부터 급감할 전망이다.
여기에 따르면 2032년 만 18세 학령인구는 43만4666명에서 2035년 38만6730명, 2044년 22만779명으로 줄어든다. 지난해 입학정원(44만8158명)과 견주면 2032년 1만3492명, 2035년 6만여명이 부족하고 2044년에는 절반까지 감소한다.
앞으로 10년 뒤 일반·전문대 64곳(19.7%)이 신입생을 뽑지 못하는 '한계 대학'이 될 것으로 연구소는 추정했다.
이런 흐름을 방치할 경우 학생 모집이 어려운 지방대에 타격이 집중돼 지역 소멸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한국 대학의 무분별한 양적 팽창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1995년 '5.31 교육개혁'에 따라 추진된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세종=뉴시스] 교육부는 지난해 2월6일 학교법인 분진학원의 강원관광대학교 자진 폐교 신청을 인가했다고 밝혔다. 분진학원은 학내 구성원과 지역사회 의견을 들어본 뒤 지난달 12일 교육부에 자진 폐교 인가를 신청한 바 있다. 이 대학은 2023년 9월 수시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재정여건 악화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신입생 모집난에 폐교 수순을 밟기로 했던 것이다. 사진은 강원관광대 전경. (사진=교육부 제공). 2025.01.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대학교육연구소의 2015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1997년부터 2014년까지 일반대 52개교, 전문대 9개교, 대학원대학 46개교가 신설됐다. 2014년 전체 고등교육기관의 3분의 1이 5.31 교육개혁 이후 설립됐다.
5.31 교육개혁은 대학 숫자 뿐만 아니라 입학정원도 크게 늘렸다. 1995년 첫 보고서 발표 후 1997학년도부터 사립대 입학정원이 자율화됐다. 일정한 교육여건을 갖추면 대학이 증원을 정하는 '교육여건연동제'가 도입됐다.
1995년 49만8250명이던 입학정원(대학·교대·산업대·전문대)은 2002년 65만6783명까지 불어났다.
부실대학의 양산을 불러 왔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교육부는 참여정부 때부터 정부 주도 대학구조개혁에 나선다.
입학정원은 지난해까지 2010년 대비 12만3000명을 줄였다. 이 중 약 10만명(80.8%)이 지방대 입학정원이었다.
지난 2000년 이후 문을 닫은 고등교육기관(일반대·전문대·대학원대학·각종학교)은 22곳이다. 지난해까지 국립대 13곳과 사립대 18곳(분교 포함)이 통합됐다. 여기에 '글로컬대학30' 사업에 따라 국공립대 7곳 이상이 추가로 통폐합될 계획이다.
입학정원 자율화 기조도 교육부가 지난 2013년 대학설립·운영규정을 강화해 증원을 억제하면서 폐기됐다. 고등교육 분야에서 5.31 교육개혁이 지금도 패착이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현재 교육부는 정부 주도의 퇴출 대신 대학이 자발적으로 구조개혁에 나서도록 유도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김명환 서울대 교수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0회 국회(임시회) 교육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01.29. kkssmm99@newsis.com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첫 평가 결과, 2025년도 경영위기대학은 전체 사립대 280곳 중 14곳(4곳은 자발적 구조개선 이행으로 불이익 유예)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3일 김한수 경기대 교수가 해당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해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래에 신입생 감소로 재정 적자를 기록할 대학은 94곳으로 추정됐다.
사학구조개선법은 사립대 폐교와 청산에 관한 한 다른 법률에 우선하는 특별법이다. 법안에 따라 다르지만 향후 7~10년 동안 한시적으로 경영위기대학에 대해 특례를 부여한다.
사립 학교법인이 대학을 청산하고 공익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 등으로 전환하려 하면 대학의 남은 재산을 이들 법인으로 넘길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한 예다. 일부 재산은 설립주체에게 해산장려(정리)금으로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해법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대학 부실화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학법인 설립 주체의 '재산 빼돌리기' ▲정부 재정 투입 부담 급증 ▲부실 공익법인의 양산 가능성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9일 국회 교육위원회 사학구조개선법 공청회에서 "경영위기대학의 특성과 재정 상황, 학생 충원, 지역과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관리·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경영위기가 심각해 회생 불가능한 대학은 퇴출을 유도하되 매우 신중하게 특례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 소멸을 부추기는 결과를 막기 위해 수도권 대학의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 연구원은 "학령인구 감소의 속도와 규모로 봤을 때 대학 구조조정은 수도권 대학을 포함한 전체 대학 정원 감축과 경영위기대학 퇴출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수도권 대규모 대학도 정원 감축을 통해 적정 규모를 갖춰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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